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란 브레고비치(Goran Bregovic) 웨딩 & 퓨너럴 밴드-2005.6.11, LG아트센터 - 한국과 닮은 듯 다른 듯 닮은 발칸반도 서민들의 천박하고 주접스러운 고급음악
공연은 LG아트센터의 무대가 아닌 출입구를 통해 멤버들이 자신이 맡은 브라스를 차례대로 불면서 입장하며 시작되었다. 우리 내 마당 놀이 만큼이나 무대와 관객석의 차이를 낮추고 구분을 없애겠다는 의도일 듯 하다. 웨딩 & 퓨너럴 밴드의 편성은 기타를 맡은 고란 브레고비치와 베이스-심볼(또는 스네어)로 구성된 단순한 드럼 키트나 만도네온을 맡은 잘생긴 청년 하나 외에 발칸 지역의 아저씨들로 구성된 무려 8인조의 브라스 밴드와 불가리아 출신의 세명의 코러스로 구성되었다. 대쳥 집시 관악대의 형식을 취한 것이 이날 공연의 편성에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흔히들, 재즈의 역사는 남북 전쟁 당시 군악대가 버리고 간 관악기를 흑인들이 주워 연주하면서 사용되었다고 한다. 다른 현악기와 다르게 볼륨이 아주 크며 단순히 호흡과 몇개의 단추를 통해 다양한 연주자의 감성을 천차만별로 나타낼 수 있는 관악기의 특성은 흑인들의 희노애락과 일상다반사를 표현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앵콜 당시 '돌격'이라는 한국말을 써가며 표현했듯이 이 날 밴드의 브라스 편성도 숱한 내전 속의 불안한 발칸의 현실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암울한 역사는 그들에게 숱한 절망과 눈물을 안겨주었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조크와 유머를 통해 즐거움을 찾아가는 방법을 가르쳤다.
너무나 고급스럽게 다듬어진 재즈와 다르게 집시 관악대는 씨끌벅적하고 주접스러웠다. 트럼펫, 트롬본, 튜바, 섹스폰 연주자들은 돌아가면서 솔로잉 위주로 진행하는 정통 재즈의 빅밴드 사운드와 다르게 합주를 통해 큰 볼륨을 냈다. 가끔씩 섹스폰 주자가 급박하게 자신의 테마를 표현하기도 하였으나 어디까지 합주 속에서 두드러진 소리를 내는 역할에 국한되었다. 정작 진짜 하나의 독주 솔로잉은 앵콜 당시 멤버 소개를 하면서 나왔다. 전체적인 사운드에 있어서도 우스꽝스러운 중저음의 트롬본과 튜바가 많이 강조되었다. 이는 슬픔과 기쁨이 극한적으로 표시되는-또 발칸에서는 빈번한-결혼식과 장례식의 악단의 편성 그리고 집시의 음악의 형태가 이러하기 때문 아닐까? 관악대 개개인은 고도로 숙련되기는 했지만 재즈의 블로잉과는 다른 다소 난삽할 수도 있는 그런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백인의 감성이긴 하지만 정제되지 않은 시장의 느낌을 전달하는 그런 쪽이였다. 사실, 이 공연을 통해 떠오르는 영화는 고란 브레고비치가 작업한 에밀 쿠스트리차의 영화보다 앙겔로폴로스의 '유랑극단'이었다. 그들이 걸어야했던 현실 속에서도 흥겨운 음악을 하는 모습 때문에.
작은 편성의 곡을 연주할 때 말고는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던 고란 브레고비치는 기타리스트보다 악단을 리드하는 역할에 주력했다. 기타를 치는 와중에 손을 드러 피치의 전개나 악단의 호흡을 정해진 사인으로 지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고란 브레고비치의 보컬은 걍 잔잔하게 소화하는 편이었고 가끔씩 합~합~추임새를 넣어주곤 했다. 별로 하는 것 없었던 고란 브레고비치와 다르게 옆에서 단순한 드럼 키트와 만도네온을 연주하는 자~알 생긴 청년-금발의 테리우스 형 얼짱이었다-은 감정의 기복이 두드러지는 보컬 까지 수행하면서 저임금에 높은 노동강도로 공연에 임해야했다.
불가리아 전통의상을 입고 나온 3인조 아줌마들 위주의 코러스는 상당히 기교적이었고 때에 따라 추임새를 넣었는데 사실, 아시아-특히 인도-의 느낌이 나기도 했다. 발칸이라는 지역적 특성이 반영된 듯 하다. 사실, 어떤 면에서 들어보면 여성코러스의 형태는 이박사 풍의 뽕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전체음악에 들어가면 그런 천박함이 고급스러움으로 다듬어져있었다. 고란 브레고비치의 탁월함은 여기에 있을 듯 하다. 천박함이라는 것은 발칸을 살아가는 생활인의 극과 극을 달리는 감정 기복의 폭을 여과없이 보여주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고란 브레고비치의 말을 빌자면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 영화가 훌륭한 이유 중 하나는
우리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많은 어려움들,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없어 주저할 수 밖에 없는
순간들과 그 때 사람들 모습,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사건들로
가득 차 있는 우리의 삶을 말이죠.
