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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고전

밥딜런의 후예들-미국식 록

Singer song writer

실로 록의 시대였던 60년대 후반은 포크에서 시작된 사이키델릭의 시대였다.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한 히피즘이 한계에 다다르기 시작한 69년, 70년의 가장 주목할 부분 중의 하나는 포크적 사운드에 근접한 싱어송 라이터군의 대거 등장이다. 사실 '싱어 송라이터'의 역사는 음악의 역사와 같이한다. 그리고 장르명으로 칭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트록이 단지 예술록이 아닌 것처럼 '싱어송 라이터'의 개념도 단지 어휘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시대적 조류와 스타일로 파악해야할 것이다. 일단, 싱어송 라이터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한 사람의 '가수'와 '가수'의 노래에 초점이 모아진다. 싱어송 라이터는 기본적으로 포크와 포크록에서 파생된 개념이며 사운드도 이에 기반한 기타와 피아노 등의 반주에 맞추어 혼자 노래하는 형식이다. 사실, 이는 사이키델릭의 전성기를 거치면서 일렉트릭 기타에 기반한 큰 사운드에 주목하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며 이는 이 시기를 거쳐 개념이 정립되었다는 것과 상당히 모순이다. 60년 후반과 70년대를 관통하면서 한편으로는 좌절과 허탈감이 있었다. 히피즘의 부작용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월남전의 종결과 더불어 투쟁의 대상이 사라졌고 록 밴드의 영웅주의는 한계를 드러냈다. 대중들은 영웅보다 오히려 자기와 같은 하나의 친구를 찾게 되었고 이 때 싱어송 라이터들이 주목받게 되었다. 우선, 곡의 특성이나 악기편성등은 포크 음악의 연장선상에 있으나 사회적이었던 사이키델릭 뮤지션과 달리 싱어송 라이터군의 특징은 개인적이고 내면적이었다. 특히 치열했던 60년대를 경험한 이들이 대부분이라 공허감과 좌절 등의 개인적인 감정을 솔직담백하게 표현하였다. 그리고 이전의 포크에 비해 보다 섬세한 사운드와 시적인 가사를 들려주었다. 사실, 이는 사이키델릭이 포크와 이질적이면서도 포크록으로부터 파생된 장르인 것처럼 싱어송 라이터군의 태생에도 사이키델릭의 영향이 있었던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도 선두주자는 밥딜런이었다. 66년 교통 사고 이후, 그의 가사는 보다 개인적으로 되었고 한 때 컨추리록을 시도하기도 했다. 때로는 암울한 정서가 걸작을 낳기도 했고-Blood on the track, 종교에 귀의하기도 하였다-Slow train coming. 한동안의 슬럼프 그리고 죽음의 고비였던 암투병 이후 Time out of mind로 가뿐하게 제기했다. 연주가 뛰어나지도 그렇다고 노래를 잘하는 것은 아닌 그에게 최고의 찬사가 주어지는 것은 너무나 탁월한 가사, 그리고 유행이나 ***다워야한다는 허위의식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따르는 솔직한 음악적 행로 때문이다.
사이먼 앤 가펑클 출신의 폴 사이먼은 레게, 살사, 아프리칸 리듬 등 다양한 리듬감에 강점이 있었고 특히 남아공 뮤지션들과 같이한 Graceland는 월드 뮤직이라는 개념을 널리 알린 걸작이다. 이후 발표한 The Rhythm Of Saints은 브라질 리듬에 대한 탐구를 나타냈으며 그 이후에도 그의 재능을 지속적으로 알리는 수작을 발표했다.
닐영이 지니는 이미지는 상당히 독특하다. 포크, 컨추리, 하드록 등 다양한 장르의 시도 속에서도 그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으며 또한 고고함을 끝가지 지켜가고 있는 진정한 로커이기도 하다 . 버팔로 스프링 필드 시절의 당시로는 새로운 시도였던 컨추리록, 그리고 CSN&Y에서 보여준 포크록, 이의 연장선상이면서 그만의 날카로운 의식을 보여주는 70년대의 음반들, 투박한 하드록 사운드를 보여주면서 얼터너티브 뮤지션들에 영향을 준 80,90년대... 그에게는 히피만의 자유를 찾을 수 있다. 또, 그는 특출한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는데 테크닉적으로 탁월한 것은 아니지만 어쿠스틱, 일렉트릭 모두 독특한 맛을 잘 뽑아내는 기타리스트이다. 