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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축구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 거대 자본과 낭만적 반란군의 공존

문제. F.A.프리미어 리그의 역사는? 어렵다고, 그러면 객관식으로. 수능 세대에 맞추어 5지 선다로 내었다.
1) 100년은 넘었고 가장 오래되었다 2) 100년 쯤 되는데 가장 오래되지는 않았다.
3) 100년은 안되어도 가장 오래되었다. 4) 생각보다 짧다. 50년 정도.
5) 축구실력이 비슷한 한국이나 막하막하.

 

수능이 그렇듯, 늘 함정을 판다. 정답은 5번.

F.A. 프리미어 리그의 82~83시즌이 처음으로 한국에 프로리그-사실 국제적으로 공인된 프로리그도 아니지만-가 생긴 시점과 동일하다. 사실, 프로리그는 19세기에 이미 성립되었지만 헤이젤 대참사와 그에 이은 5년간 국제대회 참석을 금하는 징계 이후 새롭게 거듭다는 의미에서-누가 자주 쓰는 말인 듯-F.A.프리미어 리그를 출범시켰다.

 

프리미어리그는 정말 새롭게 거듭난 것처럼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기존의 왕복 달리기를 연상시키는 지리한 시합에서 벗어나서 기술적이면서도 빠르고 역동적인 리그로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다. 킥앤러시의 잔재는 남아있지만, 재미있고 상업적으로도 크나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영어가 세계적으로 통하는 언어라는 점, 방송 네트워크의 거대화 등이 결정적 원인인 것도 사실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는 사실, 영국의 문화를 상징하는 거대한 용광로와 같다. 그 속에는 자본주의, 유럽의 단일화, 영국인의 자존심, 지역감정, 계급의식, 반유대 및 인종차별주의, 심지어 반자본의식까지 들어있다. 이러한 다양한 특징은 구단별로도 뚜렷한 개성을 드러내곤 한다.

 

잉글랜드는 지역별로 계급 및 정치적 지향성의 차이가 나타난다. 런던 중심의 남부는 화이트 컬러이면서 보수당 지지층이 많고 북부 공업지역은 노동당을 지지하는 블루 컬러가 많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리버풀의 경우 전통적으로 영연방 출신의 구성비가 높으며 런던 연고의 아스날과 첼시는 외국선수들이 주축을 이루는 경향이 있다. 같은 도시 내에서도 특정 계층이 많은 지역에 따라 팀컬러가 뚜렷이 갈린다. 화이트 컬러지만 거칠은 첼시 팬들이 토튼엄 팬들을 촌뜨기 내지 Yid(유대인)들로 좀 심할 정도로 야유를 보내며 토튼엄을 그래 나 Yid야란 식으로 노골적인 반응을 보인다.

 

