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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만담

출처: 필름 2.0

출처: 필름 2.0

<알렉산더>는 기록되지 않는 인간의 내면을 통해 역사를 통찰하는 올리버 스톤식 역사 드라마의 정점에 선 영화다. 수긍하기 힘든 자국 내 가혹한 평가 속의 문제작 <알렉산더>를 해부한다.

“내 판타지 중 하나는 그리스와 페르시아, 아시아를 가로지른 알렉산더의 정복 전쟁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다. 그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난 지금까지 진실 뒤에 숨으려 했던 역사가들의 모든 주장들을 공격할 준비가 돼 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미국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은 버클리 대학 역사학부 커리큘럼이었던 ‘역사와 영화’ 강좌에 초빙돼 이렇게 말했다. 날이 갈수록 허무맹랑해져 가는 할리우드 생산품들에 신물이 난 스톤은 쿠바의 정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에 대한 다큐멘터리 <사령관>(2003) <피델을 찾아서>(2004)를 연이어 연출하더니 별안간 알렉산더 영화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극영화로는 <애니 기븐 선데이>(1999) 이후 5년 만인 <알렉산더>는 인간과 역사를 다루는 스톤의 바래지 않은 비전을 확인시켜 주는 ‘문제작’이다.

<알렉산더> 이전에도 올리버 스톤의 영화는 ‘문제적’이었다. 케네디 암살, 워터게이트 사건, 베트남전 등 역사적 사실을 다루면서 그는 늘 논쟁적으로 역사를 재해석해 왔기 때문이다. <알렉산더>는 스톤의 창조적 역사 해석의 최신 버전이다. 미국 평단은 정복자의 삶에 대한 그의 야심 찬 재해석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급기야 미국의 시사 주간지 ‘뉴스 위크’는 최근 2004년 최고, 최악의 영화 10편을 선정하면서 <알렉산더>를 최악의 영화 세 번째에 올려놓았다. 뉴스위크는 <알렉산더>에 대해 ‘재능 있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실패작으로 그가 만든 최초의 지루하고 피곤한 영화. 이 영화를 보려거든 보급품들을 싸들고 가라’고 준엄하게 일갈했다. 하지만 영화를 본 후에 뉴스위크의 이 같은 평가에 동의하기는 힘들다. <알렉산더>는 올리버 스톤의 실패작이 아닐뿐더러 지루하기로 치자면 <월 스트리트>(1987) <하늘과 땅>(1993) 등 그의 전작들을 따를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개봉 직후 올리버 스톤은 평단과 관객의 한결같은 비난에 시달렸지만 <알렉산더>는 이 불운한 영화에 가해진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저주가 불가해하게 느껴질 정도로 흥미롭다.

서사극의 유혹을 떨친 역사 드라마

<알렉산더>는 최근 패션화되고 있는 할리우드의 서사극 트렌드와는 근본부터가 다르다. 신화적 인물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볼프강 피터센의 <트로이>와 유사하지만 할리우드가 골몰하고 있는 영웅적 서사극의 전통을 배반한다는 점에서 반대의 길을 간다. 약관 25세에 세계의 90%를 정복하고 32세로 불귀의 객이 되기까지 전무후무한 거대 제국을 발 아래 두었던 거인. 역사 책에 기록된 알렉산더는 무적으로 군림하던 페르시아 군대를 격파하고 중앙 아시아,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인도에까지 세를 뻗쳤던 정복의 제왕이었다. 영화는 정복자 알렉산더(콜린 패럴)가 그리스 도시 부족 중에서도 변방 취급을 받았던 마케도니아의 왕으로 추대된 후 그리스를 통일하고 아시아로 눈을 돌려 8년(실제 역사에서는 12년이다) 간의 정복 전쟁을 치르는 과정을 연대기적으로 쫓아간다. 명민함과 용맹함을 시기한 아버지 필리포스 2세(발 킬머)의 미움을 산 알렉산더는 어머니 올림피아스(안젤리나 졸리)의 흉계에 힘입어 왕위에 오른다. 순수 혈통이 아니라는 자격지심으로 번민하던 알렉산더는 필립왕이 암살되자 왕위를 계승하고 진정한 지도자로서 거듭나기 위해 동방 정복 전쟁을 떠난다.

