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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고전

Eric Clapton

현역 최장수 록커이면서 아직까지도 왕성한 활동과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아티스트로 롤링스톤즈와 에릭클랩튼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둘 다 록큰롤 역사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쳤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차이가 있다면 롤링스톤즈가 지금까지도 60년대 초반의 원초적 록큰롤의 에너지를 유지하고 있는 록의 살아 있는 화석과 같은 존재라면 에릭클랩튼은 록의 부침 및 역사와 더불어 음악적 양상을 달리했던 아티스트이다.

롤링스톤즈의 음악이 록큰롤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이라면 에릭클랩튼은 이상의 60년대, 록의 갱년기와 같은 70년대 중반, 침체기인 80년대, 복고의 90년대를 거치면서 록의 상징적인 아이콘이 되어왔다. 에릭클랩튼의 바이오그래피와 음악을 이해하는 것은 록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될 것이다.

에릭클랩튼이 한 말 중에서 이런 것이 있다. “내가 음악에 관해 남들에게 배운 것은 하나뿐이다. 그것은 블루스이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였다.” 이 것은 에릭클랩튼의 음악을 이해하는 키워드가 될 것이다. 에릭클랩튼은 인생과 음악적 여정에서 숱한 부침을 겪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루스라는 어법은 항상 그를 떠나지 않았다. 심지어 마약과 알코올 중독으로 최악의 상황에서도 블루스는 항상 곁에 있어왔고 그의 인생과 하나가 되어 새로운 창조의 밑거름이 되어왔다.

에릭클랩튼은 기타신(Guitar God)또는 미스터 슬로운 핸드(Mr. Slowhand)라는 별명은 가지고 있다. 아름답고 혁신적인 악곡을 쓰는 작곡 실력 뿐만 아니라 기타 연주 부분에서도 넘볼 수 없는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에릭클랩튼은 그의 아름다운 멜로디를 기타 연주를 통해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멜로디에 따라 적절한 피킹으로 곡의 힘을 조절하며 가장 적절한 리듬 및 그루브를 넣는다. 또한 그의 핑거링은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포지션 이동으로 섬세하며 아름다운 음을 낳는다. 슬로우 핸드라는 별명은 느린 연주를 할 것 같은 예상과는 달리 그의 계산된 핑거링에 의해 손가락 이동이 빠른 것 같지 않으면서도 속도감있고 힘있는 곡 해석을 하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특히 두꺼우면서 풍부한 벤딩과 비브라토도 그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와와의 사용도 그의 중요한 공헌 중의 하나이다.

에릭클랩튼(본명:Eric Patrick Clapton)은 1945년 3월 30일 자신의 할아버지의 집에서 태어났다. 불우한 출생과정으로 정상적인 성장과정을 보내지 못한 그는 조용하고 얌전한 성격을 지녔고 청년기에 만지게된 기타와 블루스의 세계는 그에게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프레디킹과 비비킹, 무디워터스, 버디가이 등의 음악을 접하면서 블루스 기타리스트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의 음악적 경력은 63년 초에 첫 밴드인 Roosters로 시작된다. 그리고 키스랄프에 의해 주도된 야드버즈에 가입하므로 본격적인 음악행로가 시작되었다. 야드버즈에서 첫 앨범‘Five Live Yardbirds’를 발매하였다. 여기서 Mr. Slowhand라는 별명을 얻게되었다.