그리고 그의 사운드는 전형적인 싱어송 라이터와는 달리 밴드 형식일 때가 많다. 이러한 다른 점에도 그를 싱어송 라이터군의 대표 중의 하나로 꼽는 이유는-어쿠스틱한 사운드의 포용과 더불어-내면적 성찰을 보여주는 가사의 깊이에 있다. 70년 전후에서는 Crazy Horse'라는 백밴드를 이끌었다. 'Everybody knows this is nowhere', 'After the gold rush'는 이 때 발표된 앨범으로 CSN&Y의 활동을 같이 활동할 때 발표된 앨범으로 포크록의 특성을 지닌 그의 최고 앨범으로 꼽힌다. 이후 비장미 넘치는 'Tonight is the night', 커트 코베인을 추모하는 'Sleep with angel'등 숱한 수작을 발표하였다.
도노반은 60년대 중반 이후 밥딜런에 대한 영국의 응답이라는 호칭이 있었다. 이런 반응은 사실 오히려 그에게 부담감을 작용했다. 사실, 그의 음악은 포그와 사이키델릭의 중간에 서있다. 그 점을 무엇보다도 Sunshine Superman과 Mellow Yellow등에 두드러진다. 우주적이고 과장된 음악과 가사는 때로는 비판으로 받기도 했고 이 때문에 명성이 기울기도 했다.
아일랜드 출신의 밴 모리슨도 빼놓을 수 없다. 밴드 뎀을 이끌던 밴 모리슨은 롤링스톤 등의 100대 음반에 빠지지 않는 역사적인 명반 Astral Weeks, 그리고 이후 Moondance를 발표하였다. 블루스와 포크, 재즈등이 기묘하게 통합되었는데 이런 방법론 중에서 독특한 맛을 풍기는 이유는 지역적인 특성 때문이었다. 밴 모리슨의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은 이후 숱하게 등장하게 될 신비한 분위기의 아일랜드적 전통을 개척했다는 것이다.
70년대 들어와서 새롭게 등장하여 싱어송 라이터의 등장을 알린 선두주자는 제임스 테일러, 조니 미첼, 캐롤 킹 등이다. 제임스 테일러는 리메이크 곡으로 많은 인기를 누렸다. 70년 발표한 Sweet baby James는 Steamroller Blues, Fire and Rain등의 히트곡을 내었다. 이 앨범은 60년대를 지나간 미국인들의 감성을 어루마진 앨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75년 발표한 Gorilla는 마빈 게이 등의 리메이크로 넓은 사랑을 받았다. 제임스 테일러는 진지한 가사와 어쿠스틱 기타라는 싱어송 라이터의 전형성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다. 감성적인 음악의 정수 잭슨 브라운의 정점은 캘리포니아의 지역적 특성에 기반하였다. 특히 77년 발표한 Stay/The Load out이 수록된 Running on Empty는 그의 최고 걸작이다. 70년대 이후 정치색이 점점 약해지던 다른 싱어송 라이터와 달리 오히려 강한 정치색을 보이고도 하였다.
싱어송 라이터의 경우 상대적으로 여성 아티스트의 활약이 돋보이는데 싱어송 라이터의 개념을 만들어간 중추적 인물 중의 하나인 조니 미첼이 단연 선두에 선다. 캐나다 출신이면서 LA를 중심으로 아주 독창적인 음악성을 보였다. 그녀 역시 기타와 피아노를 중심으로 사운드를 선보였지만 창의적 실험성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다. 투박한 질감과 섬세함이 살아있는 포크록 Blue가 대표적이다. 또, 이후 재즈등의 다양한 결합, 그리고 예술적인 자켓을 직접 디자인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었다. 캐롤 킹은 상처받은 미국인 들을 따뜻한 노래로 감쌌다. 특히 무엇보다도 Tarpestry는 빠질 수 없는 걸작이다.
허드슨 강의 음유시인이라 불리던 돈 맥클린도 빼놓을 수 없다. American Pie에 포함된 American Pie는 비틀즈, 버즈, 버디할리 등을 간접적으로 언급하며 지나간 60년대에 대해 비판적으로 그리고 시적으로 노래했다. 돈 맥클린은-다른 싱어송 라이터 들이 그렇듯이- 국내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었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빈센트 반 고호를 노래한 Vincent때문이다.
닉 드레이크는 캠브리지 재학시절 페어포트 컨벤션의 눈에 띄어 데뷔하였다. 감성적인 닉의 목소리와 기타는 부분적인 현악 세션의 지원으로 인해 풍성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특히 그의 음악은 신비롭고 왠지 모를 우수에 젖어 있는데 이것의 그의 의문사와 더불어 그의 존재감을 포크록계의 신화로 남게 했다.

