영화/최신작

작전명 발키리

walrus 2009. 1. 27. 20:55

같은 유대계의 재능 스티븐 스필버그처럼 브라이언 싱어 역시 재능이 넘치는 상업영화 감독이다. 작가적인 요소에 관심을 가질 듯 하지만 기본적으로 철저한 상업적인 요소들에 기반한 상업성을 추구하는 장인이다. 자막읽기 싫어하는 미국 관객을 배려하기 위해 독어로 영화를 만들 수 없었기에 영화의 첫 장면만 독어를 넣어준 것 그리고 스필버그가 그랬던 것처럼 '일부 독일인들은 착했다'라는 전제 마저도 나름 고민의 결과물인 셈이다. 사실, 그렇다. 전쟁의 세가 기울었던 43년 이후의 쿠테타 시도가 정말 정의로움을 위해서인지 어짜피 죽을꺼 살길 찾아보자인 시도인지 아니면 한국의 어떤 암살자처럼 질러놓고 죽을 때되니 모티브를 찾은건지-그것도 잘 모르겠지만-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일지 작전명 발키리 역시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출발한다. 동기부여에 지나친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싱어는 자신이 잘할 부분에 집중한다. 쓰릴러라는 영화적 문법으로 알려진 결말의 과정에 관객의 감정을 몰입하도록 하는 것. 물론, 요즘 작가주의 영화처럼 선과 악, 슈테판버그의 동기에 보다 모호함과 입체성을 불어넣었다면 또 다른 차원의 영화가 되었겠지만.

관객을 끌고 당기며 주므르며 몰입하게 하는, 영화적 장치를 통한 심리전에 관해서는 과연 싱어는 귀신이다. 특히 다음씬의 음향 효과를 미리 땅겨서 관객의 마음을 가속화시키는 장치는 아주 효과적으로 쓰여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도 아쉬움은 있다. 과유불급. 조금 과했다. 감정이 쌓이기 전에 그런 장치들로 보챈다는 느낌이 적지 않게 든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캐릭터의 심리가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런 과정에서 보여주는 것들 그리고 추가적인 설정 들은 헐리우드적인 방법론이 가지는 양면의 칼이다. 특히 영화의 가장 극적인 반전에서 괴벨스가 자신의 입에 청산가리 캡슐을 넣고 자살을 준비하는 장면-실제로 괴벨스는 다음해 같은 방식으로 자살했다-은 확실히 아쉽다. 그 장면만을 본다면 영화의 극적 반전을 위한 효과적인 설정일 수는 있겠지만 영화전반적으로 보면 힘을 떨어뜨리는 설정이다.

영화의 진정한 재미는 싱어가 좋아하는 '불완전성'에 있다. 여기서 차분한 목소리로 중량감있는 연기를 선보이는 톰 크루즈는 이전의 미션 임파서블에서 치밀하게 작전을 수행하던 그 톰 크루즈가 아니다. 끝없는 시행착오와 멍청함이 반역자들과 히틀러들 사이에 수도 없이 존재한다. 선과 악은 존재하지만 그 속에는 생존을 위해서 고민하지만 결국엔 미쓰홍당무의 공효진양처럼 어떻게든 삽질을 하는 숱한 캐릭터들이 있다. 영화의 최고 명장면은 경례를 강요하는 이를 향해 잘린 팔둥이를 내밀며 하일 히틀러를 외치는 장면이다-싱어는 이 장면 때문에 슈타펜버그를 불구로 설정하지 않았을까?

바그너가 듣고 싶다. 바그너를 들으면 아리아인은 우월하다는 망상이 가능도 했겠다는 생각도 든다.

작전명 발키리(Valkyrie, US, 2008, 120min)
감독: 브라이언 싱어
출연: 톰 크루즈

'영화 > 최신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워낭소리  (0) 2009.01.29
24 시티  (0) 2009.01.29
적벽대전 2: 최후의 결전  (0) 2009.01.25
체인질링  (0) 2009.01.24
헬보이 2 : 골든 아미  (0) 2009.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