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지난 10년은 어떤 시대였는가? 나는 하이브리드의 시대로 규정하고 싶다. 21세기가 엔진만으로 가는 차를 박물관으로 밀어버리고 하이브리드카의 시대가 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요즘 시대는 너무나 복잡해져서 '전문적'으로 하나의 역할에 집중하기에 너무나 다양한 상황이 있다. 가속과 제동 시 모터의 역할을 바꾸어주는 하이브리드의 'Adaptive'한 제어능력이 전쟁판과 같은 축구장에서도 필요하다.
멀티 플레이어의 대명사 - 필립 코쿠
필립 코쿠가 우리에게 각인된 것은 히딩크의 별명이 오대영이 되기 시작한 시발점이었던 한국 대 네덜란드 전이었다. 벨기에와의 1차전에서 네덜란드의 주포 쿨라위베르트가 강간범소리에 깡패짓하면서 퇴장을 당한 것을 보고 우리는 쾨재를 불렀다. 그러나, 1차전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뛰던 공격수의 천국 네덜란드에서 미드필더로 알려진 선수가 최전방 공격수로 나오면서 한국진영을 마구마구 유린하는 것이었다. 재미난 것은 필립 코쿠는 아르헨티나와의 8강전은 왼쪽 윙어, 브라질과의 4강전은 왼쪽 풀백으로 뛰었다는 점이다. 중앙미드필더, 최전방, 윙어, 풀백. 전술적인 요구사항이 너무나 다른 이런 포지션을 매 경기 무난하게 소화한 것도 신기할 따름이지만, 이 선수의 더욱 놀라운 점은 이 선수의 포지션은 한 경기 안에서도 경기 흐름에 따라 바뀐다. 단적인 예가 박지성의 챔피언스리그 골로 기억되는 지난 챔피언스 리그 밀란과의 준결승 2차전이었다. 봄멜, 보겔과 철통같은 중앙미드필더를 지키다 잠궈야 될 상태에서는 최후방으로 쳐저 수비진을 조율한다. 반면, 승부수를 던져야할 상황에서는 서슴치 않고 최전방으로 나가 득점을 올린다. 다소 늙었다는 비난을 받고는 있지만 최강의 4백라인이 지키는 밀란의 수비진을 상대로 3골을 뽑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팀당 50경기씩 치르게 되는 시즌 중 숱한 부상등의 변수로 인해 특정 선수의 포지션 이동은 있을 수 있다. 이것은 물론, 경기 중도 마찬가지이나 필립 코쿠의 경우는 조금 과하게 포지션 변경을 요구 받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의 포지션은 밑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로 MF이다. 왜? 90년대 독일이 월드컵을 재패할 때 화두는 '압박'이었다. 기술적으로 앞서는 남미나 프랑스 선수를 상대로 경기의 흐름을 가져오는 방법은 딱 하나 상대의 기술을 발휘할 공간을 애초에 차단해버리는 것이었다. 반면, 90년대 중반 이후로 가면서 화두는 빠른 공수 전환이었다. 문제는 그런 빠른 공수 전환의 원동력이 단순히 한 선수의 기동력에 의존하기 보다는 역습 시 숫자 우위를 누가 획득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답은 나온다.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는 미시적인-미시적이지만 동적인-영역에서 숫자적 우위를 어떻게 확보하느냐이다.
요즘 포지션에 대한 개념은 보다 상황의존적이다. 셋피스의 경우, 역습의 경우, 상대방의 미친 한명의 판타지스타가 있을 경우, 득점 상황 등에 따라 그 선수의 장점에 맞춰 수시로 바뀌는 것이 사실이다. 필립 코쿠는 이런 전술적 요구사항에 가장 부합하는 선수였다. 사실, 그가 볼핸들링, 스피드, 활동력, 피지컬, 킬패스, 맨마킹 등이 아주 탁월한 선수는 아니다. 하지만, 다 평균은 하고 양발을 쓰며 무엇보다도 중요한 전술 이해력이 탁월하다. 각 시점에 가장 있어야할 위치와 역할을 정확히 파악하며 팀의 부족한 점을 수시로 매워나간다. 봄멜처럼 쓸데없는 소리로 클럽하우스의 분위기를 흐리지도 않는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는 20대 중반의 나이가 되도록 허접한 에레디비지의 중상위권에 머물렀었고 28이 지난 시점에서야 빅리그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의 능력이 '천재성'보다는 성실함과 학습력에 의해 키워진 능력이라는 점을 증명한다. 일대일에서 기술적 우위를 중시하는 프리메라리그에서 장기간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할 수 있었으며 우리나이로 38인 그가 아직도 호화군단 오렌지의 일원이 되기를 요청받고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은 바로 '성실함'이다.
지난 04/05 챔피언스 리그의 이미지는 컵을 힘차게 들어올린 리버풀의 자랑 스티븐 제라드가 아니라 3골을 넣고 공을 직접 가져오며 한골이 남았어를 외치는 필립 코쿠의 모습이다.