에릭클랩튼 제적 시절 싱글 ‘For Your Love’등의 히트 싱글을 만들어내었다. 이 때 R&B에 기반한 야드버즈의 참신한 사운드는 미국 내 수많은 개러지 밴드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상당한 상업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에릭클랩튼은 그룹을 떠나게 된다. 에릭은 밴드를 떠난 이유로 상업적 싱글의 발매에 치중하는 밴드의 성향에 반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당시 사람들에게 이해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사이먼 프리스의 명저 ‘Sound Effect’에는 60년대 중반이후 상업적 록큰롤과 대별되는 이데올로기인 록정신의 등장을 설명하는 예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후 에릭클랩튼은 65년 4월 브리티쉬 블루스의 최고 거장인 존메이욜의 블루스 브레이커스에 가입했다. 이유는 역시 진짜 블루스를 배우기 위함이었다. 에릭클랩튼이 존메이욜의 밴드에 합류하면서 최고의 신예 기타리스트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에릭클랩튼이 자신의 튜어를 위해 잠시 떠나 있는 동안 존메이욜은 피터그린을 영입했는데 에릭이 복귀하자 피터그린을 다시 해고하는 해프닝이 있기도 하였다. 이는 당시에서도 에릭이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인정받고 있었다는 예가 될 것이다. 그러나 에릭클랩튼이 떠나자 피터그린은 다시 기타리스트로 돌아왔고 피터그린은 솔로활동 및 플리트우드맥에서의 활동 등으로 에릭에 버금가는 거장으로 성장하였다. 아무튼 에릭클랩튼과 존메이욜이 함께한 이 앨범은 존메이욜의 숱한 앨범 중에서도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

  

에릭클랩튼은 1966년 후반 베이시스트 잭브루스, 드러머 진저베이커와 더불어 록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밴드 중 하나인 크림을 결성한다. 그래험 본드 오거니제이션 출신의 진저베이커와 맨프레드맨 출신의 잭브루스는 재즈 지향적인 아티스트였다. 블루스 지향적인 에릭클랩튼과는 대비를 이루며 이상적인 조화를 이루어갔다.

이전에 유행하던 4인조 내지 5인조 이상의 편성과 달리 3명만으로 최대한 에너지를 집약해냈다. 역시 트리오 편성인 지미헨드릭스 익스퍼리언스와 선의의 경쟁을 해갔다. 두 밴드는 트리오 개념을 공고히함과 동시에 사이키델릭의 환각성과 블루스의 에너지에서 하드록이란 장르의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쳤다. 여기서 에릭클랩튼은 White room에서 와와 페달의 사용과 같은 연주 방식의 혁신은 물론, Sunshine of your love에서 하드록의 기타 반복 악절인 리프라는 양식미를 공고히했다. 지미헨드릭스가 무심한듯한 악곡 사이로 즉흥적이면서 폭발적인 힘을 내뿜었다면 에릭클랩튼은 계산된 악곡전개상에서 점층적으로 에너지를 쌓아가는 양식을 선호했다.

크림은 하드록의 선구적인 존재이기도 하지만 최초의 아트록 밴드라고도 불린다. 또한 66년을 아트록의 원년으로 삼는데 이는 크림의 등작과 비틀즈의 revolver의 발표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White room이나 Sunshine of your love같은 히트곡도 그렇고 핑크플로이드나 킹크림슨 등 여타 아트록 밴드와 관련성이 보이지 않는다. 이는 우선, 그들은 로커도 예술적인 음악을 소화하기 위한 비루투오소적 연주력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을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Disraeli Gear와 Wheels of Fire에서 싸이키델릭에서 아트록으로 진화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다시 말해 크림은 싸이키델릭과 블루스에서 얻어질 수 있는 향후 발전 방향을 정한 그룹이었던 것이다. 또한 재즈적 즉흥성을 록에 도입하여 공연을 보다 풍성하게 하였다. 이는 또한 록의 악곡을 보다 길고 복잡하게 만들었다.