<알렉산더>는 영웅의 유장한 삶과 서사 스펙터클에 제격인 소재를 선택해 역사의 내러티브와 개인의 내러티브를 교묘하게 직조해낸다. 화려한 캐스팅, 엄청난 제작 규모만을 놓고 봤을 땐 서사 블록버스터의 외양을 띠고 있지만 차라리 그것은 '올리버 스톤식 역사 드라마의 집대성'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역사적 사건 혹은 인물을 극화하는 스톤의 방식은 여기서 어떤 정점에 다다른 느낌이다. 포화 속의 전쟁터에서 광기에 물들어가는 개인(<플래툰>(1986))이나 반문화 시대의 전설로 남은 로커(<도어스>(1991)의 짐 모리슨), 만인의 추앙을 받는 지도자를 꿈꿨으나 허망한 욕망의 볼모에 그친 전직 대통령(<닉슨>(1995)의 닉슨)을 다루었던 스톤의 관점은 <알렉산더>에서도 흐트러짐이 없다. 그는 항상 역사적 사실에 대한 치밀한 조사(<닉슨> 개봉 당시 유족들이 사실 왜곡에 항의하며 소송하려 들자 올리버 스톤이 워터게이트의 진실에 대한 500쪽 이상의 방대한 자료가 수록된 책을 발간해 잡음을 불식시켰다는 건 유명하다)와 사실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을 능란하게 조화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역사학자가 아니라 영화감독인 스톤은 역사가들이 다루었던 사실들에 대해 '자기만의 해석'을 내리기 위해 영화를 찍는다. 알렉산더와 같은 극적인 인물을 다룰 때 그는 역사를 재현하는 입장에서가 아니라 극작가의 입장에서 접근한다. 영웅 알렉산더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그의 입장이 드러난다. 알렉산더의 친구이자 전우였던 파라오 톨레미(앤소니 홉킨스)의 내레이션으로 사건을 기술하지만 이 회고조의 담담한 진술 외에 <알렉산더>에는 또 하나의 시선이 존재한다. 타이틀 시퀀스에 엠블럼으로 등장할 뿐 아니라 중요한 순간마다 창공에 출몰하는 독수리의 시선이 그것이다. 독수리는 전투가 끝난 후 시체들의 심장을 파먹기 위해 하늘을 비상하지만 신적인 위치에서 이면의 진실을 쏘아보는 '익명의 시선'을 암시한다. 그건 '올리버 스톤의 눈'이며 그가 상정한 '관객의 눈'이다.

<알렉산더>에서 올리버 스톤의 야심은 확장된다. 영화의 전, 후반부에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인상적인 전투 장면을 배치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관심사는 거대한 스펙터클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아비규환의 지옥도처럼 묘사되는 전투 장면들은 서사 스펙터클 이미지라기보다는 리얼리티 전쟁 드라마의 그것을 닮았다. 차라리 <알렉산더>는 고대 그리스로 시계추를 돌린 베트남전 영화 혹은 서구 문명의 가장 빛나는 영웅, 즉 서구 문명의 본질에 대한 올리버 스톤 식의 재조명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피비린내 나는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에서 보여지는 광기는 베트남 정글에서 병사들(<플래툰> <7월4일생>(1989))의 그것과 다르지 않으며 모순적이고 중층적인 콤플렉스 덩어리 알렉산더의 캐릭터는 <닉슨>의 닉슨을 닮았다. 표면적으론 알렉산더의 왕위 계승과 정복 전쟁을 쫓아가지만 스톤의 카메라가 집중한 것은 문제적 인간 알렉산더의 내면이다. 마케도니아 혈통을 온전하게 계승할 수 없는 알렉산더의 태생적 한계, ‘제우스의 아들’임을 주장함으로써 극복하려 했던 어머니 올림피아스의 권력에의 의지, 동방 정복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동원한 명분의 속뜻 따위를 파고드는 이 영화는 개인의 콤플렉스를 거대한 야망으로 승화시키려 했던 이상주의자로 알렉산더를 묘사한다.

