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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고전

사이키델릭-환각의 미로를 찾아서

사이키델릭 록에 관해서

-1967년을 전후해서

사실, 사이키델릭은 67년을 전후해서 유행했던 트렌드일 뿐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키델릭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사이키델릭 록이 록 역사상에 끼친 영향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사이키델릭 록이 유행했던 60년대 후반은 록 역사상 가장 창조력이 넘치는 시기로 기억되고 있다. 이 당시 정립되었던 록의 장르 개념은 아직까지도 유효한 것들이다.

사이키델릭 록의 시발은 브리티쉬 인베이젼, 특히 비틀즈에 있다. 러버소울의 몽롱한 자켓과 Revolver의 스튜디오를 통한 과감한 실험성은 사이키델릭의 형성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특히 Revolver에서 가진 인도 문화에 대한 관심 그리고 혁신적인 사운드는 최초의 사이키델릭록 또는 최초의 아트록이란 표현이 사용되기도 하였다.-물론, 비틀즈가 사이키델릭록에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사이키델릭 밴드로 규정하는데는 거부감이 있다.- 사실, Revolver의 탄생에는 비치보이스의 Pet Sounds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또한, 후의 피트 타운젠드와 야드버즈의 제프벡이 최초로 시도한 피드백은 기타 사운드를 통해 끊김없이 부유하는 느낌을 시도하게 적합한 기법이었다. 비틀즈에 대한 미국의 응답으로 불려졌던 버즈의 Mr.Tamberine man과 Eight Miles High는 인도 명상 문화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마약에 대한 암시를 가리킴으로서 포크록과 더불어 사이키델릭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이키델릭 록은 LSD의 보급으로 급격하게 보급된다. LSD를 통한 환각에 대한 경험은 앰프를 통해 소리가 보이는 것 같은 경험을 주게되고 이는 창작자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었다. 사이키델릭록은 영국의 런던과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 독자적으로 전개되었다. 영국의 사이키델릭이 비틀즈, 핑크플로이드, 크림, 소프트 머신 등 수퍼그룹 들에 의해 록의 예술적 지평을 넓히는데에 기여했다. 반면, 샌프란시스코의 사이키델릭 신은 보다 광범위한 밴드를 통해 펼쳐졌는데 음악적 혁신은 물론 히피와 플라워 무브먼트라는 사회적 운동으로까지 이어였다.

  

우선, 런던의 사이키델릭 신을 보자. 사실, 비틀즈의 Revolver, Sgt.Pepper’s, Mystery Magical Tour에 이어지는 명반들의 영향이 압도적이다. 인도 문화에 대한 관심, 실험적 사운드, 환각에 의한 참신한 악곡 등 사이키델릭의 가능성을 충분히 타진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후, White 앨범과 Abbeyroad에 이르기까지 사이키델릭의 잔향이 보인다.


  

한편 런던 UFO클럽에서 Syd Barret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던 초기 핑크플로이든 브리티쉬 사이키델릭 씬을 대표할만한 밴드였다. 읽으러진 그들만의 독특한 사운드는 67년 The Piper at the Gate of Dawn을 통해 표출되었으며 Syd의 탈퇴 이후 A saucerful of secrets와 Ummagumma등 현대음악적 영향을 보이는 걸작들의 신호탄이 되었고 또한 대체 멤버인 데이빗 길모어의 블루스적인 감성과 더불어 향후 핑크 플로이드 사운드에 계속적인 영향을 끼친다. 또한, 같은 클럽 출신으로 아방가르드와 재즈에 힘을 얻어 켄터베리씬의 최고 거물중의 하나가 되는 Soft Machine이 있다.