67년 데뷔 앨범 Fresh Cream에서는 I feel fine이라는 히트곡을 내었으며 블루스 지향적인 음악을 보였다. 이들은 앨범보다 순회 공연을 통해 인기를 얻었는데 특히 아프리칸 리듬에 기반한 진저베이커의 드럼 솔로는 록역사상 처음 시도된 것으로 청중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67년 발표된 Diraeli Gear는 자켓에서부터 샌프란시스코의 플라워 무브먼트의 영향이 보인다. 이 앨범에서는 무엇보다도 하드록의 양식미를 공고히한 Sunshine of your love이 압권이다. 이전에 비해 즉흥 연주가 확대되어 록의 즉흥 연주 형식을 확립한 앨범으로 자리잡았다. 이 앨범에서는 미국 출신의 팰릭스 파파렐디가 프로듀서를 맡았는데 후에 마운틴을 결성하게된다. Sunshine of your love 외에 가벼운 느낌의 Strange Brew, Tales of brave ulysses 등 모든 곡들이 인상적인 곡이 테마와 혁신적인 연주기법이 사용되었다. 68년 발표된 Wheels of Fire에서는 멤버간의 불화가 심화되면서 이전에서 보였던 조화보다 서로간의 경쟁이 치열해졌다. 특히 에릭클랩튼과 잭브루스의 갈등이 노골적으로 표출되었는데 이는 서로간의 치열한 솔로 플레이로 이어져 또 다른 맛을 준다. 즉흥성에 의한 서로 간의 긴 솔로로 새로운 양식미를 표출했다고 할 수 있다. Wheels of Fire는 더블 앨범으로 제작되었는데 첫면은 스튜디오 앨범 둘째 면은 라이브 앨범으로 발매되었다. 스튜디오 앨범에서는 와와페달의 교과서적인 White room, 블루스에서 하드록적 에너지를 뽑아낸 Sitting on top of the world, Politician, Born under bad sign 과 아트록적인 Passing the time, As you said, Pressed rat and warthog등 각자의 개성이 최대한 발휘되었다. 아트록과 하드록 등 70년대를 장식할 서브 장르의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B면은 로버트 존슨과 윌리 딕슨의 커버곡인 Crossroad와 Spoonful에서 각작의 탁월한 솔로연주가 빛나는 블루스곡과 잭브루스에 의해 주도된 Traintime과 진저베이커의 드럼 솔로가 빛나는 Toad등이 있다. 4곡 중 2곡은 15분을 초과하는 대곡으로 솔로 연주에 의해 진행된 곡들이다. 이들은 Guitar god 내지 Mr. slowhand라는 별명의 에릭클랩튼, 베이스의 귀재 Jack Bruce, 드럼의 마왕 진저베이커 등 별명도 무시무시했다. 너무나 개성이 강한 3명이 모였기 때문에 68년 11월 앨버트홀 공연을 마지막으로 3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해체되었다.

크림 시절, 에릭클랩튼은 비틀즈의 조지해리슨과 잦은 교류를 가졌다. 에릭클랩튼은 화이트 앨범 최고의 곡 중에 하나인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에서 힘이 넘치는 연주를 보여주었고 조지 해리슨은 뛰어난 멜로디의 Badge를 작곡해주었다. 이러한 음악적 교류는 당시 풍족한 음악적 토양을 말해주는 것이고 또한 Layla의 주인공인 패티 보이드와의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했던 것이다.

이후

  에릭클랩튼는 단 한장의 앨범만 남긴 수퍼프로젝트 밴드인 블라인드페이스에 참가하였다. 크림의 멤버였던 진저베이커와 베이스에 릭그레치, 트래픽 출신의 스티브 윈우드이 참여하였다. 여린듯하면서 소울적인 감성의 스티브 윈우드가 이 프로젝트의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스티브 윈우드가 가장 많은 세곡의 작곡을 맡았으며 에릭클랩튼은 Presence of the load를 작곡했는데 이곡 역시 스티브 윈우드의 영향이 눈에 띄는 가스펠적인 느낌의 곡이며 간주부에 와와기반한 열띈 솔로를 보여준다. 에릭클랩튼은 크림 시절 록적인 에너지에 심취했던 것과 달리 멜로딕한 작법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The Band’의 ‘Music from big pink’와 더불어 스티브 윈우드의 작법이 큰 영향을 미쳤다. 동명 타이틀 앨범에서 크림에서 보여주었던 강렬한 에너지가 보여지지 않아 아쉬움도 있었지만 소울적인 감성과 감칠맛 나는 멜로디가 자주 들을수록 맛이 나는 앨범이다. 25만 명 이상이 모인 런던 하이드 파크의 큰 공연과 6주간의 미국 공연여행을 치루고 해체했다.