개인과 역사의 줄타기

역사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에도 불구하고 많은 역사학자들은 올리버 스톤을 ‘사탄’이라고 부른다. 역사가들은 스톤이 <닉슨> 같은 영화에서 역사적 사실을 심각하게 왜곡했다고 믿는다. 역사 왜곡은 역사가들끼리 따질 게재지만 <알렉산더> 역시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생뚱맞게도 공격 목표가 된 건 동성애 설정이었다. 그리스 변호사들은 알렉산더와 헤파이션(자레드 레토)의 동성애 묘사를 문제 삼아 고소장을 흔들며 으름장을 놓았다. 개봉 전부터 영화 속 동성애 묘사가 문제시될 것으로 직감한 제작사도 동성애를 임사하는 몇몇 장면의 삭제를 권유했으나 스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동성애는 금기는커녕 권장되었기 때문에 마케도니아 군대에 미소년 군인들이 끼어 있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스파르타는 조국뿐 아니라 연인을 위해 싸우라는 뜻으로 군대에 동성 연인을 함께 배속함으로써 군의 사기 진작을 도모했다. 알렉산더와 헤파이션의 동성애는 역사적으로 공인된 사실이었는데 알렉산더는 헤파이션과 자신의 관계를 <일리아드>에 나오는 아킬레스와 페트로클로스의 그것과 동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재현을 두고는 페르시아계 역사학자들의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마케도니아를 명확하게 그리스 민족으로 묘사하지 않은 것에서부터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창병들이 입고 있는 옷의 디테일까지, 꼬투리 잡을 요소는 널려 있었다. 그중 흥미로운 건 알렉산더의 금발 머리에 대한 지적이다. 그리스인의 것이라고 하기에 알렉산더의 찰랑거리는 금발은 너무 생경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정통사가들은 북구 스칸디나비아나 북부 독일 민족을 연상시키는 그의 외모가 그리스 고대사를 자기 것으로 귀속시키려는 19세기 북유럽 역사가들의 후안무치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광분했다. 정복 전쟁 중 알렉산더가 아내로 맞이한 이민족 록산느(로사리오 도슨)에 대한 묘사 역시 같은 맥락에서 비판을 받았다. 남부 페르시아의 한 부족민으로 알려진 록산느는 금발에 푸른 눈을 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올리버 스톤은 태연스럽게 흑인 여배우 로사리오 도슨에게 그 역을 맡겼기 때문이다. 역사학자들은 아시아나 아프리카 민족에 대한 왜곡으로 악명을 날렸던 할리우드가 저지른 또 한번의 실수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역사학자들의 주장처럼 <알렉산더>는 정말 왜곡된 할리우드의 시선을 담은 식민주의 영화일까? 여기에 답하기 위해서는 알렉산더의 정복욕에 대한 올리버 스톤의 해석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알렉산더의 세계 정복 야망은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산에 오른다"고 했던 산악 정복가의 말처럼 그곳에 정복의 대상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다. 알렉산더는 역사 책에 써 있는 것 이상으로 복잡할 뿐 아니라 대단히 모순적인 인물이다. 올리버 스톤은 개인과 역사가 만나는 접점에서 형성되는 욕망의 미세한 결들을 포착하기 위해 애쓴다. '앞을 보고 전진하는 불굴의 정복자'라는 일면적인 모습뿐 아니라 민족적 정체성, 개인적 야망 등의 다양한 경로를 통해 역사의 실체에 다가서는 것이다. 스톤이 택한 방식은 아주 사적이지만 본질적인 인간의 콤플렉스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설득력 있다. 그의 역사 드라마는 '역사'라는 내러티브와 그 속의 '개인'이라는 내러티브, 양날의 칼로 전진한다. 언제나 역사의 수레 바퀴를 돌리는 것은 한 개인의 꿈이며 이상이다. <알렉산더>는 이처럼 개인과 역사, 둘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균형을 잡아가는 절묘한 화술을 통해 드라마의 긴장감을 팽팽하게 조율한다.

