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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기타등등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Prague Symphony Orchestra) 7.6 예술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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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석에서 봤다. 며칠 동안 마누님 음악만 들었는데, 잘 arrange된 오케스트라를 예당에서 듣는 것도 가끔씩은 해줘야될 듯 하다.

 

동구권 음악의 탁월함을 모르는 이는 프라하가 파리에 필적할 아름다운 도시라는 것을 모르는 이일 것이다. 역시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보여주는 국민악파 음악에 대한 명쾌한 해석력은 탁월했다. 남성적 힘에 기반하면서 지역 민족의 희노애락-특히 집시의 애수-의 완급을 다이나믹하게 풀어갔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자기 지역 음악에 대한 해석 능력의 차이가 과학적으로 규명하기 힘든 민족의 정체성에 의한 것인지, 단지 보다 익숙하기 때문인지 실제로 궁금하다.

 

한발 더 나아가서 연주를 하면서 '감정'이라는 요소의 역할에 여러모로 의문이 든다. 똑같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도 강동석은 메탈 형님들의 헤드뱅잉을 연상하듯 심하게 머리를 흔들며 연주했지만 오케스트라의 연주자들은 비교적 ㅐ岵막?연주를 했던 것 같다. 그게 과연 리드 악기에게 주어진 감정 표출의 특권일까? 아니면 보는 사람들의 감정이입일까?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다들 같이 멋진 선남 선녀들이었다. 다들 개성이 달랐고 악기의 모양이나 연주방식도 잘 살펴보면 조금 씩 달랐다. 바이올린의 색깔이나 활을 귿는 각도도 조금 씩 달랐고 수건을 대고 연주하는 사람, 안대고 연주하는 사람의 차이도 있었다. 그런 차이가 신음소리를 내면서까지 다이내믹한 액션을 보여준 페트르 알트리히터의 지휘에 의해 모아지는 소리의 벡터가 최강의 질감을 토해낸다. 최근 내가 가지는 관심사는 뮤지션이 추구하는 '사운드의 질감'인데, 사람이 만든 가장 궁극의 사운드의 질감은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심포니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공연 내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스티브 라이히가 말한 위상차가 심포니에서는 사람의 해석력을 벗어날 정도로 다채롭게 나는 것이 아닐까?

 

p.s.1 협연한 강동석, 조영창, 김대진과 포옹을 했는데, 나는 거기서 최고 수준에 있는 이들의 연대감을 느꼈다. 이건 엘리트 주의일까? 아니면 단순한 우정일까? 하는 심술궂은 생각이 들었다.

 

p.s.2 한가지 이날 안 사실은 오케스트라에서도 베이스가 손가락으로 튕길 때가 많다는 점이었다.

 

흔들림 없는 절대 명성
문화 강국 체코가 자랑하는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
Prague Symphony Orchestra 첫 내한 공연

프로그램 I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B. Smetana : Ouverture Prodan nevesta(The Bartered Bride)
스메타나 : 팔려간 신부 서곡
L.v.Beethoven : Concerto for Piano, Violin, Cello and Orchestra in C Major, Op.56
베토벤 : 3중협주곡
A.Dvorak : Symphony No.8 in G Major, Op.88
드보르작 : 교향곡 제8번
- 지휘 : 페트르 알트리히터(Petr Altrichter, 수석 지휘자)
- 협연 : 강동석(바이올린), 조영창(첼로), 김대진(피아노)

동유럽의 최고의 문화 강국 체코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21세기 체코 음악계를 이끌어 가는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

보헤미안 특유의 민족전통과 서유럽 화려한 사운드와의 완벽한 조화…

체코 필하모닉, 프라하 방송 교향악단과 더불어 체코를 대표하는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첫 내한 공연을 갖는다. 다른 동구권 오케스트라와 달리 체코의 오케스트라는 중후한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동시에 서유럽적인 화려한 사운드를 자랑한다. 특히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제에서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체코 필하모닉과 더불어 이 음악제를 주관하는 메인 오케스트라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체코 지휘계의 전설적인 거장 스메타체크가 무려 30년 동안 함께한 사실은 이 오케스트라의 최대 긍지라 할 수 있으며, 이후 바츨라프 노이만, 이리 벨로흐라벡, 츠데넥 코슬러 등 체코 거장들이 함께 했으며, 특히 2001년 가을 시즌부터 작곡가이자 지휘계의 거장인 세르쥬 보도(1927-)가 음악감독 및 상임 지휘자를 맡은 이후 체코 필보다도 더 활발한 국내외 활동을 하고 있다.