또 하나의 특징은 자본의 논리에 철저하게 침투해 있다는데에 있다. 정경유착의 강력한 고리를 보여주는 세리아나 지역 유지의 장난감인 프리메라에 비하면 훨씬 합리적인 경영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런 자본의 논리는 프리미어리그로 바뀌는 시점 쯤에서 '세계화'되고 있다. 선수,  자본이 다른 곳에서 유입되고 있으며 그곳에서 생산된 상품은 전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사실, 잉글랜드 리그는 상당히 폐쇄적인 리그였다. 종주국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프리미어 리그로 바뀌면서의 지향점은 여러모로 국제적 스포츠 상품으로 만드는데에 있다. 우선 Great Britain 위주의 선수 구성에서 유럽, 남미, 아프리카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프리미어 리그 최고의 스타플레이어가 에릭 칸토나이며 그 이후 베르기, 앙리, 루드 등의 스타 등 유럽 대륙 출신의 스타 플레이어가 프리미어를 장악한지 오래다. 최근 들어 그들은 감독 마저도 외국에서 사들여 오고 있다. 초절정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포르투 출신의 감독 첼시의 무링요가 대표적이다. 이는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해서 만든 상품을 수출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한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외국인 노동자와의 다소 간의 차이는 있다. 한국의 전형적인 외국인 노동자가 싼 인건비 때문에 고용한 것이라면 프리미어의 외국인 선수는 자본의 입장에서 보다 큰 상품가치를 가지기 때문에 고용한 것이다. 공통점은 자국 노동자의 자리를 빼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유럽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는 비유럽 선수를 의미한다는 점이다. 이 역시 유럽의 블럭화와 '세계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슈로 볼 수 있다. 프리미어리그의 상품성은 생각 이상이다. 프리미어리그는 20팀이 홈앤어웨이로 38경기를 하며 1년에 총 380경기가 열린다. 90분 x 380은 500시간이 넘는 경기가 인기있는 컨텐츠로 제공되는 것이며 이 정도 인기있으며 상품으로 신뢰성이 있는 미디어 컨텐츠는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상품성의 정점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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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콤 글레이저의 구단 매입을 반대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5년이 안되는 프리미어를 대표하는 구단이다. 구단은 철저하게 경영의 원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움직이며 감독 퍼거슨은 전문경영인의 역할을 맡은 것처럼 강력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주식회사의 의사결정체계는 느리지만 대체로 정확하다. 선수 구성을 살펴보면 자국 중심으로 조직력을 단단하게 다지면서도 외국인 선수를 적절히 수혈해서 항상 좋은 공수의 밸런스를 보여주는 팀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는 위성을 통해 세계 곳곳에 방송되며 관중 수입과 방송권 외에도 다양한 수익원으로 가장 안정적인 팀 재정을 확보하고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자산가치는 1조원이 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스포츠의 대자본화를 상징하는 가장 좋은 예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세계적인 대기업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지배구조체제가 시민구단 형태를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으며 서포터즈로 구성된 소액주주의 영향력이 크다는 사실이다. BSkyB를 가지고 있는 머독이 90년대 후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인수를 시도했지만 소액 주주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실패하였고 최근에 말콤 글레이저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인수를 시도하고 있으나 여전히 회의적인 상태이다. 그들이 머독이나 말콤 글레이저의 구단 인수를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축구를 모르는 1인이 단순한 투자의 대상으로 생각했을 경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장래는 결코 보장받을 수 없다는 서포터즈의 생각 때문이다. 실제로 말콤 글레이저는 축구라는 종목을 비하하는 발언을 이전에 한 경력이 있으며 실제로 투기성이 강한 자본임에 틀림없다. 또 하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서포터즈들이 가지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나의 팀이라는 소박한 발상에 기인한다. 이성적인 판단만큼이나 이러한 감성적 유대감은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첼시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런던을 연고로 하는 많은 구단 중 하나인 첼시는 처음부터 훨씬 개방적이었다. 90년대 후반 네덜란드의 전설 루드 굴리트를 감독으로 맞이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이탈리아의 졸라가 팀의 에이스였으며 늘 외국인 선수의 구성이 다수였다. 36세의 러시아 석유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첼시 인수는 유럽 축구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었다. 석유와 M&A라는 전형적인 부의 확대 과정을 거친 그가 축구를 통해 서유럽으로 손을 뻗은 것이다. 대자본에 대한 반감의 양상이나 정도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다른 것은 우선, 런던 지역의 정서가 노동자 중심의 북부 잉글랜드와는 다르다는 점이 있을 수 있다. 첼시 팬들이 로만 아브라모비치에 대한 반감이 작은 것은 모든 시합을 관람하는 구단주의 축구의 애정이 각별하며 실제로 세계 최강의 구단으로 성장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첼시의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을 통해 거대 자본의 세계적 이동이라는 세계화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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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젤 참사를 추모하는 카드섹션과 그것에 대해 야유를 퍼붇는 리버풀 팬들.