불온한 오이디푸스왕

미리 결론 짓자면, 정복자로서 알렉산더의 삶과 투쟁은 지독한 살부 의식과 연결돼 있다. 아버지를 죽이고 자책을 이기지 못해 자신의 눈에 비수를 꽂고 만 신화 속 오이디푸스처럼 알렉산더는 아버지 필립에 대한 애증으로 들끓는 청년이었다. 네모꼴의 대형을 갖춘 보병들이 긴 창을 치켜 들고 발을 구르며 전진하는 전투 방법을 고안해 최강의 군대를 기른 필립왕의 병법을 계승했지만 알렉산더는 아버지의 도저한 혈통주의를 혐오했다. 자신의 야심에 필적하지는 못했으나 용맹한 장군이자 왕이었던 필립이 그리스 도시 국가들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자 알렉산더는 “아버지가 내 앞길을 막고 있다. 세상에는 할 일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고 푸념한다. 부자 간의 기 싸움은 왕권 계승을 두고 증오와 불신으로 변했다. 마케도니아 순수 혈통을 대물림하려 했던 필립 왕이 마케도니아 귀족 집안의 에우리디케와 정략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에우리디케가 아들을 낳을 경우 순수 마케도니아 혈통인 그녀의 자식이 왕이 될 게 자명해지자 알렉산더의 어머니 올림피아스는 거의 광란 상태에 빠진다. 결혼 피로연 자리에서 불만을 품은 근위병의 칼에 필립 왕이 암살된 후 그 배후에 올림피아스가 있다는 설이 파다했으며 알렉산더가 암살에 연루됐다고 주장하는 역사학자들도 있었다. 필립 왕의 죽음 이후, 에우리디케와 그 소출을 도륙하는 데 앞장 선 게 알렉산더였다는 기록도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역사적 사실과는 별개로 스톤이 창조한 혹은 재해석한 인물들을 추동하는 힘은 콤플렉스다. <알렉산더>에서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 역시 필립 왕으로부터 '불온한 혈통'으로 낙인 찍힌 콤플렉스를 극복하려는 투쟁으로 읽힌다. 알렉산더가 확신에 찬 모습을 보여 주는 건 전투에 임했을 때이며 그 외에는 늘 정체 불명의 번민에 휩싸여 있다. 알렉산더가 시름하는 이유는 이야기가 한참 진행된 후에야 밝혀진다. 알렉산더의 필립 왕에 대한 적개심은 전적으로 정체성에 대한 콤플렉스, 그로 인해 왕권을 이어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왕위 계승에 얽힌 비밀을 드러내는 방식에서 이는 확실히 드러난다. 스톤은 필립 왕을 갑작스럽게 이야기에서 탈락시키고 알렉산더가 왕위에 오른 상황으로 점프하더니 병사들의 부상과 향수병으로 원정이 난관에 봉착한 순간, 비밀을 폭로하듯 필립 왕의 죽음을 플래시백으로 삽입한다. 세상을 피로 물들이고 자신의 영혼까지 피폐하게 만든 정복 전쟁의 위기 상황에서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이라도 되는 양 필립 왕의 죽음을 끄집어내는 이유는 뭘까? 알렉산더에게 드리운 아버지의 그늘, 오이디디푸스 콤플렉스를 암시하는 이 순간이 알렉산더의 정복욕을 부추긴 '확정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알렉산더의 눈에 필립 왕이 유령처럼 출몰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알렉산더>는 거의 정신분열증적으로 보이는 알렉산더의 원정 여행을 살부 의식에서 비롯된 고심에 찬 여정으로 표현한다. 동방 원정은 필립 왕의 순수 혈통주의에 대적하기 위한 알렉산더의 투쟁, 즉 세계인으로 거듭 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위한 인고의 여정이었던 셈이다.