거장 페트르 알트리히터의 손끝에서 펼쳐질 체코 음악의 정수

이번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회에서는 수석 지휘자인 거장 페트르 알트리히터와 110명의 단원이 내한하여 체코가 낳은 작곡가 스메타나의 <팔려간 신부 서곡>과 드보르작의 <교향곡 8번>을 연주하며 슬라브 음악의 정수를 들려줄 예정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최정상의 연주자 3인이 빚어낼 최고의 앙상블
베토벤 트리플 콘체르토

또한 이번 공연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연주자들로 손꼽히는 강동석(바이올린), 조영창(첼로), 김대진(피아노)이 협연하는 베토벤의 걸작 트리플 콘체르토(3중 협주곡)이 예정되어 있다. 이 곡은 세 명의 명연주자가 아니면 좀처럼 연주하기가 어려운 곡으로 유명한데, 오랜만에 정상급 명인들에 의해 연주되는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대하여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1934년도 가을에 지휘자이자 뮤지컬 제작자인 루돌프 파카렉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는 Film-Opera-Koncert 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앙상블의 분야로 이 오케스트라를 정의하였으며, FOK는 오케스트라의 공식 명칭이 되었다. 1930년대 체코 영화의 대부분을 녹음하였으며, 라디오의 라이브 연주를 정기적으로 하면서 FOK는 명성을 쌓아갔고 재정자립도 높아졌다. 이러한 활동들은 지속적인 연주활동에 도움을 주었고 체코 최고의 지휘자 바츨라프 스메타체크에 1급 오케스트라로 발돋움하게 된다. 스메타체크는 매우 짧은 시간 내에 이 악단을 대규모 심포니용 오케스트라로 키웠으며 1942년 이후 무려 30년 동안 상임지휘자를 맡아 오케스트라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스메타체크에 의해 오케스트라의 명성을 쌓아갈 무렵, 프라하 시는 다른 유럽 도시들이 오케스트라를 양성하는 추세에 따라, 1952년에는 프라하 시를 대표하는 콘서트용 전문 앙상블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때 비로소 Symphony Orchestra of the Capital City of Prague FOK로 이름이 바뀌었다. 1957년에는 첫 해외연주로 폴란드, 이태리, 오스트리아, 독일을 방문했다. 스메타체크가 상임지휘자에서 물러난 이후 후임으로 라디슬라프 슬로박(1972~1976), 인드리지히 로한 (1976~1977), 이리 벨로흐라벡 (1977~1989)에게로 넘겨졌다. 그 후에는 페트르 알트리히터 (1990~1992), 마르틴 투르노프스키 (1992~1995), 가에타노 델로구 (1995~1998)에게로 이어졌다. 또한 바츨라프 노이만, 츠데넥 코슬러, 블라디미르 발렉 등 체코의 명 지휘자들이 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했고, 2001년부터 프랑스의 명 지휘자이자 작곡가인 세르쥬 보도가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활동을 하고 있다.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또 다른 활동은 체코 음악과 세계적인 음악의 음반 작업이다. 대부분의 녹음은 Conifer, Philips, Erato, Universal, Harmonia Mundi (Praga), Victor, Koch International, Panton, Music Vars 등의 메이져 레이블을 통하여 이루어졌고 스메타나 <나의 조국>, 드보르작 교향곡 전집 등 명반이 있다.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식 사이트
www.fok.cz(체코어 & 영어 버전)

-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 체제

세르쥬 보도(Serge Baudo) ? 음악감독 및 상임지휘자(Music Director & Chief Conductor)
페트르 알트리히터(Petr Altrichter) ? 수석지휘자(Principal Conductor)
리보르 페세크(Libor Pesek) ? 수석 객원지휘자(Principal Guest Conductor)
카주히코 코마추(Kazuhiko Komatsu) ? 객원지휘자(Permanent Guest Conductor)

지휘자 페트르 알트리히터
페트르 알트리히터는 1951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나서, 오스트라바 콘서바토리에서 수학했으며, 1978년에 브르노의 야나체크 뮤직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25세때 프랑스 브장송 국제 지휘자 콩쿠르에 입상함으로써 본격적인 지휘자로서의 인생을 시작하였다. 이후 알트리히터는 거장 바츨라프 노이만이 이끄는 체코 필하모닉의 부지휘자로 3년간 활동했고, 브르노 필하모닉을 객원 지휘하다 후에 상임을 맡게 된다. 1987년에는 프라하 심포니의 오케스트라의 수석 객원 지휘자가 되었고, 1990년에는 상임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현재는 프라하 심포니의 수석 객원지휘자로 정기 연주회와 미국, 독일, 일본,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스, 스위스 등지로의 해외 투어를 이끌고 있다.
또한 알트리히터는 1993년부터 남서독일 필하모닉과 로열 리버풀 필하모닉 음악감독을 겸하면서 분주한 활동을 하고 있는 세계 정상급 지휘자이다.