랜디 뉴먼은 뉴올리언즈와 클래식적 토양의 집안 환경을 통해 이론적으로 무장된 싱어 송 라이터였다. 깊은 멜로디와 더불어 때로는 밥딜런을 녹화하는 가사에 포함된 시니컬함을 보여주곤 한다. 그의 사운드는 피아노 사운드에 때때로 오케스트라를 효과적으로 삽입한다. 데뷔작이나 Sail away등이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사실, 싱어송 라이터 계열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다양성이다. 멤버간의 집약성이 중요한 밴드 편성과 달리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성을 마음 껏 포함할 수 있기 때문에 작가 한 명, 한 명의 음악성과 가치관이 솔직하게 드러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록/팝의 역사에 높이 평가받는 앨범이 많다.


    컨추리록

매년 그래미 등의 시상식을 보면 미국에서 팝음악은 Pop/Rock, R&B, Country로 크게 세부분으로 구분됨을 볼 수 있다. 사실, 컨추리가 너무나 이질적인 우리에게는 쉽게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지만 이렇게 컨추리는 미국 대중음악의 큰 축 중 하나이다. 실지로 음반 판매량이나 공연 수익 등도 작지 않은데 미국 음반 시장에서 두번째로 많이 판 아티스트는 90년대 컨추리 르네상스의 주역인 Garth Brooks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록이 지니는 장르의 포용력, 그리고 록 또한 미국적인 장르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록과 컨추리의 만남은 너무나 예상 가능한 일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대형 아티스트들은 컨추리록으로 꽤 괜찮은 앨범을 내곤했다. 60년대 후반의 밥딜런이 그랬고 Byrds도 그랬다.
닐영과 스티븐 스틸즈를 배출한 버팔로 스프링필드는 천추리록의 선두적인 그룹이었다. 캐나다 출신의 더 밴드는 포크록과 컨추리록 사이를 오갔던 미국 출신이 아니면서도 상당히 미국적인 록 밴드이다. 밴드 61년 로니 호킨스의 밴배드로 데뷔하였다. 해산 후 65년 경 밥딜런의 백밴드로 발탁되었따. 이 맘때 쯤 밥딜런은 정상의 뮤지션이었으니 이미 실력을 인정 받은 샘이었다. 밥딜런의 당시 최고 명작 뿐만 아니라 75년에야 발표되는 Basement tape등을 같이 발표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
밥딜런의 오토바이 사고 후 그들은 68년 그들의 데뷔앨범 Music from big pink를 발표한다. 이 앨범은 비평가들로부터 숱한 찬사를 들었고-사실 미국 비평가들은 이런 흙냄새나는 사운드에 아주 약하다. 마초적이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은 그들의 사운드는 당시 사이키델릭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이들에게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의 사운드는 밥딜런과의 교류에서 알 수 있듯이 컨추리, 블루스,포크를 그들만의 성인록으로 만들었다.
에릭 클랩튼은 이 앨범을 가리켜 멜로디 쓰는 방법을 이 앨범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 말했고 특히 'the weight'등에서 들려지는 담백한 멜로디는 실증나지않는 즐거움을 준다. 이은 앨범인 The Band도 이에 못지 않은 성공작이었으며 계속되는 성공을 뒤로한채 77년 마지막 라이브를 앨범으로 발매한 채-'Last Waltz'-해산하였다.
사이키델릭의 대표주자였던 그레이트풀 데드의 경우, 70년 전후에서 두장의 뛰어난 컨추리록 앨범, Working man's Dead와 American Beauty를 발표했다.
이글스는 컨추리적인 정겨움과 담백함, 그리고 미국적 정서를 이용해 최고의 성공을 거두었다. 초기작의 모음인 Greatest hit1971-1975는 사실 미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다. 비교적 최근 Michael Jackson의 Thriller를 앞서며 2600만장의 경이적인 판매량을 보였다. 반면, 전세게적인 판매량은 그만큼 많지 않는데 이는 컨추리와 컨추리록이 역시 미국적인 음악임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 최고의 앨범은 James Gang 출신의 탁월한 기타리스트 조월시가 가입한 76년에 나왔다. 바로 Hotel California이다. 여기서 들려주는 멋들어진 기타솔로는 미국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기타솔로로 꼽히곤 하는데 여기서 바로 조월시의 실력이 발휘되었다. 이글스는 로스앤젤레스에 근거를 두었는데 비록 남부의 전통과 비교할 바는 아니었지만 로스엔젤레스도 컨추리적 전통이 멕시코적인 성향을 포함한체 존재하고 있었다. 이들의 음악에는 따라서 컨추리적인 성향외에 텍사스-멕시고적인 악센트, 그리고 LA의 보다 록적인 특성이 있다. 이들의 가장 큰 업적은 버즈와 버팔로 스프링필드등의 컨추리록 전통을 포다 하드록적이고 인스트루멘탈적으로 강화시켰다는데에 있다. 지금 여기서는 록 아티스트들이 컨추리적인 요소를 어떻게 바탕으로 받아들였냐에 중점을 두었다. 이는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컨추리를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하다. 록 아티스트가 컨추리에 관심을 가진 것처럼 컨추리 아티스트도 록적인 요소를 통해 구닥다리 음악이라는 선입견에서 탈피하고 상업성을 확보하곤 하는데 90년대에 더욱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가스 브룩스, 샤니아 트웨인 등이 대표적이다.


