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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기타등등

에스뵈욘 스벤손 트리오(Esbjorn Svensson Trio) 6.22 호암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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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재즈는 어디까지인가? 요즘 들어서 고급스러운 대중음악은 무조건 재즈라고 지칭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에스뵈욘 스벤손 트리오도 그런 갈등을 느끼게 하는 뮤지션이다. 재즈의 기본인 스윙감은 강하지 않으며 기존의 피아노 트리오와 다른 과감한 이펙터의 사용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공연에서 본 에스뵈욘 트리오의 특징은 터치에 있다. 단지 어쿠스틱 악기에 이펙터를 건다고 도발적인 사운드가 나오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에스뵈욘 스벤손의 건반 터치는 그 자체로 자극적이었다. 그는 건반에 머리를 거의 묻다시피 수그린채 정성을 다해서 강약과 속도의 급변을 표현했다. 작은 소리를 더욱 작고 섬세하게 만들기에 에너지를 뽑아낼 때 더욱 강인하게 느껴질 수 있었다.

마그누스 오스트룀의 드럼은 비트를 잘게 쪼개는 쪽이었다. 잘게 쪼게지만 한 터치 한 터치에 의미를 주는 쪽이었다. 단 베르글룬트의 베이스는 밴드의 핵심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점했다. 그의 베이스 터치 역시 자극적이었는데 곡의 하일라이트 부분에서는 강력한 디스토션을 쓴채로 페달을 쓰며 곡을 리드했다. 사인회 때 그에게도 얘기했지만 그의 연주는 마치 지미 헨드릭스 같았다.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사운드 엔지니어링을 담당하고 있는 또 하나의 멤버였다. 비틀즈에서 조지마틴 처럼.

음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는 그들의 음악 속에는 스웨덴어의 다소 격한 악센트가 연상되었다. 힘과 절제미가 있지만 그 안에  묘미가 살아있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E.S.T의 음악은 재즈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하자면 결국은 Yes쪽이다. 이펙터를 쓰지 않은 발라드 곡에서는 확실히 모던 피아노 트리오의 연장선상에 있었으며 그렇기에 난해하기보다는 친숙했다. 또한 스윙감이 약한 것은 재즈가 모던해지면 약화된 것이 사실이지 않는가? 오히려 달콤한 멜로디의 친숙함에 빠지지 않고 음의 전개를 늘였다 줄였다  하는 묘미는 오히려 재즈의 전형성에 가까울 수 있다. 또, 재즈라는 것은 기존의 양식미에서 한발씩 빠지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재즈의 시작도 서구 전통음악에 흑인적 감수성에 의한 일탈이었고 밥, 쿨, 모드, 프리, 퓨전 등의 세부 장르의 변천 자체가 과감할 정도의 도발이었고 그 자체가 재즈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E.S.T의 음악은 재즈의 정의에 충실할 수 있다. 이제까지 재즈가 톤에 대한 도발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했다면 E.S.T는 톤에 대한 도발로 재즈의 영역을 확장하려 한다. 아마도 향후 10여년간은 이런 시도들이 하나의 트렌드를 형성할 것 같다.

 

하지만, 전자적 이펙트를 사용한 톤의 확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90년대 후반 너무나 짧았던 테크노의 전성시대를 생각한다면 인간미와 자연스러움이라는 부분은 감성을 자극해야하는 음악에 있어서는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p.s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록과 재즈가 시작된 미국에서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대중음악의 변방에 있다는 것도 강점일 수 있다. 주변부에서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하며 객관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의 자기 중심성은 E.S.T와 같은 뮤지션의 음악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오히려 이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듯.

 

라인업

Esbjorn Svensson (에스뵈욘 스벤숀, 피아노)
Dan Berglund (단 베르글룬트, 베이스)
Magnus Ostrum (마그누스 오스트룀, 드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