Cream은 약간 애매한 케이스이다. 사실, 록, 재즈, 블루스등 이전의 음악적 성향을 비루투오소적인 연주력으로 집대성한 이들은 앨범 자켓이나 몇몇 악곡에서 확실히 사이키델릭의 영향이 미치며 실지로 최초의 아트록 및 하드록 밴드로 분류된다. 그럼에도 그들 음악의 다양성 때문에 사이키델릭 밴드로 분류되기 힘들어진다. 소울적인 감성의 스티브 윈우드가 주도한 Traffic의 Mr.Fantasy, 그리고 클래식과의 크로스 오버를 시도한 Procol Harum이나 키스 에머슨의 건반 인스트루멘탈이 주도한 The Nice등도 사이키델릭한 잔영이 드리워졌있다. 사실, 초기 핑크플로이드를 제외한다면 전형적인 사이키델릭 밴드로 분류될 만한 밴드는 브리티쉬 씬에서 찾기 힘들다. 그러나, 브리티쉬 씬은 사이키델릭적인 영감에 의해 하드록, 아트록 등 향후 70년대를 지배할 장르를 생성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샌프란시스코의 사이키델릭 씬은 버즈가 포크록 밴드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65년 이후 캘리포니아의 포크 밴드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전의 포크 밴드가 브리티쉬 인베이젼에 의해 록적인 사운드를 익히게 되고 포크적 보헤미안적 이데올로기가 개입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브리티쉬 사이키델릭씬과 차이를 보여주게 되는 원인이다. 프로테스트 포크의 전통과 보헤미안적인 여유로움이 이어지면서 보다 정치적이고 집단적인 성향을 띄게 되는 것이다. 또한 약물의 보급과 월남전에 대한 거부라는 미국의 현실은 이를 더욱 부채질 했다.

Haight_Ashbury를 중심으로 이들의 조직은 점점 커지게 된다. 샌프란시스코 사이키델릭의 포크적인 정서는 무엇보다도 마마스&파파스의 If you can believe your eyes and ears에서 두드러지며 특히 California Dreaming등은 히피들의 찬가임에 부족함이 없었다.

최초의 샌프란시스코 사운드로 분류되는 뷰 브러멜스, 살라탄스등에서 사이키델릭의 초보적인 양상들이 나타난다. 그 때까지는 그것의 상업적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하다가 67년에 접어들며 LSD의 보급과 히피의 증가로 폭발적인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

여기서 정치적인 성향이 강한 밴드로 컨트리 조 & 피쉬를 들 수 있다. 조 맥도날드를 중심으로한 이들은 월남전에 대한 적극적인 반대와 좌파적인 정치성향을 노골적으로 표출했으며 LSD를 통한 단결을 주장했다. 또한 무대에서 관중들에 Fuck을 외치게한 최초의 밴드이기도 했다. 반면, Quicksilver messenger service는 전원적인 느낌이 강했다. 약국의 카우보이로 불린 이들은 트윈 리드 기타에 의해 움직히는 깔끔하고 정돈된 악상과 공연장에서 약물 중독에 기반한 즉흥연주를 즐겼다. 이들의 67년작 Quicksilver messenger service와 69년작 Happy trails는 프로그레시브의 태동에 영향을 미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한편, 67년의 사랑의 여름이라는 시기와 샌프란시스코라는 지역적 배경을 대표하는 밴드는 단연 Jefferson Airplane이다. 뛰어난 미모와 차가운 보컬의 그레이스 슬릭을 가입하면서 67년 최고의 스타로 뛰어올랐다. 특히 Surrelastic Pillow의 White rabbit과 Somebody to love는 사이키델릭의 특성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곡이다. White rabbit은 노골적인 LSD에 의한 환각 상황을 보여주고 있으며 Somebody to love는 당시 유행하던 사랑, 특히 프리섹스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이키델릭 그룹들이 그렇듯이 그들의 진면목은 공연장에서 발휘되었다. 청중과의 교감이 중요시된 즉흥연주의 자유로움은 당시 히피 공동체 정신의 상징과 같다. 그러나, 67년이 지나고 사이키델릭이 주춤하자 그들은 주류 팝그룹에 편입되었다. 이 또한 몰락해가는 사이키델릭을 보여주는 그들만의 전형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67년이 가지는 상징성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이들이 그들이다.