코쿠 옹 아직 안늦었3.
필립 코쿠 (Philip Cocu)
생년월일 1970.10.29
신체사항 182 cm, 76 kg
국가 네덜란드
포지션 MF
발: 오른발
1989 ~ 1990 네덜란드 2부 리그 AZ 알크마르 선수
1990 ~ 1995 네덜란드 비테세
1995 ~ 1998 PSV 아인트호벤
1998 ~ 2004.6 FC 바르셀로나
2004.6 ~ PSV 아인트호벤
A매치 첫 출장: 1996년 4월 24일 네덜란드 0-1 독일
A매치 출장경기: 94회
공격하는 수비수 - 호베르토 카를로스
역시 네덜란드 선수로 시작하자. 사람들은 네덜란드하면 플라잉 더치맨 오베라마스를 연상한다. 오베르마스는 정말 빠른 선수였다. 줄기차게 측면을 팠고 적어도 정상적인 몸상태에서는 효과적으로 공략했다. 특히 자국에서 열린 유로2000에서 오베르마스와 젠덴에 줄기차게 파는 양 측면 공격은 워낙 강력했다. 하지만, 지난 십년은 전형적인 윙어라는 포지션은 크게 위축된 시기로 기억된다. 가장 강력한 윙어 오베르마스 마저 정작 리그와 국가대표에서의 기록을 살펴보면 So,so에 지나지 않다.
여전히 측면 공격은 주요한 득점루트임에도 전형적인 윙어가 위축하게된 계기는 역시 '압박'과 '공수전환'에 있다. 중원에서의 도그 파이팅이 너무나 일상화되면서 축구를 대표하는 포지셔닝인 442에서 평상시에는 쉬고 있다가 자신에게 공이 투입되면 우아한 돌파와 크로스를 시도하는 클래식한 윙어는 이제 사치가 되어버렸다. 윙어도 공에 달라붙어 과격하게 태클을 하며 주도권을 장악하는데 참여하기를 요구 받게 되었다. 또, 중앙수비수가 다소 처져있는 스위퍼 위주의 수비진형 대신 플랫 포백이 일반화되면서 측면의 빠른 윙어에게 내주기 보다 가장 앞서있거나(또는 가속이 붙은) 선수 쪽으로 수비 뒷공간에게 경합을 붙이는게 훨씬 효율적으로 되었다. 그래서 투톱이나 쓰리톱에서 빠른 선수는 크로스 대신 중앙돌파, 슈팅등을 일차적으로 시도하게 되고 그게 여의치 않을 경우, 측면으로 열어주게 된다. 수비가 안정된 상황에서 열어주는 측면 공격은 여전히 효과적이고 안전한 공격 옵션이지만 그 공격을 위해 그 위치에 선수를 할당할 필요는 없어졌다는 것이다. 어짜피 속공의 옵션이 아니니. 그 대신 평상시에는 그보다 쳐져있던 풀백(또는 윙백)이 오버래핑해서 들어오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인 공격 옵션이다. 평상 시에 마크할 수 없던 선수가 새롭게 투입되는 것이 상대방 측면 수비수는 더욱 당혹스럽기 때문이다. 숫자적 우위가 필요하다면 중앙 공격수나 미드필더가 가담해서 2:1로 뚫으면 된다. 문제는 측면 수비수가 공격을 하다 볼을 끊겼을 때 문제다. 기본적으로 중앙미드필더나 아니면 측면 미드필더가 보완을 해야하고 측면 수비수 역시 빠른 백코드가 필수적이다.
이러한 요구 사항에 딱 부합하는 선수. 바로 '호베르토 카를로스'. 호베트로 카를로스를 기억하게 한 경기는 98년 월드컵 직전, 프랑스에서 열린 컨페더레이션컵의 프랑스와 브라질의 경기였다. 인간의 한계로 기억되는 강력하면서 아름다운 곡선을 보여준 프리킥. 볼의 반발력이 증가함과 더불어 이런 킥력의 향상은 중원에서 파울로 끊어버리는 상대팀의 방식이 독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26인치의 허벅지에서 뿜어내는 강력한 슈팅은 카를로스의 경기력의 일부분일 뿐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호베르토 카를로스의 매력은 피스톤 같이 움직여야하는 풀백의 활동력과 스피드에 있다. 이것이 진짜 카를로스의 진면목이라 할만한 경기는 01/02 챔피언스 리그 8강전, 사실상의 결승전으로 얘기되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베컴-네빌의 잉글랜드 대표 오른쪽 라인을 산산조각 내던 순간이다.
