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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해적창고

It's only Rock'n'Roll(But I like it) - part.5

잡다구리 생각들


사진은 프로그램 북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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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 & Roll의 필요조건은? 음악을 듣다보면 드는 생각 중 하나. Rock 음악과 Rock'n'Roll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뭐 답은 만드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마음이겠지만 차이가 있다면 Rock음악에는 Rock은 있지만 Roll이 없다는 것이다. 반면, 적어도 Rock'n'Roll이 주류에 진입한 이후부터 Rock음악 자체를 논한다는 것이 성립되는 것이다. 아무리 다르게 보더라도 Rock'n'Roll 특히 55년 빌헤일리의 Rock around the clock이후 Rock'n'Roll이 없다면 Rock이든 헤비메틀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금 다른 질문으로 Rock과 Pop의 차이는 무엇일까? Standard pop을 엘비스는 완전히 새로 정의했다. 미디어의 시기인 20세기에 상당히 대중적이었던 Swing도 있었고 프랭크 시나트라와 같은 스탠다드한 팝뮤지션도 있었지만 TV와 LP등의 미디어를 가장 적극 활용하며 폭발성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은 50년대 록앤롤이었다. 록앤롤은 그 이전에 나온 어떤 음악보다도 Popular한 음악이었으며 진짜 Pop음악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대중음악의 엔트로피가 커짐에 따라 반항적인 10대와 철이 덜든 20대는 자기만의 Society를 원했다. 개나 소나 좋아하는 것 말고 자기 만의 것이라 싶은. 롤링스톤즈는 그 이전부터 마이너였다. 비틀즈가 70%를 위한 음악이었다면 롤링스톤즈는 남은 30%를 위한 음악이었다. Led Zeppelin과 Pink Floyd가 minor를 타겟으로한 강력한 사운드와 심오한 사운드로 성공할 때도 역시 롤링스톤즈는 여전했다. 호황과 발전의 시대가 지나가면서 그들이 일자리로 돌아가고 main stream으로 복귀를 요구받고 그것을 거부하지 못할 때, 포스트베이비붐 세대의 방식은 가끔씩은 향수를 찾는 것이었다. 여전히 롤링스톤즈는 거기 있었다.


그러면, 한국에서 록음악이 비주류인 것은? 빡통을 선두로한 꼰대들은 자기들이 해독불가능한 반사회적 코드는 용납할 수 없었다. 여기서 선택은 확실히 음지로 숨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록앤롤 속에서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Pop적인 코드가 사라져버리고 로커들은 속세를 떠난 도인인양 행세하기 시작했다. 또한 한국의 록음악 속에는 Roll이 없다. 단단하게 사운드 구축되어있고 매끈하게 다듬어지는 사운드는 후벼 파는 느낌은 있지만 돌맹이가 울퉁불퉁한 바닥을 굴러다니면서 뿜어내는 그루브의 힘은 뽑아내지 못한다. Rock은 백인도 쉽게 베끼지만 Roll은 독특한 제어력을 필요로 한다.


