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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록클래식

밥 딜런 - 20100331, 체조


8시를 넘은지 얼마되지 않아 소개와 더불어 첫곡 Rainy Day Women # 12 & 35가 시작될 때 깜짝 놀랐다. 귀가 얼얼할 정도로 사운드의 볼륨이 컸기 때문이었다. 이런 광광거리는 사운드의 폭풍우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공연 내내 계속되었다. 예상외로 밥딜런이 기타를 든 러닝타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 유태인 밴드에서 디폴트로 일렉스틱과 어쿠스틱의 질감을 커버하는 두 개의 기타는 항상 연주되었고 상당히 많은 시간은 세 개의 기타가 연주되었다. 드럼의 타격음은 혼을 빼버릴 정도였고 두 세대의 기타와 한 두개의 건반(그 중 하나는 오르간)이 풍만한 사운드를 연출했다. 늘 얘기하는 바지만 '미국'식 사운드는 밥딜런에 의해 만들어졌다. 버즈가 밥딜런을 리메이크 하면서 미국의 비틀즈에 대한 응답을 했다고 하지만 그 이전에 밥딜런이 전자기타를 들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모든 것은 결정되었다. 지금 들어도 깜짝 놀랄 광폭할 사운드인데 당시에 들었을 포크팬들의 충격은 이해하고도 남을만. 김형일 아저씨 때문에 익숙해진 영국식 사운드가 건방진 쿨함이라면 미국식 사운드는 방만함이 있다. 그런데, 그 방만함에 젖어들다 보면 엄청난 포스에 압도된다. 한명한명의 연주는 절대 서두르지 않고 여유로왔지만 그 연주의 조합은 트래디셔널에서 오는 윤기가 흐르면서도 에너지가 넘쳤다. 곰곰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이런 미국락의 사운드는 거의 듣지 못했던 것 같다. 

반면, 비교적 친절하게 시작했던 밥딜런의 노래는 갈수록 이게 도대체 내가 아는 곡이 맞는건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비틀면서 갔다. 좋게 말하면 즉흥적으로 곡을 만드는 것이고 다르게 말하면 리듬, 멜로디 관계없이 마구잡이로 부르는 식이었다. 밥딜런의 보컬이 원래 그렇고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거의 기인에 가깝다할 정도로 과격하게 변형. 내가 좋아하는 Stuck Inside Of Mobile With The Memphis Blues Again는 (그 알아듣기 힘들다는) 가사를 듣고 알아챘고 Just like a Woman은 앞의 4인조 때창단이 후렴구를 부르고 한참 뒤에 갈겨서 Just like a Woman을 해버렸다. 이건 노래를 못부르는게 아니라 거의 의도적으로 보였다. 양동구리와 김좇피리의 목소리를 섞은 것 같은. 반면, 가끔씩 잡은 하모니카와 공연 시간 대부분을 함께 한 오르간 연주는 대충 들어도 정말 훌륭했고 꽉찬 밴드의 사운드와 더불어 더욱 빛이 났는데, 신기한 점은 정말 노래를 대충함에도 보컬의 존재감은 작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 공연을 갈 때 소리크게 따라부를 수 있는 훅이 있는 노래가 나올 때 순간의 희열이라는게 있다. 뭐, 그 부분의 즐거움을 밥딜런은 철저히 외면했다. 셋리스트는 최근 투어 중 가장 한국인이 좋아할만했지만 도대체 노래를 들어서 이곡이 그곡인지 캐치가 되야 말이지. 노래는 물론이고 멘트 역시. 밥딜런이 두 시간 동안 한 멘트는 한번의 땡큐와 간략한 멤버 소개가 다였다. 스크린에 크게 쏴주지도 않았고 조명도 아주 심플하게 갔다. 정작 듣자 하니 튜어 매니저 역시도 10년이 지나서야 말을 걸어볼 수 있었다고. 아임낫데어에서의 밥딜런처럼 이 아저씨는 대중들이 기대하는게 있다면 일단 그걸 집요하게 피해왔다는 것을 오늘 공연에서도 여실히 느꼈다. 이런 이상한 기분은 뭐랄까, 이 할배가 왜 이렇게 불렀을까 고민하다보면 오히려 다른 상상의 공간이 생기는 아이러니.

앵콜 타임, 밥딜런의 공연 스텝이 팔을 휘져으면 앞으로 나오라고 주문을 하는 순간 이 때를 기다렸다는듯이 많은 청춘(이라 하기에는 노친네들도 많으셨지만) 신화의 주인공을 영접하기 위해 난간으로 러시를 했다. Like a Rolling Stone, Jolene, All along the watch tower의 달리는 메들리. 이 역시 앨범의 곡과 싱크업이 무척 힘들었지만. All along the tower가 끄나고 밥딜런은 또 아무 말 없이 양팔을 구부정이 내밀며 감사를 표시했다. All along the watch tower 또는 Blowin' in the wind 둘 중 하나를 마지막으로 하고 예정된 공연은 끝났어야 했지만 계속되는 앵콜에 한국 팬들이 50년을 기다린(실제 50년을 기다린 분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Blowin' in the Wind를 하고 끝냈다. 제프벡처럼 정해진 앵콜이 아니라 진짜 앵콜을 팬서비스로 해주셨다.

이게 사기극인지 뭔가 정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세기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의 떡밥이 우리 앞에 떨어진 하루였다. 이런 떡밥, 자주 떨어지지는 않는다.

setlist
 Rainy Day Women # 12 & 35
 Lay, Lady, Lay
 I'll Be Your Baby Tonight
 Stuck Inside Of Mobile With The Memphis Blues Again
 The Levee's Gonna Break
 Just Like A Woman
 Honest With Me
 Sugar Baby
 High Water (for Charlie Patton)
 Desolation Row
 Highway 61 Revisited
 Shelter From The Storm
 Thunder On The Mountain
 Ballad Of A Thin Man
 Like A Rolling Stone
 Jolene
 All Along The Watchtower
 Blowin' In The W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