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포츠/축구

세대교체와 팀스피드 - 유로 2008 조별 예선을 통해 본 새로운 경향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유로 2008 조별 예선의 강자들은 각조의 1위를 차지한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크로아티아를 꼽을 수 있다. 지역예선에서 잉글랜드, 조별예선에서 독일을 꺽은 저력을 보여준 크로아티아와 가장 극적인 승부를 연출한 터키, 스페인전 참패를 극복하고 예선을 통과한 마법사 히딩크의 러시아도 주목할만 했지만 예선을 통해 가장 강력한 포스를 보인 팀은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이라는데에 이의를 달기 힘들다. 특히 지난 10년간 최강이었던 프랑스의 참패와 전통적인 강호인 이탈리아와 독일의 고전으로 인해 도박사들의 머리 속은 복잡해지고 있다.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의 공통점은 뚜렷하다. 개개인의 스피드 이상으로 정교하고 빠른 패스로 인한 공격전개-특히 역습-에 의한 팀스피드에 최적화된 팀이라는 점이다. 물론, 예선전을 살아남은 독일과 이탈리아가 토너먼트의 강호다운 면모를 보여주며 우승 트로피에 근접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지나친 수비지향성과 승부차기라는 행운이 많이 작용하는 토너먼트만큼와 비교해서 보다 활발한 경기력을 보이는 조별예선전이 지금 축구의 변화되는 모습을 살펴보기에는 보다 적합할 수도 있다.

이번엔 우승후보로 분류되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깔끔한 경기력은 예상되던 바지만 사상 최고의 죽음의 조로 분류되던 C조의 결과는 사실 충격에 가깝다. 1무 2패, 1득점 6실점이라는 98년 이후 최강 프랑스의 성적표는 불운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참담하다. 부상으로 아웃되기 전까지 혼자 악전고투한 리베리 말고는 기억에 남지 않는 공격진은 지단의 은퇴와 더불어 창의력을 상실했다. 또한, 철통같은 수비진은 초토화되었고 강력한 미드필더의 장악력은 이제 남의 것이 되었다. 바르싸의 후보인 앙리가 부상에서 회복 중이라는 것과 인테르에서도 주전이 아닌 비에라의 공백을 탓하는 것은 더욱 비참해질 뿐. 최고의 활약과 최고의 인상을 남긴 2006년 지단의 은퇴는 프랑스 뿐만 아니라 한 세대의 교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00년대 초반 4대 미드필더로 불렸던 지단, 피구, 베컴, 베론은 이제 국가대표의 중심에서 물러나있다-베론과 베컴의 복귀가 반갑기는 하지만. 토티도 네드베드도 이번엔 없었다. 마드리드와 스페인의 상징이던 라울이 국가대표에 발탁되지 않고도 좋은 경기를 보여주는 스페인 역시 인상적이며 전 시대를 대표하던 골게터 역시 세대 교체가 되고 있다. 전 시대의 영웅을 대시할 C날도는 예상대로 훌륭한 쇼를 보여주고 있으나 이전과 같이 플레이메이커, 쉐도우스트라이커, 환타지스타 등 여러가지 별명으로 불리던 경기의 중심이라 불릴만한 선수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주목받을 선수는 바로 스네이더다. 창의성을 가진 반더바르트 이상으로 스네이더의 스피드는 흥미롭다. 볼을 키핑하고 상대 수비진을 벗겨내는 드리블돌파와 천재적인 패스보다도  보다 좋은 위치에 있는 선수에게 정교하게 전달하거나 직접적으로 빠르게 상대 문전을 향해 가속도를 붙이는 스네이더는 죽음의 C조에서 3승 9득점 1실점이라는 놀라운 성적표를 받아든 네덜란드의 중심이다. 가투소와 같은 싸움소형 미드필더의 위상이 격하된 반면 정확한 위치선정과 패싱타임 그리고 포지션 스위칭으로 상대 미드필더의 밸런스를 깨트리는 미드필더의 움직임이 돋보이고 있다. 종합하자면 한명의 천재를 두명의 마당쇠가 받히는 이전의 방식 대신 전체적인 팀밸런스를 유지하다 공세시 급격히 팀전체의 가속을 통해 숫적우위를 점하는 전술이 이번대회의 대세처럼 보인다. 개인스피드를 넘는 팀스피드를 위한 패싱력에는 그룹의 순간적인 전체 움직임과 더불어 볼터치와 창의력이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한명의 재능보다 보다 다수의 재능들을 고르게 뽑아내는 쪽으로 전술적 흐름이 가고 있다. 세대를 교체하고 이에 맞추어 전술을 가다듬은 팀이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격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