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연/록클래식

P.F.M.(Premiata Forneria Marconi), LG아트센터, 2006.5.9

프로그레시브록에서 프로그레시브란 말은 비록 '진보'를 담고 있는데 실제 정말 사운드에 있어서 '진보'를 선택한 뮤지션은 극소수다. 핑플, 킹크림슨, 소프트 머신... PFM과 같은 밴드는 오히려 유럽락이라는 비겁하면서 보편적인 말이 어울릴 것 같기도 하다. 적어도 Per Un Amico에서 보여주는 최고 수준의 심포닉 록이 록이란 장르를 확장시키는데 크게 기여한건 사실이지만.


심포닉 록의 완성도는 테마를 감싸는 사운드를 어떻게 확장하느냐에 있을 것이다. 비록 바이올린이라는 클래시컬한 악기가 빈번히 쓰이고 Per Un Amico의 인트로가 가지는 클래식과의 유사성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클래식과의 융합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사실, 루치오 바티스티 밑에서 매맞으면서 음악 배운 후 그들의 밴드로서 연주력에 자신감이 붙었을 때 조금 복잡하면서 텐션이 강한 음악을 해보자는 시도가 낳은 최고의 결과물이 그들의 1,2번째 앨범일 수 있다. 물론, 거기에는 탁월한 재능의 마우로 파가니가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이날 공연에서도 파가니의 뒤를 매운 바이올린 파트의 루치오 파브리가 내는 소리가 사운드를 얼마나 다채롭게 만드는지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들었을 때는 바이올린 사운드가 조금은 위축되었다는 느낌도 나기도 했고 파가니였으면 어쨌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PFM하면 서정성이 생각나지만 이날 공연에서 그들은 록밴드였다. 일단 리듬이 강했다. 특히 프란츠 디 치오치오의 드럼은 스트로크 하나하나가 드럼 키트를 깨부술 것이 파워풀했다. 반면 기타리스트 프랑코 무시다가 맡은 초반 몇곡의 보컬은 솔직히 아주 힘겨워 보였다. 기타도 디게 많이 틀렸다. 튜어로 피곤함을 느낄 나이인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요즘 밴드보다 한참을 달린 2시간 반의 공연에서 공연 중반 이후 그가 보인 집중력, 그리고 최고의 명곡 Impression Di Septembre에서 보컬은 상당히 회복되어 있었다. 무대에서 내성적인 그마저도 한번 삘받으니 200%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보컬은 오히려 프란츠 디 치오치오가 많은 담당했다. 그는 에누리없는 이탈리아 보컬리스트였다. 어쩌면 유치하고 어쩌면 경박스러운 이탈리아의 보컬. 그는 드럼에 대한 애착이 상당했고 심지어 바지 마저도 10개 정도의 드럼 스틱으로 벨트를 대신?하기도 했다. 백업 드러머가 드러밍을 할 때도 수시로 가서 심볼을 두들겼다. 적어도 이번 공연에서 연주자의 역량만 따진다면 파워풀하면서도 독창적인 스틱웍을 보여준 프란츠 디 치오치오가 압도적이었다. 세션으로 들어온 다른 드러머와 젊은 드러머와 비교했을 때 그가 가지는 스틱웍의 탁월함은 확실했다. 사운드가 두터운 밴드에서 드러머는 무조건 확실해야 한다는 것은 거의 철칙이다. 그는 또 프런트맨으로 나설 때 정말 유쾌한 친구였다. 맨 앞자리 정면에 앉아있던 나의 머리 위로 그의 마이크가 지나갈 때 난 사실 불안했다. 이 할아버지가 자칫 실수하면 내 머리 박살나는거 아닌가 싶어서. 그가 추는 춤은 로베트로 베니니가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까불거리던 춤을 연상시켰다. 그들이 보여주는 경박한 춤은 슬픈 역사 속에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던 민중들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춤사위는 그가 부르는 노래 그리고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과 같은 원천에서 나왔다.