그림자를 두려워 마라

프랑스의 문호 앙드레 말로는 “적어도 그 자신의 결점과 악덕함을 죽일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젊은 알렉산더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차고 넘쳤던 정복 의지와 확신 뒤에 감춰진 알렉산더의 그림자를 보여 주는 한 가지 일화가 있다. 호머의 <일리아드>에 나오는 전투의 화신 아킬레스에 자신을 동일화했던 알렉산더는 아버지 필립 왕이 살해되자 그 자신도 흔들렸지만 단호하게 행동하는 것만이 왕권 계승자로서의 위상을 세우는 길이라 생각한다. 그는 불안과 초조를 다스리지 못하고 원정을 떠나기 전 펄프의 신전으로 달려가 여사제를 윽박지른 후 “누구도 널 정복할 수 없다”는 말을 거의 강제로 받아낸다. 일견 거대한 야심가의 호방함을 증거하는 듯한 이 예화는 알렉산더가 누구보다 두려움과 콤플렉스에 시달린 불구적 영웅이었음을 반증한다.

고뇌하는 알렉산더를 그린다고 해서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탈신화 돼 있는 건 아니다. 더러는 영웅주의에 기대기도 하지만 재미와 감흥을 위해 매설한 장치들이 감독의 진정성을 훼손하는 정도는 아니다. 문명 탄생의 배후에 놓인 거대한 살육극을 되살려내는 전투 장면에서 살기등등한 알렉산더의 얼굴 위에 어리는 것은 광기와 두려움이다. <알렉산더>의 인물 묘사는 <닉슨> <내츄럴 본 킬러>(1994) <플래툰>에 이어 “캐릭터의 강력한 흡인력”으로 드라마를 끌고 가는 스톤의 방식과도 연결된다. 콜린 패럴이 연기하는 알렉산더는 시종일관 동요하지만 강한 카리스마와 인간적 매력을 지닌 인물로 묘사된다. 역사가들이 행한 미화만큼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흥미 유발을 위한 영웅 묘사를 병행하면서 스톤은 서구 문명의 대영웅을 서사적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탐구한다. 영화 초반부, 어린 알렉산더는 어떤 장수도 통제하지 못한 포악한 야생마 부케팔루스를 길들이기 위해 안장에 오른다. 난폭하게 날뛰는 부케팔루스의 귀에 대고 그는 “네 그림자야. 두려워하지 마”라고 속삭인다. 야생마가 몸부림을 치는 건 자신의 그림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알렉산더도 마찬가지였다. 서구 문명을 지탱해온 신화가 한낱 사적 콤플렉스에서 기인했음을 암시하는 이 같은 관점은 서양인들의 신경을 거슬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사는 늘 공평무사한 기록이 아니었고 권력을 쥔 자들의 입장에서 기술된 이데올로기가 아니었던가.

전쟁에 몰두하고 정복을 거듭할수록 알렉산더의 얼굴엔 죽음의 기운이 드리운다. 왕이 되기에 순수하지 못했던 혈통 때문에 그는 민족과 국가 등의 경계가 사라진 ‘세계 통합의 꿈’을 꾼다. 고산지 이민족 처녀와 결혼을 한 것도, “야만인들과 몸을 섞으려 한다”는 가신들의 비판에 맞설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 꿈을 이루려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취된 역사 뒤에 감춰진 진실은 올리버 스톤의 일관된 관심사였고 역사영화 혹은 전기영화를 통해 그가 이루고자 했던 바였다. <알렉산더>는 역사적 사실의 깊숙한 곳을 파고 들어가 인간과 역사, 정치, 국가 시스템의 영혼을 발가벗기려 한다. 곧이곧대로 역사적 사실을 주입하지 않는 올리버 스톤의 역사 드라마가 심금을 울리는 건 이 때문이다.

