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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만담

2004년, 우리가 아직 '체 게바라' 에 열광할 수 없는 이유

2004년, 우리가 아직 '체 게바라' 에 열광할 수 없는 이유  
<모터 사이클 다이어리>를 보고  
김승섭  

난 '체 게바라'를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의 꿈은 하늘에서 내려온다.'라던가 '불가능한 것을 꿈꾸라'처럼 사람들이 간혹 인용하는 격언도 썩 내키지 않는다. 빨간 표지의 체게바라 평전을 읽지 않은 것도, 서점에서 일할 때 총무 형이 당시 유행하던 체게바라 포스터를 주겠다고 했을 때도 한참을 고민하다 머쓱하게 거절했었다.

난 2004년에 한국에 떠도는 '예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가 다시 태어난다면 종교의 이름으로 자신의 욕망을 합리화하는 한국의 기독교를 보며 분노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2000년 하느님을 핑계로 자신의 욕심를 챙기는 이들에게 그랬듯, 목수의 일로 튼튼히 다져진 그 두손으로 채찍을 들었을 것이다.

인간에게 '밥'이 얼마나 귀중한 지 알면서도 물질만으로는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던, 인간에게 '정치적 변화'가 얼마나 중요한 지 알면서도 혁명을 넘어선 인간 본연의 변화를 이야기하던 그였다. 그리하여 민중들은 그를 삶의 고통을 해결해줄 마술사로 생각을 하고, 운동가들은 그에게서 자신의 나라를 해방시켜줄 혁명가를 발견하고 그가 그토록 아끼던 열두 제자들은 그가 세울 왕국에서 재상자리를 누가할 것인가를 논하며 싸우는 세상의 한 가운데. 인간의 모습을 한 그가 있었다.

우리가 2004년에도 그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그 극단적인 오해와 딜레마속에서 유치한 낙관이나 무관심한 양비론에 빠지지 않고 민중의 구체적인 아픔속으로, 모순으로 가득찬 구체적인 현실을 향해 부단히 몸을 채찍질하며 순교자의 길을 묵묵히 걸었던 데 있다. 조금만 지나면 자신이 되살릴 그리하여 그 아픔을 사라지게 해 줄 수 있더라도 '지금, 여기'서 슬퍼하는 나사로 형제의 눈물에 함께 통곡할 줄 알던, 인간이 '빵'만으로 구원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당장 배가 고파 주린 이들에게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여주던 그였다. 그는 그렇게 천천히 걸어갔다. 아픔을 가슴에 안고, 딜레마를 등에 지고. 그 과정이 요구하는 지리하고 쓰라린 시간을 철저하게 자신이 끌어안고 사라지며 '나처럼 살아달라'고 제자들에게 외쳤던 그였다.

그런데 그의 제자라 자칭하는 사람들은 그를 모르는 '미개한' 이들보다 더 예수를 슬프게 한다. 2000년전 예수는 기존 사회가 인정하지 않던 하느님의 뜻을 전파하고 다녔다는 이유로 십자가에 올라야 했다. 그러나 2004년 그의 제자들은 예수를 골고다 언덕으로 끌고간 그 법과 별반 다르지 않은 국가보안법의 존속을 위해 미국국기를 걸고 기도회를 한다. 한 신부는 1년에도 수백명의 고등학생이 자살하는 한국 교육, 그 비리의 온상인 사립학교를 바로 세우기 위해 만들어진 개혁법안에 대해 '공산주의적 발상'이라며 자신이 이사장인 대학을 폐쇄하겠다는 협박을 버젓이 한다.

체 게바라는 자본가에게 총을 겨눈 운동가다. 그의 실천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이 보장하는 노동 3권 중 하나인 집단 행동권을 얻기 위한 공무원 노조의 싸움이나 자신의 빵을 불리기 위한 미국의 침략전쟁에 동참하지 말아달라는 반전 평화의 운동과 같은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제국주의 자본가들의 목에 총을 겨누고 구체적인 실존을 지닌 제국주의 군대의 병사들에게 방아쇠를 당기는 '살인'속에서 운동을 했던 사람이다.

그에게 열광하는 열광하는 젊은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사진에 박제되어버린 그를 사랑한다. 시가를 꼬나문 그의 사진에 열광하고 '혁명'이란 단어에 흥분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매일 꼬박꼬박 10명씩 노동재해로 골병들어 죽는 남한 사회 노동자들의 현실, 언제 추방될지 몰라 숨죽이며 명동성당을 지키는 이주노동자들의 운동에 대해서는 그 열정을 거둬들인다. '체 게바라'를 사랑하지만 그가 온몸으로 덤벼들었던 그 운동들에 대해서는 몸을 움직일 줄 모른다. 자신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한도에서만 그들은 '체 게바라'를 사랑한다. 그리하여 때로 그들은 한손에는 체게바라 평전을 즐겁게 읽으며 광화문에서 집회를 하는 민주노총을 욕하는 그 흔한, 하지만 당혹스러운 모습을 연출한다.

예수에게 어느 부자가 구원의 길을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사람을 사랑하라'도 '교회에 나오라'는 것도 아닌 '네가 가진 재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는 것이었다. 현실 사회주의가 패망한 2004년에 우리가 다른 사회주의 혁명가가 아닌 체 게바라를 기억해야 하는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그가 성공한 쿠바 혁명의 장관 자리를 버리고 자신의 몸을 투쟁의 현장에 가져갈 수 있었던 그 자세 때문이었을게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는 따뜻한 영화다. 광활한 남미 대륙에서 한 젊은이가 성장해 가는 소박한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여느 영화를 보는 것만큼이나 즐거웠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오는 연예인 스캔들 이야기를 하는 젊은이들. 하지만 막막한 청년 실업의 시대. 사립학교 법이 통과되면 대학을 폐쇄하겠다고 주장하는 신부가 당당히 공공매체에 얼굴을 들이미는 극우세력의 사회. 30년전에 '돈'을 이유로 베트남민을 학살했던 그 일을 다시 '한반도 평화'를 이유로 반복하는 사회. 그리고 그 속에서 유행하는 급진적 사회주의 혁명가 체.

그가 살아있었다면 2004년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기사입력시간 : 2004년 11월19일 [02:13] ⓒ 진보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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