강동석(Dong Suk Kang)/ 바이올린(Violin)
영국의 '세계 음악 인명사전', 프랑스의 '연주가사전'에 그의 이름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을 정도로 세계 음악계에 이름을 떨친 강동석은 끊임없이 탐구하고 도전하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빈틈없는 기교, 완벽한 활놀림으로 영혼 을 감화시키며, 그의 위상과 명성은 이미 비르투오조의 반열에 우뚝 서있다.
탁월한 예술성과 투철한 음악가 정신, 그리고 대가적 기교로 온갖 찬사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강동석은 전 세계에 걸쳐 열렬한 환호 속에 연주활동을 해오고 있다.
1971년 17세의 나이로 미국 음악계가 가장 주목하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재단 콩쿠르와 워싱턴의 메리웨더 포스트 콩쿠르에서 연달아 우승하여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으며, 케네기 센터에서의 데뷔 연주회와 세이지 오자와와의 협연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세계적인 연주자로서 확고한 기반을 다져나갔다. 그 후 세계 3대 바이올린 콩쿠르인 몬트리올 콩쿠르, 런던 칼 플레쉬 콩쿠르, 브뤼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를 차례로 석권하며 그의 명성을 음악의 본고장인 유럽에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는 세계의 저명한 오케스트라들과 함께 무대에 등장하기 시작 했다. 미국의 필라델피아, 클리브랜드, 로스앤젤레스, 세인트루이스,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몬트리올 오케스트라와 유럽의 로열 필하모닉, 런던 필하모닉, BBC 오케스트라, 할레, 버밍햄 오케스트라, 스코틀랜드 국립 오케스트라, 뮌헨 필하모닉, 슈투트가르트 필하모닉,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벨기에 국립 오케스트라, 고텐부르크 심포니,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라디오, 폴란드 국립 오케스트라와 로테르담 오케스트라 등 수많은 오케스트라들과의 협연을 비롯해 뒤트와, 오자와, 마주르, 예르비, 메뉴인, 살로넨, 슬래트킨, 정명훈, 바르샤이, 포스터, 노링턴, 스베틀라노프, 베르그룬트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과 함께 공연하며 섬세하고 이지적인 연주로 관객을 매료시켰다.
실내악에도 강한 관심을 가져 스폴레토, 산타페, 쿠모, 시애틀, 벤쿠버, 뉴포트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실내악 축제들을 위시한 다양한 실내악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또 링컨센터 실내악 협회의 게스트 아티스트로 뉴욕에서의 연주를 시작으로 미국 전역을 순회 공연했다.
녹음분야에서도 그는 잘 알려진 작품들뿐 아니라 닐센과 엘가의 협주곡, 오네거와 아클란의 실내악 전곡 그리고 푸르트뱅글러의 소나타를 녹음하였다. 그의 앨범들은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여러 상을 수상하였다. 아카데미 샤를르크로부터 수상한 그랑프리와 누벨르 아카데미 디 디스크로부터 받은 그랑프리 등이 그것이다.
1981년에는 롱 티보 국제 콩쿠르의 최연소 심사위원으로 위촉 받은 바 있으며, 영국과 벨기에 왕실 초청 연주를 비롯해 백악관에서 레이건 부처가 마련하는 음악회에 초청되어 백악관 연주를 갖기도 하였다.