가버린 포스모폴리탄의 시대

<알렉산더>의 미국내 개봉 성적이 참담한 수준에 머물자 올리버 스톤은 “할리우드에서 나는 내일의 마이클 치미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80년대 저주받은 걸작 <천국의 문>으로 기록적인 재앙의 맞은 후 재기하지 못한 치미노의 전철을 밟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을까? 올리버 스톤의 자탄에 가까운 푸념이 아니더라도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이슈를 다룬 현대 영화를 만들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영화는 점점 현실에서 멀어진 허구의 세계에서 위안 거리를 찾는다. 모두가 현실로부터 등을 돌리고 스펙터클에 대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만 역사를 인용하는 이 시대에 그는 왜 알렉산더를 불러냈을까?

일부 평자들은 알렉산더의 정복 전쟁과 현재 세계 정세와의 의도하지 않은(?) 우연성을 거론한다. 세계의 화약고로 변한 지 오래인 중동 지역에서 발생한 알렉산더의 정복 전쟁(알렉산더의 왕권을 강화하는 첫 번째 대전투가 벌어지는 가우가멜라는 지금의 이라크다)은 세계인을 카오스로 몰아가고 있는 미국의 침략 전쟁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알렉산더와 부시를 비교하며 이 영화를 현재적 상황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기도 한다. 지나친 확대 해석이랄수도 있겠으나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이 요즘처럼 첨예하게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와중에 알렉산더의 이상주의와 정복자 정신이 과거지사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올리버 스톤이 해석한 ‘정복’의 의미는 요즘 세계의 그것과 다르다. 알렉산더가 페르시아와 아시아에 대한 동방 전쟁을 ‘해방 전쟁’이라고 표현한 것은 오만한 선민 의식에 물든 제국주의적 시각으로 비쳐질 소지가 있지만 여기서 '해방'은 민족과 국가, 이념의 장벽을 없앤 코스모폴리타니즘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알렉산더는 정복자가 아닌 이상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올리버 스톤은 피아를 가르려고만 하는 사분오열의 시대에 통합의 이상을 쫓았던 불구(不具)의 영웅을 되살린다. 이는 보수화돼 가는 미국 사회의 변화 앞에서 케네디의 이상주의를 회고했던 스톤의 반골 의식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그가 붙잡고 싶었던 건 알렉산더의 야망보다는 투쟁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올리버 스톤은 한 기고에서 다음과 같이 쓴 적이 있다. ‘언젠가 인디언들이 유사 이래 돌(stone)은 모든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가장 숭고하고 오래된 기록 장치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이 세상에서 나는 다른 돌(Oliver ‘Stone’) 위에 ‘침묵의 역사’를 새길 것이다.’ 스톤의 역사 드라마는 자명하게 알려진 역사적 사실 뒤에 침묵하고 있는 진실의 실체를 밝혀간다. 그것은 역사에 대한 극작가로서 앞으로도 스톤이 포기하지 않을 태도이다. 자신의 <알렉산더> 버전에서 스톤은 정복자 알렉산더를 관대한 무경계인으로 묘사한다. 그는 인종의 장벽을 깨뜨리고 갈라진 세계를 묶어 전 인류를 통합하는 원대한 꿈을 꾼 이상주의자다. 아일랜드계 배우인 콜린 패럴의 갈색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검은 피부의 이민족과 살을 섞는 지조 없는 군주 알렉산더를 연기하게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민족과 국가, 혈통, 심지어 섹슈얼리티까지, 경계를 무화시키려는 정복자의 유토피아적 세계관은 <알렉산더>에 도도히 흐르고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알렉산더의 꿈은 더 이상 불가능해 보이는 가버린 시대의 이상이다.

장병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