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큐브릭 역시 웃기고 뒤통수를 치고 리듬을 타는 미국 영화의 장점을 계승하고 있다. 다시 보니 마치 빌리 와일더의 영화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영화의 주요 캐릭터를 살펴보면 그나마 성숙하는 것은 로리타 뿐이다. 어쩌면 성숙보다는 현실적이 되었다는 말이 낳을 수도 있겠지만. 보수적 사회의 가치관인 정조에 억눌려있지만 실은 욕망에 불타는 샬롯, 그리고 상아탑의 뒤에 숨어 사랑이 아닌 집착을 하게 되는 험버트 그리고 허영에 들뜬, 순수한 것 같은-알고보면 영악했던-천재 퀼티 역시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 상태를 답보하고 있다. 유머러스한 전개에 빠져들게 되지만 정작 각각의 캐릭터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상대방을 도구로 사용했던 것일 뿐. 150분을 위에서 지켜보며 캐릭터에 냉소적인 시선을 유지하는 큐브릭의 성향은 이때도 충분하다. 자신에 대한 냉소도 엿보인다. 술 취한 채, 식탁포같은 것을 뒤집어 쓰고 난 스팔타쿠스야를 외치는 퀼티를 보라.
로리타(Lolita, US, 1962, 152min)
감독: 스탠리 큐브릭
출연: 제임스 메이슨, 쉘리 윈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