이후 에릭클랩튼은 진짜 블루스를 배우기 위해 남부의 블루스 밴드인 델라니 앤 보니와 같이 작업했다. 상업적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이 프로젝트는 그 다음 행로를 위한 새로운 포석이었다. 에릭클랩튼 사상 최고의 경력이 된 Derek and the Dominos를 결성했다. 이 밴드에서 델라니 앤 보니 당시의 라인업에 당대 최고의 블루스 라이브 밴드였던 올맨 브라더스의 듀안 올맨이 참가했다. 한 때 카를로스 산타나가 물망에 올랐으나 산타나가 거절하므로서 듀안 올맨이 결정되었다. 이 앨범에서 듀안 올맨은 에릭클랩튼 못지 않은 활약을 보였다. 특히 용솟음 치는 에릭의 블루지한 기타에 어우러진 듀안 올맨의 슬라이드 기타는 기타 인스트루멘탈 사상에 이정표를 세웠다고 할 수 있다.

이 앨범을 에릭클랩튼의 디스코그라피에서 정점으로 보는데에는 이전 크림에서 보여주었던 힘과 실험성과 이후에 보여주는 따뜻한 감성의 멜로디가 어우러져 최고의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정말 끝내주는 듀안올맨의 슬라이드 기타연주가 삽입된 타이틀 곡외에 other asserted love songs들도 만만치 않다. 정겨운 컨추리풍의 I looked away, 따뜻한 멜로디의 Bell bottom blues, I am yours, 속도감 있으며 그루브한 Keep on growing과 Why does love got to be so sad, 정통 블루스 넘버 Have you ever loved a woman등 모든 곡이 아름다운 멜로디와 은근한 사이로 현란하며 힘있는 연주로 표현되었다. 이는 패티 보이드에 대한 실연의 아픔과 한창 마약 중독에 빠져들고 있을 때 낸 작품이다. 개인적인 불행이 오히려 예술적으로 승화된 경우라 할 수 있다.

정점은 곧 내리막을 의미했다. 이 때 최고의 음악적 파트너였던 듀언 올맨과 선의의 경쟁자이자 영혼의 동지인 지미헨드릭스는 저 세상으로 갔다. 그리고 패티보이드에 대한 짝사랑의 실연은 그에게 마약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었다. 에릭은 한동안 엄청난 슬럼프로 빠지게 되었다. 이는 정점에 이른 록의 예술적 지평의 확대와 더불어 한계에 다다른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이 때 그에게 구원의 손을 뻣친 것은 후의 기타리스트 피터 타운젠드였다. 이 때 에릭의 재기를 위한 공연은 RAINBOW CONCERT라는 타이틀로 발매되었다.

  face="바탕" size="2">그리고 휴양지로 선택되었던 461 ocean boulevard를 타이틀로 재기작을 내놓았다. 이 앨범은 숱한 에릭클랩튼의 솔로앨범 중 최고로 평가되는 앨범이다. 특히 밥말리의 곡을 리메이크한 I shot the sheriff은 제3세계 음악에 관심을 표명한 곡이다. 또한 속도감있는 Motherless children이나 멜론콜리한 멜로디의 Let it grow등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이전의 실험적이며 에너지에 가득찬 록이 아니라 성인 취향의 Adult contemporary 록 사운드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이 앨범은 이전 앨범에 비해 멜로디 센스에 있어서 향상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그루브한 리듬감은 충분히 만족감을 줄 수 있다.

78년에 발표된 에릭클랩튼의 별명을 딴 앨범 Slow hand는 461 ocean boulevard와 더불어 솔로시절을 대표하는 앨범 중 하나이다. 이 앨범에서는 패티 보이드와의 사랑의 결실을 다룬 감미로운 발라드 넘버 Wonderful tonight이 있다. 한편 발랄한 Lay down sally와 J.J.Cale의 곡을 리메이크한 블루스곡 Coccaine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여기서 에릭클랩튼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었고 이전의 에너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것 또한 록의 모습이었다. 공룡화된 브리티쉬 록은 창의력의 한계에 다다랐던 것이다.

