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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최신작

어느날 그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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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생명은 어쩌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세상에 던져졌다. 동물원 안에서 근친상간으로 태어나 선천적 백내장과 호흡기 질환을 지니며 이방인의 구경꺼리가 되어야하는 호랑이나 시속 100km의 무서운 속도로 불을 뿜으며 지나가는 괴물들을 피해 뜨거운 도로를 횡단해야하는 작으마한 두꺼비들이나. 일방적으로 강자의 통행로를 정해버린 강자의 편의성 또는 굳이 없어도 될 길로 인해 무의미한 죽음을 당해야하는 수많은 야생동물들에 대해 작가는 미군의 탱크에 깔려서 저 세상으로 가야했던 미순이, 효선이와 별반 다름없다고 얘기한다. 1 제곱평방킬로미터당 1킬로미터씩 사방으로 뻗어있는 도로를 지도 상에 그려놓고 동물들이 알아서 도로를 피할꺼라는 인간들의 생각이 얼마나 강자의 오만한 자기정당화인가? 존경하는 서울시장님께서 말씀하신 철거로 인해 쫓겨나게될 소녀가장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계급상승하라는 충고와 그 무슨 차이가 있을까? 가끔 자본주의라는 별명을 가진 동물은 '필요'와 '수요'가 없음에도 잉여생산을 하며 약자들에게 고통을 배가시키곤 한다. 로드킬을 당한 동물의 시체는 감정을 느끼기 힘들 정도로 딱딱하게 굳어 기름묻은 장갑과 같은 전혀 쓸모없는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 강자의 논리 속에 희생자가 그렇다.

 

2006년의 이 영화는 '보여주기'에 집중했던 '작별'에 비해 작가의 개입이 보다 많은 다큐멘터리이다. 때로는 아기자기하게 배치된 편집의 묘미와 가슴아프지만 흥미진진한 동물들의 생존투쟁은 어쩌면 나찌의 수용소를 탈출을 시도하다 희생당하는 연합군 포로의 영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희생과 구원을 반복하는 삵쾡이 팔팔이의 사연은 가장 드라마틱한 이야기의 전형성을 갖추고 있다. 목숨을 걸고 작업한 고속도로의 로드킬에 관련된 이 보고서는 인터뷰를 하는 이가 '울부짓는다'라는 말을 쓸 정도로 절실하다. 개봉을 위해 2년을 기다려야 했던 이 영화는 어쩌면 2만불로도 부족해 3만불 시대 노래를 부르며 무차별한 개발과 전시행정을 키워드로 하는 새 정부에 가장 적절한 응답을 하기 위해 개봉을 미뤄왔을지도 모르겠다.

 

어느날 그 길에서(On the Road One Day, Korea, 2006, 97min)

감독: 황윤

출연: 최태영, 최천권, 최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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