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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록클래식

링고스타와 올스타밴드

링고는 폴이 아니다. 폴의 괴물같은 작곡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밴드의 수준에 있어서도 차이가 크다. 아무리 거물급으로 밴드를 꾸려도 결코 비슷한 수준의 사운드를 내지 못한다. 공연 중에 링고는 비틀즈 들어가서 곡 많이 썼어 앨범에 안실려서 그렇지라고 귀엽게 투덜 거렸지만 링고가 쓴 곡의 수준은 폴과 비슷한 곡이 단 한 곡도 없다. 보통 좋은 곡은 단순하게 확 꽂히더라도 곱씹을만한 디테일이 만만치 않은 경우가 많은데 링고의 곡은 기본적으로 그냥 단순하다. 영어를 못해도 따라부르기도 좋고 사운드도 그냥 들리는게 다다. 공연 중에서도 'Don't Pass Me By'나 'Yellow Submarine'에서 링고는 참 귀엽게 놀면서 불렀다. 어떻게 보면 좋은 밴드를 가라오케용으로 쓴 정도.

그런데 사실은 심지어 드럼도 생각보다 못쳤다. 많이 못쳤다. 그래미에서 두명이 드럼을 친 것을 링고가 늙고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각종 재롱을 생각해보면 드럼을 못쳐서다. 로큰롤 밴드에서 드러머는 단순한 것 같아도 실제로는 아주 잘치는 경우들이 있고 링고도 프로 드러머로 채용된 케이스였지만 지금의 링고는 그냥 못친다.

그런데, 링고가 구성한 밴드는 이름값만큼 잘한다. 공연 때마다 내안의 마초성을 자극하는 스티브 루카서의 비브라토는 골든 히트 팝송에 맞추어 원없이 들을 수 있었고 그만큼 좋았다. 사실 공연을 본 이유였던 토드 렁그렌은 미친 그리고 예민한 스튜디오 뮤지션일꺼라는 선입견과 정반대로 주접과 각종 재롱 액션 전담이었다. 이런 활기와 팝적인 재미는 토드의 공연이 정말 보고싶어졌지만. 예상 이상의 놀람을 준 뮤지션은 미스터 미스터의 리차드 페이지. 80년대 팝록의 실험적인 성향과 더불어 한국말 몰라도 복면가왕 씹어드실 미성의 힘은 상당했다. 60년대, 70년대, 80년대 뮤지션이 섞인 밴드의 구성인데 '팝'적인 요소가 강조되면서 80년대 뮤지션의 존재감이 컸다.

셋리스트를 보면서 알 수 있었지만 링고의 공연 보다는 올스타 밴드의 공연이었다. 그리고 그것 자체가 링고의 장점이다. 적당한 재능과 인성 그리고 친화력은 밴드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부분이다. 자기의 튜어에 밴드 멤버 각각의 곡을 거의 비슷하게 연주할 시간을 주는 마인드는 4명의 비틀즈 중 링고만 가진 재능이었다. 착한 줄 알았던 조지 해리슨이 징징거리면서 비틀즈가 해체된 것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렀다. 

카메라는 고자 수준으로 이상하게 잡았고 잠실 실내체육관을 심하게 비어 있었지만 뭐 그래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단순하고 수준이 높지 않다고(낮다고는 안했다) 까도 이런 때창을 부르는 즐거움을 주는 곡을 쓰는 뮤지션도 세상에 흔하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