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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기타등등

히로미 - LG아트센터, 2006/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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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는 바야흐로 피아노 트리오의 시대다. 기타록 밴드의 에너지에 맞춰 헤드뱅잉은 할 때는 좋지만 하고나면 피아노의 선율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특히 지금처럼 엔트로피 과잉의 거품이 걷히는 시대에는. 더욱이 양파 헤어스타일을 최대한 활용한 히로미의 액션은 피아노 역시 헤드뱅잉하기 좋음을 보여주고 있다. 작년 들었던 레파토리나 볼꺼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건반이 부서지도록 처대는 히로미의 연주는 여전히 다이내믹했다. 죽여주는 터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기자기한 소리를 사악깜찍한 썩소와 함께 날려주었다.히로미는 손맛을 아는 피아니스트다. 앙증맞을 정도로 귀여운 외모와 달리 실제로 팔꿈치 쪽 근육은 상당했다. 애기 때부터 그러지는 않았을터 엄청난 연습량의 흔적 아닐까? 팔꿈치 근육 사이로 실핏줄이 왔다갔다하는 모습은 참말로 섹쉬했다. 히로미 보고 섹쉬하다 보면 로리타 적인 취향이 아닐까 생각도 들지만, 79년생. 나보다 젊은 청년들이 잘하는 것 보면 세월이 무상하다할 수 밖에. 크리스마틴이 나보다 젊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그 상실감.


어쩌면 히로미의 연주스타일은 일본이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사실, 테크닉적 화려함과 멜로디의 상큼함은 있지만 히로미의 연주에 깊은 장맛을 느끼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그런 한우물만 판 장인과는 다른 히로미만의 스타일이 있다. 인터뷰에서 프립과 자파를 언급한 것은 인상적이었다. 재즈 피아니스트가 프립과 자파라. 사실은 과격한 터치로 인해 다른 피아니스트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팔꿈치 부상을 안고 사는 키스 에머슨을 언급하기에는 너무 노골적이었을까? 아무튼, 현대음악의 세례를 받은 키스 자렛, 퓨전의 칙코리아에 키스 에머슨의 터치와 프립의 음에 대한 실험과 건축물은 연상시키는 구조미, 그리고 자파의 좌파적 상상력. 이런 것들을 하나의 음악 속에 묶어 특유의 아기자기한 멜로디 감각에 응축시킬 수 있는 것은 서구적 전통을 무분별하다시피 도입한 일본이게 가능한 방법론일 수 있다. 게다가 뭘해도 약간은 과잉이라 싶을 정도. 치열한 수련에 의한 연주에 있어서의 완성도로 뽑아낼 수 있는 장인 정신 역시 일본의 것이다. 속주 기타리스트가 어디에도 통하지 않는 시대에 유일하게 환영해주는 곳이 일본인 것처럼.


히로미는 솔직한 감수성의 소유자였다. 사인회 때 만난 친구에 대한 포응. 내가 '아리가또'라 했을 때, 이 인간 혹시 일본어 아나 싶어 처다본 눈빛이 기억난다. 일본 사람들은 외국말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일본어 하는 외국인을 보면 디게 반가워한다. 일본어 몇마디 더했으면 히로미양의 품에 안겨볼 기회가 있지 않았을까하는 쓸데없는 상상도 해본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