2000년부터 세계적 제약회사인 글락소 스미스클라인 후원, 한국 간의학회 로부터 간염퇴치 명예대사로 위촉되어 전국 투어 콘서트의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프랑스 꾸쉐벨에서 열리는 뮤직 알프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을 역임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로 재직중이며 환경친선대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조영창(Young Chang Cho)/ 첼로(Cello)
1958년 서울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조영창은 위로 두 누나(피아니스트 조영방, 바이올리니스트 조영미)와 함께 음악을 배웠고 지금도 세 남매가 조트리오로 결성, 실내악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예원학교 2학년 때 연주차 내한한 야노스 슈타커에게 첼로 연주를 선보인 것이 계기가 되어 이 거장에게 발탁되었고 이렇게 해서 미국 유학 길에 오른 조영창은 피바디 음대, 커티스 음악학교,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등을 차례로 거치며 지그프리드 팔름 교수와 로스트로포비치에게 배웠다.
1976년 뮌헨 방송국 국제음악콩쿠르, 1977년 제네바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조영미, 조영방과 함께 트리오 부분에 입상한 조영창은 이후 로스토로포비치 국제 첼로 콩쿠르 입상, 뮌헨 방송국 국제 콩쿠르 첼로 부문 입상, 카잘스 국제 첼로 콩쿠르 입상, 코다이 솔로 소나타의 특별 연주자상 수상 등 다양한 국제 음악 콩쿠르 무대에서 기량을 발휘했다. 1984년 10월에 가진 뉴욕 데뷔 연주회에서 <뉴욕 타임즈>로부터 "올해의 가장 흥분되는 연주회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
실내악에도 많은 관심을 보여준 조영창은 1982년부터 반 호펜이라는 현악 사중주단을 결성, 베토벤 현악 사중주 전 17곡을 완주했고, 조트리오 활동도 계속하고 있다. 현재 조트리오는 독일을 중심으로 일본, 한국 등에서 1년에 30회 정도의 연주회를 갖고 있다.
96년에는 독일 텔로스 레코드에서 텔로스 앙상블과 함께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 음반을 냈고, 그 해 여름에는 독일 뮌헨 방송국에서 주최하는 ARD 국제 음악 콩쿠르 심사위원을 맡았다.
97년에는 로스트로포비치의 70회 생일을 맞아 로스트로포비치 국제 첼로 콩쿠르의 1위 입상자와 수제자들만 참석한 로스트로포비치 첼로 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조영창은 1987년부터 현재까지 독일 에센 폴크방 국립음악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역시 울산대 석좌교수로도 활동 중이다.

김대진(Dae Jin Kim)/ 피아노(Piano)
감성과 논리를 지적으로 조화시켜 단아하면서도 명석한 음색을 창출하는 피아니스트. 유연한 테크닉과 개성이 강한 작품해석으로 독자적인 연주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정상급 연주자이다.
김대진의 음악적 재능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주목을 받아 11세 때인1973년 국립교향악단과 협연을 해서 호평을 받았으며 다음해 10월에는 데뷔 독주회를 가졌고 예원콩쿨(1974), 이화경향콩쿨(1975), 중앙음악콩쿨과 동아음악콩쿨 (1979)에서 차례로 모두 1위에 입상하여 촉망 받는 연주자로 두각을 나타내었다. 특히 동아음악콩쿨 에서는 전 부문에 걸쳐 가장 우수한 연주자에게 주는 대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음악적 탐구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줄리어드 음대에 재학중이던 1985년 클리블랜드에서 개최된 제6회 로베르 카사드쉬 국제 피아노 콩쿨(현, 클리브랜드 국제 콩쿨)에서 영예의 1위에 입상하여 한국인의 음악적 예지를 빛낸 피아니스트로의 탄탄한 길을 약속 받게 되었다. 1987년 미국 머킨홀에서 가진 뉴욕 데뷔 리싸이틀에선 솔리스트가 되기 위한 모든 능력을 갖춘 훌륭한 연주자 (뉴욕타임즈) 라는 찬사를 받았고 스위스의 티보 바가 국제음악제 미국 보드윈 국제음악제, 일본 이시카와 국제 페스티벌 등 유명 음악제의 초청독주회 및 클리블랜 오케스트라, 프랑스빠드루 교향악단, 프랑스 릴 국립 교향악단, 뉴욕 화이트 플레인즈 오케스트라, 줄리아드 오케스트라(남미 순회연주), KBS교향악단, 서울시향 (88서울올림픽 문화 페스티발, 교향악 축제, 한국의 아티스트 시리즈), 부천시향 (모차르트 서거 200주년 기념연주), 등 국내외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어느 작품을 대하든지 여러 가지 모양의 접근 방식을 모색함으로써 연주자의 의식이 작품 속에 투영되어야 한다는 음악관을 갖고 있는 그는 줄리어드 음대와 대학원에서 학사, 석사, 박사과정을 마친 후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에 관한 연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제18회 난파음악상을 수상하였다.
항상 다양하고도 의욕적인 기획연주 시도와 자신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보여주 는 그는 슈베르트 탄생 200주년 기념 독주회, 쇼팽 서거 150주년 기념 협주곡 전곡 연주회 등을 통해 호평을 받은 바 있다. 특히 2000년 4월 2일에 있었던 베토벤 협주곡 전곡 1일 연주회는 우리나라 악단의 한 획을 그은 연주회로 음악과 한 인간으로서 자신에 대한 열정적 노력을 통해 청중을 감동시켜 그의 음악세계를 함께 공감하고픈 욕구를 만들어 줌으로써 많은 이들의 지지를 이끌 어 냈다. 이어 2001년 <낭만 콘체르토 시리즈-건반 위의 낭만>은 슈만, 그리그, 라흐마니노프의 명 협주곡을 한 무대에 올림으로써 그만의 색채로 대곡들을 거뜬히 소화해내어 그야말로 건반 위에 그린 낭만이었다는 감탄과 찬사를 끌어내었다.
존 필드 <녹턴>전곡 연주회, 모차르트 협주곡 전곡 연주회, 청소년 음악회 등 국내 아티스트 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피아니스트이다.