롤링스톤즈의 노래, Tumbling Dice에서 Roll이 줄기차게 나온다. Rock의 단단함과 달리 Roll의 독특한 느낌은 흑인의 느낌이기도 하다. 롤링스톤즈의 가사를 보면 집요하게 반복하는 가사가 많다. 이 역시 흑인 음악, 블루스에서 차용한 것이다. 가사와 악보상의 음표는 반복되는 것 같지만 실제 음반 상에서도 디테일한 느낌은 계속 바뀐다. 실제 라이브에서도 그렇다. I can't get no satisfaction이 곡에서는 계속 반복되지만 실제로 똑같은 I can't get no satisfaction은 없다. Angie도 마찬가지다. 집요하게 Angie를 반복하지만 매번 다 다르다. 믹재거의 보컬은 어둡고 음탕하며 욕구불만적이고 자기 파괴적이다. 믹재거의 발성 자체는 키스리차드가 믹재거의 콤비로 달라붇는 기타사운드를 뽑아낸다면 또 다른 기타리스트는 항상 기타 자체와 블루스라는 옵션의 대가들이었다. 브라이언 존슨이 그랬고 믹테일러가 그렇고 로니 우드가 그렇다. 롤링스톤즈는 의심의 여지없는 록앤롤 밴드였던 머지비트와 다르게 Rhythm&Blues Band로 분류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롤링스톤즈는 흑인의 음악 블루스를 베끼는데서 시작했던 밴드였다. 심지어 발성과 발음 마저도 베끼려고 했다. 믹재거가 흑인이 아니기에 그들과 같이해서는 그들처럼 될 수 없었고 결국 흑인과 같은 듯 해도 전혀 다른 창법을 개발했다.  믹재거의 보컬은 흑인 보컬과 공통점이 많지만 반면 믹재거의 창법은 흑인 누구와도 닮지 않았다. 골반의 무브먼트에서 뿜어져나오는 흑인음악과 비슷한 듯 하나 믹재거의 사지를 비비꼬우는 몸놀임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이 독창적?이다. 뮤지션에게 뿌리는 중요하며 그런 뿌리를 제대로 찾고 그것에 대해 애정을 가질 때 새로운 것의 창조도 가능해진다. 정말 애정을 같는다면 형식적인 면을 베끼기 보다는 그들의 음악속에 숨겨진 정서적 교집합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롤링 스톤즈가 확고히 자리를 굳힌 Satisfaction은 결국 흑인들도 엄지를 내밀만한 좋은 완성도의 곡이었으면 흑인 보컬의 별중의 별, Aretha Franklin은 Satisfaction을 자신의 공연에서 부르기도 했다. 다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록앤롤은 블루스에서 시작했다는데 우리가 느끼는 록앤롤 속에 블루스는 어디 있나?


롤링스톤즈는 그들의 블루스에 대한 단단한 뿌리만큼 그들은 순수한 Rock'n'Roll밴드로 남았다. Pop이 되기를 거부하지도 않았고(Some Girls) 그렇다고 Rock의 활기를 포기하지도 않았다. (Bridge to the Babylon에서 베이비페이스 물먹인 것을 생각해보면 속이 후련하다) 정말 다행인 것은 여전히 그들이 철이 들기는 먼 것 같다. 남들이 다 휘청거릴 때 여전히 짭짤한 돈벌이를 하고 있기도 하다. 비틀즈처럼 All you need is love를 외치지도 않았고 우드스탁이나 live8에 덩달아 다 모일 때도 뒤에서 비아냥거렸다. 마초적이었지만 보위와 재미로 잠자리 함 해보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흑인음악을 좋아했지만 마냥 아첨을 하지도 않았다. 이것이 록앤롤이다. 골목에서 공부 드럽게 못하던 인간들-믹재거의 예상외로 높은 교육수준은 아이러니긴 하지만-이 꼰대들 질끈질끈 씹어대며 허장성세를 부리는 것. 록앤롤의 화석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시상화석이다. 록앤롤이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그리고 각종 악조건에서도 살아남을 수 밖에 없던 환경을 보여준다. 대중음악의 스타일이 정해져버리고 인스턴트 설렁탕처럼 찍어내버릴 수 있는 환경이 도래했지만 직직거리는 라디오로 블루스 밴드를 듣고 시골에서 삥뜯던 양아치들의 삘링의 내부 Architecture는 copy가 안된다.


p.s. 롤링 스톤즈의 한국 공연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 Rolling Stones는 마이너에 가깝다. 중국에서 비교적 단촐한 8500석 규모의 공연을 하는 것은 어쩌면 중국이라는 나라의 상징성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봐야할 것 같다. 일본에서의 무대 사이즈를 보며 한국에 그런 거대한 튜어팀이 오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