    루츠록

90년대 중반 가장 놀라운 사건중의 하나는 너무나 평범한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의 밴드 Hootie and the Blowfish라는 신예 밴드가 1300만장이라는 엄청난 판매량의 앨범을 발표한 것이었다. 이는 미국인들이 미국적인 전통의 록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하였다. 이들의 지나친 평범함은 이후 앨범에서 실패를 불러왔지만 이들 외에도 많은 이런 성향의 밴드들이 차트를 잠식하였다. 강력한 얼터너티브와 펑크, 감각적인 모던록 등이 기세가 등등할 때도 위와 같은 성향의 밴드들은 요란하지만 꾸준히 성공을 거두어왔던 것이다. Black Crowes는 블루스적이고 정통적이었다. 지미 페이지와의 앨범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이 추구했던 것은 70년대 정통 록 사운드로의 회귀였다. 한편, Collective Soul은 훨씬 Groove를 강조했다. 이 팀의 리더 에드롤랜드는 곡을 재밌게 쓰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었고 간결하지만 그루브한 첫번째 히트곡 Shine은 그들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특히 간주 사이의 장난기 어린 '어이'소리와 함께. 그들의 두번째 앨범이자 동명 타이틀 앨범은 그들의 정점이었다. 단순하지만 그루브하고 강력한 하드록 넘버 Simple과 Gel, 담담하게 스케일이 큰 December, The world I know등 많은 히트곡을 내었다. Third Eye blind는 보다 발랄했다. Semi-charmed life는 마치 초기 비틀즈를 연상시킬만큼 발랄하다. Fastball은 복고적인 성향이 능청스러울 정도인 밴드이다. 최고의 히트곡 The way의 시작 부분에 녹음 방식은 그들의 음악적 성향을 잘 보여준다. 제이콥 딜런의 밴드 Wallflowers는 루츠록 계열에 있어서 사운드의 완성이라할 만 하다. 그들을 유명하게 만드는데에는 두번째 앨범 Bringing down the horse와 One headlight의 히트가 컸지만 사운드는 세번째 앨범 Breach에서 완성되었다. 루츠록 계열의 최상의 사운드라할만큼 소리의 질감이 뛰어나고 멜로디라인, 그리고 노랫말의 깊이도 충분하다. 밥딜런이 뿌린 미국적인 록을 아들인 제이콥 딜런이 완성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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