- 프로그램

스메타나
오페라 <팔려간 신부> 서곡

체코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스메타나의 대표적 오페라이다. 1859년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의 전쟁에서 오스트리아가 패해 보헤미아에는 새로운 희망이 싹텄고, 그 결과 민중들은 국립극장을 만들었다. 스메타나는 이러한 민중의 열망에 보답하기 위해 8개의 애국적 오페라를 만들었는데, 첫 작품인 <보헤미아의 브란덴부르크 사람들>에 이은 두 번째 오페라가 바로 <팔려간 신부>(1866)이다. 이 가극으로 인해 스메타나는 체코 국민 작곡가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이 오페라의 줄거리는 보헤미아의 옛 이야기에서 따왔다. 젊은 농부 제니크는 부농의 딸 마렌카와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런데 케잘이라는 중매장이가 마헨카의 아버지를 찾아가 충돌질하여 마렌카를 부농 미셔의 바보 아들 바세크에게 소개하여 사례금을 듬뿍 받아내려 한다. 케잘은 제미크를 속여 마렌카와 사랑을 단념케 하고 300굴덴의 돈을 주면서 증서를 받는다. 마렌카는 마지 못해 미셔 집에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그때 제니크가 실은 미셔 집안의 행방불명되었던 아들임이 밝혀져서 마렌카는 제니크와 경사스러게 결혼한다.서곡은 보히미아의 서곡풍 주제와 제니크와 마렌카의 연애 장면의 주제로 이루어지고 밝은 가락과 무곡이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베토벤
트리플 콘체르토

영웅 교향곡, 열정 소나타, 오페라 피델리오 등의 스케치를 진행시키던 1803-4년에 걸쳐서 작곡된 작품으로 베토벤이 남긴 7개의 협주곡 중 작곡 순서상 가운데에 해당하는 곡이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의 3중주에 관현악이 가담하는 협주곡으로 합주 협주곡의 교향곡화를 꾀한 작품이다. 따라서 각 악기별 완벽한 조합이 아니면 좀처럼 연주되기 힘든 곡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로브코비치 공에게 헌정되어 1807년에 출판되었고, 또 다른 후원자였던 루돌프 대공은 1808년 빈의 아우가르텐에서 열린 초연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관현악과 세 악기가 교대로 주제를 제시하는 위풍당당한 1악장과, 이어지는 느린 2악장, 론도 형식과 폴로네이즈 성격을 지닌 유쾌한 3악장 등 고전 협주곡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은 3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드보르작
교향곡 제8번

교향곡 제8번은 드보르작이 영국 방문을 마치고 난 후, 미국 방문이 이루어지기 3년 전에 작곡된 것으로, 1892년 영국의 노벨로 출판사가 악보를 출판해서 ‘영국’ 교향곡으로 불리워 지기도 했다. 하지만 부제와는 달리 영국적인 분위기는 거의 느낄 수 없고, 그의 교향곡 중 보헤미아의 국민주의적 성격이 가장 짙은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드보르작은 이 작품에서 종래에 그가 모범으로 삼았던 베토벤의 독일 교향곡 풍에서 탈피하여 보다 민족적인 성격을 부각시키고 있다. 형식 구성이 매우 자유스럽고, 전통적 교향곡의 개념에서 상당히 동떨어져 표제 교향곡적인 성격을 갖춘 교향시라고 까지 불리워 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