최강 브라질에서 무려 117경기를 소화하며 월드컵을 두차례, 준우승 한차례를 이루어냈으며 갈락티코로 상징되는 레알 마드리드의 왼쪽 측면을 10여년간 맡아온 선수.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가 있을까? 카를로스가 왼쪽 측면을 이끈 지난 10여년 동안 브라질은 그 동안의 부진?을 말끔히 씻어낸 시기이기도 했지만 크나큰 전술적 변화가 있었던 시점이다. 브라질하면 상상되는 무조건 공격적인 축구 대신 압박과 조직 그리고 스피드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 변화의 중심엔 호베르토 카를로스가 있었다.
호베르투 카를로스(Roberto Carlos da Silva)
생년월일 1973.04.10
신체사항 168 cm, 70 kg
국가 브라질
포지션 DF
발: 왼발
1990 ~ 1992 브라질 Uniao Sao Joao
1993 ~ 1995 브라질 Palmeiras
1995 ~ 1996 이탈리아 인터 밀란
1996 ~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A 매치 첫 출장: 1992년 1월19일 브라질 0-1 아르헨티나
A매치 출장 경기: 117회
한국의 멀티 플레이어 - 유상철
한국인에게 축구는 애국의 수단이다. 또, 스트레스 해소의 수단이기도 하다. 굳이 한국만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딴 나라에서는 애국의 수단으로서 축구는 순위가 다소 밀리는 것 같기도 하다. 애국을 위해서는 매국노가 필요한데 그런 매국노의 역대 리스트의 수위에는 공격수들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공격수가 아닌 선수 중에서도 매국노의 리스트에 당당히 올리는 선수가 있으니 바로 유상철이다. 유상철이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는 딱 하나. 그가 테크닉이 뛰어난 선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90분 동안 투쟁적인 선수가 경기를 이기게하나 10초의 마법이 팬들의 머리속에 기억된다. 황선홍도 하지 못한 '홈런왕 유상철'의 추억은 어이없는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사실 그는 정말 필립 코쿠를 닮았다. 미드필더와 최전방, 최후방을 동시에 본 선수는 유상철이 유일하다.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홍명보도 사실 골결정력이 좋은 선수는 아니었다-사실 필요도 없었다. 괜찮은 피지컬을 바탕으로 보여주는 셋피스시 헤딩력과 강한 중거리슛이야 미드필더의 또다른 덕목이 될수도 있지만 유상철은 공격수로 투입될 때 기본적인 움직임도 나쁘지 않다. 중앙수비수로서도 마찬가지이다. 홍명보가 은퇴한 후 3백의 리더 역할을 무난히 했다. 10여년을 지탱해온 홍명보-황선홍 라인이 빠진 상태에서 유상철은 매 경기 다른 역할을 주문 받았다. 코엘류가 삽질할 때 드는 생각은 유상철이 두명만 더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은퇴를 선언한 지금도 여전히 국가대표에 있었으면 하는 작은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그를 대체할만한 자원이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다소 발이 느리고-나이가 들면서 더 느려졌지만-, 킬 패스의 능력도 없지만 기본적으로 공수전환의 템포를 조절하고 도그 파이팅에 나서는 팀 리더로서의 역할은 그가 아니면 하기 힘들다. 또, 그는 양발을 다 잘쓴다는 한국 팀 중에서도 가장 양발을 확실하게 쓰는 선수이다. 또 도약에서 임팩트까지 헤딩 테크닉이 가장 확실한 선수이기도 하다.
그는 또한 큰 경기에 강했다.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 일본을 격침시킨 골, 프랑스 월드컵 벨기에전의 동점 골, 컨페더레이션스 컵 멕시코 전에서 역전 골, 월드컵 첫승을 이룬 폴란드전 쐐기골 등. 클럽에서도 꾸준했다. 국대에서만큼이나 다양한 역할을 맡았지만 항상 팀의 주축이었고 많은 골을 넣었다. 그를 다른 멀티플레이어와 차별화시키는 점은 바로 '투지'에 있다. 코뼈가 부러지며 결승골을 넣은 컨페더레이션스 컵 멕시코 전은 그가 뛴 수많은 경기 중 하나에 불과하다. 유럽팀과의 경기에서 피지컬의 차이가 대표팀의 발목을 잡을 때 유상철의 신체조건과 투지는 그들과 맞짱 뜰 수 있었던 전제 조건이기도 했다. 어쩌면 피지컬로 맞짱뜰 수 있는 유상철의 존재감은 남미와 서유럽 지역 외의 변방으로 분류되던 지역의 성장을 의미하는 상징성을 지닌다.
유상철
생년월일 1971.10.18
신체사항 184 cm, 78 kg
국가 대한민국
포지션 MF
발:
1994 ~ 2000 울산 현대
2000 ~ 2002 가시와 레이솔
2002 ~ 2003 울산 현대
2003 ~ 2005 요코하마 마리노스
2005 ~ 울산 현대
A매치 첫 출장: 1994년 1월 19일 미국전
A매치 출전: 12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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