공연의 초반부는 사실 아쉬웠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반인 Per Un Amico의 영어 버전은 사실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탈리아 만의 섬세한 감성 표현이 완전히 뭉게졌고 그 곡에서 무시다의 보컬은 거의 고음 불가 수준이기도 했다. 가장 섬세하게 어레인지 된 음반의 서정적 심포니는 투박하게 재현되었을 뿐이었다. 그런 면에서 미국 중심의 음악 시장이 다양한 음악적 아름다움을 미국화 또는 영어화 하면서 얼마나 망쳐놓은지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연 중반을 넘어서면서 그들의 공연은 놀라움을 선사했다. 관중들의 환호에 한번 시동이 걸리니 다이내믹하면서 드라마틱한 심포닉록 사운드를 뽑아냈다. 하일라이트에서 필링은 드림씨어터의 공연에서 보여주는 맛을 가뿐하게 넘어섰다. PFM을 들어보지 못하고 이날 공연에 같이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과장이라 생각할 것이지만 사실이다. 하지만, 나에게 이번 공연의 베스트는 오히려 이탈리아의 팝적인 록음악이었다. 그들 70년대 중반이후 했던 음악은 70~80년대 우리네 록음악과 너무나 닮았다. 흔히들 '신명난다'라고 표현하는 뽕끼 잔뜩 흐르는 촌스러운 록음악. 하지만, 그런 음악은 그들이나 우리만 할 수 있고 솔직한 감성의 표현이기에 감동적이다. 어쩌면 가장 심포닉했던 1,2집의 음악도 어쩌면 성숙한 연주력으로 그들만의 감성 표현을 Maximum으로 뽑아보자는 시도일 수도 있다. 그들과 우리의 공통점은 또한 감성의 과잉이다. 서구 전통음악과 달리 우리와 그들은 '과잉'이 익숙하다. 그런데 바로 '과잉'의 음악이 록음악 아닌가? 또, 우리가 알고 있는 아트록은 감성의 표현 방식을 록앤롤의 정형성 보다 자신들에게 익숙하며 솔직한 방식을 따라가려했던 시도가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아무튼, 공연 후반부 관중들과 하나가 되었을 때 감동 감동이었다.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 Impression Di Septembre가 내 코 앞에서 들을 수 있을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라는 표현이 단정적임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날 공연장을 함께한 사람들에게 그날 그시간은 그랬다. LG아트센터의 시즌 첫 공연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왔고 그 어느 때보다 최고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행복한 하루.


p.s 월드컵 때 한국에 패한 후 이탈리아 선수들이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때 우리는 그들을 조롱했다. 사실, 그건 사실이다. 그들은 쪼잔하고 치졸하며 세련되지 못하고-지네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잔머리를 많이 굴린다. 또, 흥분을 잘하며 이성적이지 못하고 과도하게 감정을 표출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도 그렇다. 지리적 특성과 역사가 만든 유사한 국민성은 비록 비과학적일지라도 실제로 이런 비과학은 확률적으로 높은 적중율을 보인다. 아무튼 그들과 우리의 감성 체계는 유사하다. PFM은 이탈리아의 감성으로 정상에 오른 아티스트이다. 또, 실제로 어느 영미권음악보다 훌륭한 음악을 만들었지만 영미권에 진출하기 위한 영어 음반의 결과물로 인해 영미권에서는 평가 절하 받고 있는 뮤지션인 것 같기도 하다. 서태지/윤상 등이 나온 9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음악은 그런면에서 아쉽다. 사운드가 향상되었지만 최상의 결과물이 나와도 콘, 사이프러스 힐, 톰 조빔을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행복한 하루2.


p.s.2 멤버들, 확실히 늙었다. 이탈리아는 꽃미남이 넘치는 나라이지만 '과잉'된 젊은 시절 생활은 늙으면서 추하게 망가질 때가 있다. PFM멤버들도 그랬다. 머리는 여전히 길지만 심한 원형 탈모를 보인 프랑코 무시다와 파트릭 지바스. 귀여운 티셔츠에 어떤 오버액션을 보여도 촌스러운 치오치오. 하지만, 그런 추하게 망가짐이 점점 귀엽게 느껴졌다. 못난이의 열정은 꽃미남 보다 아름답다.

Ciao!


프랑코 무시다 (Franco Mussida / guitars, vocals)
플라비오 프레몰리 (Flavio Premoli / keyboards, vocals)
파트릭 지바스 (Patrick Djivas / electric bass)
프란츠 디 치오치오 (Franz Di Cioccio / drums, percussion, vocals)
루치오 파브리 (Lucio Fabbri / electric violin, keyboards)
로베르토 구알디 (Roberto Gualdi / drums, percussion)


Set List

River of life
Per un amico(photos of ghost)
La luna nuova(Four holes in the ground)
Maestro Della Voce
Out of the roundabout
Mountain


Intermission


Suonare suonare
Harlequin
leon leon leon(?)
La carrozza di hans
Dove...Quando
Dolcissima maria
Alta loma  5 till 9
J.C. Violin Jam
Rossini's William Tell Overture


앵콜

Impressioni di settembre
E Festa

01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