 

F.A.프리미어리그가 아닌 잉글랜드 프로리그 전체를 본다면 최고의 구단은 리버풀 FC이다. 가장 많은 우승을 국내외에서 했다. 그들은 노동당을 지지하는 리버풀 노동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구단이며 킥앤 러시라는 가장 영국적인 방식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어왔다. 리버풀은 구단을 사랑하는 팬들의 형태도 가장 영국적이다. 바로 훌리건이라는 폭력적인 형태로. 리버풀 팬들은 훌리건을 처음으로 조직화시켰으며 유벤투스와 챔피언스 결승에서의 난동으로 39명이 사망한 헤이젤 참사로 잉글랜드 팀들이 5년간 유럽무대에서 추방당한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사실, 스포츠를 매개로 야유를 보내면서 얻어지는 보상 심리는 어쩌면 현대 사회에서 프로스포츠의 중요한 존재 이유일 수 있다. 또, 축구에서 볼 수 있는 임팩트의 흥분은 이성을 마비시키며 사람들을 감성적으로 몰고 간다. 더욱이 축구장의 관중들은 동일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있기에 조직화되기 쉽다. 하지만, 유럽, 특히 잉글랜드 훌리건의 특성은 훨씬 조직적이고 폭력적이라는데에 있다. 어쩌면 지겹고 힘든 영국 노동자의 삶을 대변한 블루컬러적인 문화일 수도 있으나 그들이 지닌 사고 방식은 부정적인 면이 강하다. 인종 차별과 반유대주의를 필두로 지역주의에 물들어 있다. 반면에 홈팀과 자기지역에 대한 소박한 애정은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아무튼, 훌리건이나 서포터즈와 같은 스포츠를 매개로 한 조직체는 연구대상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어보인다. 감정적 동질감을 지닌 정치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은 노동자 중심의 대조직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론과 실천의 리버풀 구단과 훌리건 문화에 관한 글에 대해서 비판하고자 한다. 우선, 재미있는 글이다. 하지만, 결론을 잘못 내었다는 생각이다. 내가 말하는 잘못된 결론이라는 결론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결론을 말한다. 그 글에서 리버풀의 부진을 영국 노동당의 정체성이 보수화된 것과 연관지었다. 그글의 필자는 내가 보기로는 현실을 지나치게 진보적 이념에서 접근하려 사실을 왜곡시켰다. 그글을 쓴 사람이 리버풀 최근 경기 세번만 봤으면 절대 그런 결론을 낼 수가 없을 것이다. 리버풀이 최근 부진한 것은 노동자 구단의 정체성을 잃어버려서라기 보다는 기존의 경기 스타일을 지나치게 고수했기 때문에 새로운 변화에 적응을 못했기 때문이다. 작년까지 리버풀은 '어쩌면 노동자 구단의 전통일 수 있는 킥 앤 러시와 지리한 긴패스 위주의 운영에 너무나 집착했다. 그것의 상징적인 선수가 마이클 오웬이었다. 올해 들어와서 변화는 그들도 세계적 조류에 따라간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사비 알론소와 루이스 가르시아, 모리엔테스 등 프리미어 식 플레이가 가능한 스페인 선수와 감독을 영입한 것이다. 지리한 부상의 레이스에 아직 재미는 보지 못하고 있고 프리미어의 경쟁 상대들이 워낙 강력해져서 내년도도 보장은 못하지만. 적어도 경기를 풀어가는 능력은 훨씬 좋아졌다. 결코 유쾌한 결론은 아니지만 세계화라는 변화의 흐름에 동참을 안하면 도태된다는 결론으로도 끌고 갈 수 있는 예가 될 수 있다.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고 이에 대한 방향성을 내려야지 기존의 현실을 전문성없이 진보라는 틀에 가두어 논지를 펴는 것은 결코 좋은 결과를 끌어낼 수 없다. '진보'라는 것은 방향성을 의미하는 것이지 현실에 대한 선입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정치의 중요한 과정 중 하나가 민심을 읽고 얻는 것이라면 문화를 통해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읽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