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은 구두쇠 유태인 부모로 대변되는 전전세대와 달리 부모의 기대와 달리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새로운 세대에 관해 얘기하는 한편 페스티벌이라는 공간에 대한 환상 그 자체를 느끼게 한다. 물론, 영화의 말미에 알타몬트를 암시하는 대사를 통해 비터스윗한 뉘앙스를 남기지만 그 역시 환상의 일부분. 환타지의 절정 부분은 사실 과거의 얘기가 아니다. 누군가 글래스톤베리 수요일 언덕에서 내려본 풍경을 봤다면 약없이도 세상의 중심을 느낄 수 있다. 영화는 실제 공연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데 글래스톤베리도 그 자체가 헤드라이너 이상의 행복감을 준다.
우드스탁을 안다면 이 만큼 정확한 밸런스로 연출할 수 있을까? 자전적인 소설을 원작으로 했기도 했지만 69년 필름의 느낌과 때로는 유사하게 가면서 배우의 매력을 적제적소에 풀어가는 이안의 연출력은 사실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의 행복을 느끼게 한다. (테이킹 우드스탁을 포함하여) 이안의 모든 작품이 대단한 걸작은 아닐 수 있지만 이안의 작품들은 영화가 줄 수 있는 뿌듯한 행복감을 늘 주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물론, 좋은 영화 나쁜 영화를 양분하는데 중점을 두시는 모 평론가적 영화보기 방식이 아니라면.
테이킹 우드스탁(Taking Woodstock, US, 2009, 120min)
감독: 이안
출연: Demitri Martin, Emile Hirs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