반면, 계속해서 사이키델릭의 정신을 표출한 밴드는 Grateful dead이다. 이들의 음악은 다른 밴드들의 음악에 비해 사이키델릭한 맛보다는 블루지한 느낌이 강했다. 물론, 그들은 라이브에 들어갈 때 항상 다량의 LSD를 복용하고 들어갔지만. 그들의 사이키델릭적인 측면은 오히려 그들의 공연과 생활 태도에 있었다. 공동체적인 사고방식, 검소한 생활, 청중과의 호흡에 의한 오랜시간의 즉흥연주는 사이키델릭 밴드를 넘어 모든 미국 밴드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최근 기타리스트 제리 가르시아가 사망하기 몇 주전까지 그들은 공연장에 있었다. 사실, 미국에서 제리 가르시아의 죽음은 존레논의 죽음 이상으로 화제가 되었다. 많은 이들은 이들의 공연을 보며 좋았던 당시를 회상하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라이브 실력에 있어서도 탁월했다. 69년에 발매된 Live dead는 블루지한 기타음이 부유하는 편안하고 풍요로운 사운드로 Allman brothers의 라이브와 더불어 20세기 최고의 라이브 앨범으로 꼽힌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사이키델릭 씬에서 최고로 충격적인 등장은 짐모리슨의 도어즈와 지미헨드릭스 익스퍼리언스였다. 짐모리슨의 시적인 가사와 충동적인 보컬, 그리고 레이만자렉의 흐느끼는 오르간 사운드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올리버 스톤의 영화 도어즈는 당시 사이키델릭 밴드들이 보여주었던 청중과 하나가 된 공연 실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시적인 가사와 박진감있는 사운드의 Light my fire와 충격적인 대곡 The End를 포함한 최고의 데뷔 앨범 Doors에서 그들 최고의 사운드를 보여주었다. 이후, 그들의 사운드는 짐모리슨의 몰락과 더불어 이전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한편, 지미헨드릭스 익스퍼리언스는 블루스와의 결합을 통해 향후 록음악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이키델릭의 유산이다.

또한, 3J로 불리는 제니스 조플린은 지미헨드릭스와 마찬가지로 블루스와 사이키델릭의 사이에서 자신의 영역을 창출하였다. Big brother and holding company의 cheap thrill과 미완성 솔로 앨범 pearl에서 보여준 그녀의 보컬은 여자는 아름답게 불러야한다는 기존의 상식에 반하는 것이었다. 여장부적인 힘의 그레이스 슬릭과도 구별되는 자기 파괴적인 그녀의 목소리에 많은 이들이 매료되었다. 이는 곳 우먼록이라는 새로운 전통의 창출을 의미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3명의 멕시코인과 3명의 미국인이 구성한 Santana는 라틴음악의 전통과 사이키델릭, 블루스를 결합하여 라틴록이란 장르를 창출하였다. 두번째 음반인 Abraxas에서 Black magic woman, Samba Pati등의 히트곡을 내놓았다. 이는 사이키델릭과 블루스의 결합가 지니는 창조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사이키델릭이란 장르는 미국의 호황이란 상황과 약물의 의존이라는 상당히 한계를 가진다. 이는 창조적인 뮤지션들을 파멸로 이끌기도 했고, 또한 정치적 성향도 컨트리 조앤 더 피쉬를 제외한다면 눈에 띄지않는다. 이들의 사랑은 곧 풍족함에서 오는 방종을 의미할 수 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짧은 기간동안 보여준 록의 이상과 창조적 에너지는 향후 록의 발전을 지지한 믿거름이 되었다.



Psychedelic 명반(무순): 상당히 광의적인 의미로 선택된 면이 있다.

Beatles:Revolver

Sgt.Pepper's lonely heart club band

Mystery magical tour

Pink Floyd:The piper at the gate of dawn

    A saucerful of secrets

Mamas and Papas: If you can believe your eyes and ears

Grateful Dead: Live dead

Jefferson Airplane: Surrelatic Pillow

Doors: Doors

Jimi Hendrix: Are you experienced?

    Axis, Bold as love

    Electric ladyland

Quicksilver messenger service: Quicksilver messenger service

    Happy trails

Santana:Abrax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