한마디로 매우 불완전하며 무질서하다고 할가요?
저도 이러한 점들을 음악으로 사려내고자 노력했습니다."
고란 브레고비치의 음악적 스펙트럼은 사실 이를 넘어선다. 인용을 하자면 '바르톡과 재즈를 탱고와 슬라브 민속음악을, 터키 분위기와 불가리아 성악, 정교 성가의 폴리포니와 현대적 팝비트'가 하나로 융합된 더 나아가 집시, 폴카, 록, 모르나, 아랍 음악, 펑크 등의 영향력도 느낄 수 있다. 그의 음악은 대중음악인지 민속적 전통음악인지 분간하기도 쉽지 않다. 무려 1500만장의 음반 판매고를 올린 그의 록밴드 비옐로 두그메(Bijelo Dugme, 하얀단추)가 발칸의 비틀즈라고 불렸던 것은 상업적 성공과 살아있는 비트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린 소녀로부터 클래식을 즐기는 이들까지 서로 다른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그의 넒은 음악적 스펙트럼 때문은 아닐까? 이는 실지로 마법에 가깝다. 그리고 다양한 스펙트럼이 생활인의 감성을 표현할 수 있다는 자체가 에밀 쿠스트리차 영화에서 추구하던 '마법적 리얼리즘'이다.
이러한 마법은 '대담'하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하나하나는 천박한 소리지만 묶어서 고급스러운 느낌을 낼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대담하기 때문이다. 소리 자체를 드러내는데 위축이 된다면 이러한 화학적 마법은 일어나지 않는다. 국악 등과 크로스오버를 시도한 우리나라 대중음악이 실패한 이유 중 하나는 전통적으로 '위축'되어 있기 때문 아닐까? 자신을 세련된 스타일로 솔직히 드러내는 이가 진정한 작가이며 고란 브레고비치는 그러한 측면에서 하나의 프로토타입이 될 수 있다. 그 역시도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의 피가 섞이고 이슬람과 결혼했으며 1500만 장 판매의 엄청난 성공과 내란으로 인해 생존가 가난을 겪은 드라마틱한 삶을 산 인물이며 그의 음악 속에는 발칸의 한 개인일 뿐인 그 자신의 인생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닫혀진 공연장의 특성 상 원래 음자체가 큰 브라스의 볼륨이 너무 크게 설정되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남성 보컬의 맛이 묻혔고 원래 볼륨과 스피커의 소리가 비슷하게 들리는 내 위치의 특성 상 어지러움증을 불러일으켰다. 원래 웨딩 & 퓨너럴 밴드는 50명을 넘어서는 초대형 편성이었다고 한다. 그러한 편성 자체가 들려주는 사운드는 어떠할지 궁금하다.
관중의 환호에 대해 고란 브레고비치는 자신의 심장 쪽에 오른 손을 빈번히 대곤 했는데 이는 아마 발칸에서 진심을 표현하는 방법일 듯 하다. 관중들은 이에 열렬하기 화답했다. 발칸이나 한국이나 감정 표현에 솔직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많고 이는 고란 브레고비치의 음악이 우리나라에서 통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Lineup
아래 라인업에서 여성 보컬 추가 및 남성 추가 제외됨.
Goran Bregovic: Guitar/Synthesizer, vocals
A Gypsy Brass Band
Alen Ademovic: goc(trad.drum), vocals
Bokan Stankovic: trumphet1
Dragan Ristovski: trumphet2
Ekrem Demirovic: trumphet3, vocals
Stojan Dimov: sax, clarinette
Ivan Jovanovic: trombone1
Milos Mihajlovic: trombone2
Aleksandar Rajkovic: trombone2, glockenspiel
Dejan Manigodic: tuba
Vaska Jankovska: vocals solo
Bulgarian voices
Ludmila Radkova-Trajkova: vocals
Daniela Radkova-Aleksandrova: vocals
Setlist
TDV(Scherzo) "Tales & Songs from Weddings..."
Polizia molto arrabbiata "Tales & Songs from Weddings..."
Cupcik
Ederlezi Avela
Underground Tango-Ausencia "underground"
Hop-Hop-Hop "Tales & Songs from Weddings..."
Maki, Maki "Tales & Songs from Weddings..."
Coctail Molotov "Tales & Songs from Weddings..."
Borino Oro "Tims of the Gypsies"
Get the Money "Arizona Dream"
La Nuit-Elo-Hi "La Reine Margot"
So nevo si "Tales & Songs from Weddings..."
Wedding Cocek "Underground"
Sex "Tales & Songs from Weddings..."
Aven Ivenda "Tales & Songs from Weddings..."
Te Kuravle "Tales & Songs from Weddings..."
Ringe Ringe Raja "Underground"
Prawe do Lewega "Bregovic-Kayah"
In the Death Car "Arizona Dream"
Ederlezi "Times of the Gypsies"
Mjesecina(Moonlight) "Underground
Simple한 앵콜곡
돌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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