80년대에 펑크와 뉴웨이브의 등장으로 70년대를 장식했던 대형 밴드들은 하나 둘 씩 사라지거나 침체기에 빠졌다. 에릭클랩튼도 예외가 아니었다. Another Ticket 등 몇몇 히트 앨범을 내놓았지만 대중음악을 주도하던 그의 모습은 사라졌다. 에릭클랩튼도 직접 밝혔듯이 이전에 가졌던 정중동의 에너지는 사라졌고 멜로딕한 작법에 치중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불 간 아티스트로 인식되어지던 에릭클랩튼이 새롭게 인식되어진 것은 90년대 초 MTV unplugged를 통해서 이다. 발라드 싱어로 인식되어지는 부작용도 있었지만 이 역시 블루스에 기반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보고 싶다. MTV unplugged에서 큰 히트를 차지한 Tears in heaven외에 독특한 블루스로 제 편곡한 Layla가 인상적이었다. 이 때까지 블루스만 집요하게 추구해온 그의 음악을 어쿠스틱 기타로 표현했다. 또한 From the cradle에서도 블루스로서의 회귀를 분명히 했고 영화 Phenomenon 사운드 트렉의 Change the world를 통해 지속적인 상업적 성공도 거두었다. 또한 엠비언트적 성향의 프로젝트를 기획하므로 그의 실험정신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이기도 했다. 밴드시절 인정해주지 않던 그래미에서도 두어차례 주요부분을 독식하는등 인정받기 시작했다. 전성기 시절을 뛰어넘는 상업적 성공은 에릭클랩튼의 뛰어난 멜로디감각을 발휘한 발라드곡들에도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복고 지향으로 돌아선 90년대의 음악적 풍토에 기반한 것이다.

그렇지만 에릭클랩튼의 최전성기는 뭐니뭐니해도 70년을 전후한 그룹시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때는 기타신으로 일컬어질만한 엄청난 에너지와 실험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 밤의 우상으로 군림하던 전영혁씨의 방송에 에릭클랩튼의 삼대 걸작 앨범으로 Cream의 Wheels of fire, Blindfaith의 동명 타이틀 앨범, Derek and the Dominos의 Layla and other asserted love songs를 꼽았다. 필자도 여기에 철저히 공감하는 바이다.

또, 최근 있었던 에릭클랩튼의 라이브 공연에서 아직도 사그러들지않는 에너지와 록에 대한 열정을 볼 수 있었다. 예전 보다 못한 음악을 하지 않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에릭클랩튼의 대답은 가히 걸작이었다.

“나는 지금 내음악을 평하는 이들이 살아온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동안 음악을 해왔다. 나는 개의치 않는다.”

록의 흥망성쇠와 함께해온 그의 캐리어에 대한 자신감이다. 평자들의 일차원적인 해석을 하기에는 그의 음악적 여정은 너무나 길고 거대하다. 소박한 옷차림과 단순한 무대매너에서도 엄청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그의 공연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또한, 틈만나면 청년들이 많은 활기찬 거리를 혼자 돌아다니는 그의 모습은 아직도 영원한 로커임을 알 수 있게하는 예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ERIC CLAPTON WITH YARDBIRDS>

FOR YOUR LOVE (65)

HAVING A RAVE UP (65)

LIVE WITH SONY BOY WILLIAMSON (65)

ERIC CLAPTON AND YARDBIRDS (75)

<ERIC CLAPTON WITH JOHN MAYALL'S BLUES BREAKERS>

BLUESBREAKERS (65)

<CREAM>

FRESH CREAM(66)

DISRAELI GEAR(67)

WHEELS OF FIRE(68)

GOODBYE(69)

<ERIC CLAPTON WITH DELANEY &BONNIE>

"ON TOUR" DELANEY & BONNIE & FRIENDS WITH ERIC CLAPTON (70)

<DEREK AND THE DOMINOS>

LAYLA AND OTHER ASSORTED LOVE SONGS (70)

IN CONCERT (73)

LIVE AT THE FILLMORE (94)



ERIC CLAPTON (70)

HISTORY OF ERIC CLAPTON (74)

CLAPTON (73)

RAINBOW CONCERT (73)

461 OCEAN BOULEVARD (74)

THERE'S ONE IN EVERY CROWD (75)

E.C. WAS HERE (75)

NO REASON TO CRY (76)

SLOW HAND (77)

BACKLESS (78)

JUST ONE NIGHT (80)

ANOTHER TICKET (81)

MONEY AND CIGARETTES (83)

O.S.T. RUSH (91)

24 NIGHTS (91)

UNPLUGGED (92)

FROM THE CRADLE (95)

PILGRIM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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