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갈까 망설였다. 팻메스니와 맞짱을 떳던 저번 공연의 Quality는 충분히 만족스러웠지만 포플레이가 정말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밴드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갔지만, 저번과 마찬가지로 그다지 좋지 못한 자리인 세종문화회관의 멀고먼 3층에서 봐야했다. 하지만, 리빌딩 이후 세종문화회관은 3층도 좋은 사운드를 내는 듯 했다(이런 걸 sour grape;;;) 하지만, 이번에도 그들은 200%의 만족도.
밥제임스의 꽤 친한 음악친구이기도 한 잭리가 참가한 '뉴에이지?'라는 밴드의 오프닝이 있었다. 퍼커션과 피아노, 기타가 결합한 보사노바-플라멩고 등 가벼운 라틴의 정서를 담은 음악을 연주했다.
포플레이의 라이브가 꼽히는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대가급 연주인들이 뽑아내는 밴드 사운드의 매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밴드의 리더는 아무래도 가장 많은 곡작업에 참가하는 밥제임스겠지만 사운드를 만드는데에서만큼은 정말 평등한 밴드가 포플레이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공연의 아드레날린을 극대화시키는 솔로타임은 멤버 4명에게 거의 균등하게 주어진다.
가장 튀는 멤버는 하비 메이슨이었다. 재즈 드러머가 흔히 쓰는 브러시를 한번도 쓰지 않았다. 대신 (주로 심볼을 통해) 비트를 잘게 쪼개서 무드를 조성했다. 기본적으로 드럼 스트로크가 강하고 안정적이었다. 확실히 록드러머에 가까운 드러머였고 그런면에서 데니스 챔버스와도 유사했다. 하비 메이슨의 강점은 튀는 드럼톤과 충만한 아이디어의 드럼 패턴으로 자기 자신도 드러나는 편이지만 그런 와중에서 다른 파트도 같이 사는 그런 형의 드러머라는 점이다.
네이던 이스트의 베이스도 역시 자신의 존재감과 다른 파트을 서포트해주는 역할을 동시에 만족시켜주는 스타일이었다. 그런 스타일이 네이던 이스트를 에릭클랩튼, 필콜린스, 마이클 잭슨, 베이비 페이스까지 잘 나가는 팝뮤지션들이 가장 좋아하는 베이시스트로 만든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팝적인 흑인 소울 보컬 역시 상당히 만족스럽게 소화했다.
생각해보면 래리칼튼은 꽤 자주 본 기타리스트인 듯 하다. 그의 기타 플레이는 조금만 들어도 그의 톤임을 알 수 있는 독창성이 있다. 역시 기타리스트의 강한 필링은 공연에서 필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자극을 준다. 리릿나워를 대신해서 들어온 래리 칼튼은 포플레이에 보다 블루지한 성격을 불어넣었다.
밥제임스는 영감이 풍부한 건반 주자이다. 포플레이의 멜로디가 꼽히는 것은 그의 역량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현대음악, 고전, 재즈 스탠다드, 록, 블루스 등의 다양한 요소들이 있지만 포플레이의 음악이 어렵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포플레이 내에서 지향하는 바가 기본적으로 대중적인 면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라이브에서는 어떤 난해한 곡조를 연주하더라도 심지어 현대음악적인 시도마저도 관중들을 열광시키는 그런 힘을 가진 멜로디를 뽑아낸다. 공연 말미의 현대음악적인 강렬함은 마치 키스 에머슨을 연상시켰다.
포플레이의 음악은 사실 그다지 실험적이지도 재즈의 정통성을 지니고 있지도 않다. 사실, 스무드 재즈의 대중성이 가장 큰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들의 음반은 사실 버스 안에서나 흘러나올 걍 듣기 좋은 무작 정도라는 생각도 든다. 소리를 줄이고 들으면 자장가로 쓰기 좋은. 하지만, 라이브에서의 에너지를 보면 절대 폄하할 밴드가 아니다. '건반-기타-베이스-드럼'이라는 흔한 밴드의 기본적인 편성 하에서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사운드를 내는 뮤지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각 파트의 탁월한 역량과 더불어 밴드로서의 좋은 호흡을 보여주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좋은 선수만 영입한다고 좋은 팀이 안되는 것처럼. 밥제임스는 포플레이는 결코 프로젝트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사실, 포플레이 외적인 활동이 충분히 큰 뮤지션들이지만, 포플레이를 단순히 평소 때 못하면서 하고 싶은 것 가볍게 하는 정도는 아니란 얘기다.
기본적으로 포플레이는 스트레이트한 밴드 사운드를 낸다. 공연장에서 관중들이 열광할 수 밖에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음반의 나긋나긋함을 상상한다면 아주 다른 광경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전에 왔던 이들이 많이 오지 않았을까? 밥제임스는 전에 팻매스니 땜에 못본 분들 오라고 했지만 아마도 전에 포플레이를 봤던 이들은 다시 왔을 것 같다. 이번 내한공연도 연주자와 관객, 기획자 모두 즐거운 한판이 되었을 듯 하다. 형식적인 앵콜이 불이 다 켜진 상황에서도 관중들은 다음을 기대했고 포플레이는 형식이 아닌 진짜 성의를 위한 새로운 앵콜을 했다.
오면서 드는 생각이 포플레이가 주는 적당한 흥겨움과 고급스러움은 30대가 즐기기에는 가장 좋은 공연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어쩌면 재즈는 월드비트를 흡수하면서 아트록의 자리를 훔쳐갔다. 아트록의 에너지와 진지함을 듣기에는 73년 이후의 불황으로 생활이 너무 팍팍해졌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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