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최신작

디스트릭트 9

walrus 2009. 10. 20. 22:04
1) 미디어 세대의 씨네아스트?
이라크전을 생중계하고 유튜브에 몇분짜리 동영상을 막올리는 그 세대 중에 시네아스트가 있었던가, 좀 늙은 덕후를 포함하더라도 그 세대는 30대가 되어야 한다. 마틴 스콜세지, 에밀 쿠스트리차, 데이빗 린치, 장뤽고다르, 베르톨루치, 오손웰스, 에이젠슈타인. 모두 30 즈음에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요즘은 그런 애들 없다. 그만큼 영화 제작 시스템이 커지면서 어린 것한테는 기회가 안가는 측면도 있고 미디어 세대의 짧은 호흡의 감각은 좋은 영화를 만들 능력을 퇴화시키는 오염 성분이 있지 않았을까? 외계인의 몸으로 변화시키는 이물질처럼. 아이디어와 감각과 젊은 세대의 에너지는 단편과 광고는 만들 수 있지만 영화는 만들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런 식으로 만들면 아이디어는 고갈되고 힘은 부치며 결국 지겨워 진다. 최근 젊은 감독이 만든 한국영화를 보면 장점이 있을지라도 영화는 후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데 이는 미디어세대의 어쩔 수 없는 한계란 생각이 들곤한다. 접점을 찾으면서 빨리 성공한 유일한 인물은 데이빗 핀처 정도로 기억된다. 그런데, 미디어 세대의 감각을 그대로 적용하면서도 끝없는 에너지의 수혈로 2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영화적 호흡을 이어가는 것은 놀라운 능력이다. 물러서지 않고 우리세대의 언어로 새로운 영화 언어를 만들 소질이 보인다.

2) 폭력의 역사에 대한 알레고리와 헐리우드적 방법론의 (상업적으로) 영리한 동거
인종주의와 미디어 사회의 폭력에 대해 노골적이며 기묘한 은유는 장난기 어린 터치로 치고 빠진다. 그 와중에 가족주의, 영웅주의, 극적인 화해, 트랜스포머 식의 정신산만 액션, B급, 인디적 유머등 미국 상업 영화의 공식은 그대로 적용된다. 후자와 동거라는 부분은 한편으로는 씨네키즈들이 별다섯개를 꾸욱 찍어주는데 걸림돌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보다 많은 이들이 죽여주게 재밌어라는 입소문을 내기에 충분한 방법이다. 이 영화 심지어 화제작 클로버필드보다 더 아기자기하게 재밌다.

3)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적자
구토를 유발하는 흉칙함으로 가득한 기괴한 괴수 장르. 영화의 내용은 저질이고 보기 싫다. 하지만 영화의 끝에 우리는 괴물의 편이 되어 있다. 어쩌면 그리스 비극적인 부분이 이런 감정 변화에 대한 하나의 원동력일 수는 있겠지만 영화에는 먼가가 더 있다. 복남이가 좋아하는 우아하고 고상한 것을 사랑하는 것보다 우리와 비슷한 뭐 좀 찌질하고 더러운 것들에 따뜻한 감정을 담아내는 것. 극단의 상황에서 새로운 감정과 발상의 전환을 도출해내는 것. 그다지 많지 않은 자본으로도 새로운 이미지들을 도출해내는 참신한 상상력. 그는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적자다.

디스트릭트 9(District 9, US, 2009, 112min)
감독: 닐 블롬캠프
출연: 샬토 코플리, 바네사 헤이우드

'영화 > 최신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푸른 수염  (0) 2009.10.25
2009 칸 국제광고제  (0) 2009.10.25
퍼니게임  (0) 2009.10.11
하바나 블루스  (0) 2009.10.03
원 위크  (0) 2009.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