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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축구

98/99 FA컵 4라운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vs 리버풀 FC, 올드 트레포드

리버풀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는 프리미어 더비라 할만하다. 21세기 들어서 아스날과 첼시가 이들을 능가하는 성적을 보여주고 있으나 가장 꾸준히 자국리그의 컵을 들어올렸고 유럽무대에서도 괄목할 성적을 거둔 두팀은 프리미어를 대표할만한 팀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헤이젤 참사 이후 거듭난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 98/99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트레블은 하나의 이정표라고 할 수 있다. 한동안 소외되었던 잉글랜드 축구가 자국 선수 중심의 팀이 최고의 위치에 오름으로인해 자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또한, 98/99가 꾸준히 화제에 오르는 이유는 떠벌이 영국 언론의 탓도 있겠지만 그만큼 명승부가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긱스의 센터라인부터의 미친 질주 결승골로 유명한 아스날과 FA cup결승전, 최강 바이에른 뮌헨을 루즈 타임 때 꺾은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그리고 킨의 결승골로 이긴 유벤투수와의 준결승전. 하지만, 리버풀과의 이 경기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일단, 너무나 익숙한 선수들. 우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좌긱스 우베컴 면도날 크로스, 중앙을 장악하는 킨. 그리고 야프스탐과 어윈의 중앙수비진, 게리네빌의 빈번한 오버래핑 그리고 짐승같이 덤벼드는 앤디 콜과 드와이트 요크의 공격진, 그리고 최고의 골리 피터 슈마이켈. 반면 리버풀은 원더 보이 마이클 오웬과 내추럴 피니셔 로비 파울러 그리고 90년대 최고의 미드필더 폴 인스. 오히려 재밌는 사실은 최근 국가대표 주전을 확보하는 듯 하다가 폴 로빈슨에게 밀리고 있는 제임스가 98/99년에 벌써 리버풀의 골리를 맡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경기는 프리미어 더비의 수준에 걸맞는 경기 내용을 보여주었다. 전반적인 경기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리드했다. 비슷한 연배의 미드필더진은 왕성한 활동력을 바탕으로 중원을 장악하며 수시로 좋은 장면을 연출해갔다. 안정적인 중원에서 최전방으로 찔러 투입하거나 대각선으로 크게 펼치거나 중앙으로 투입 후 측면으로 열어주는 등, 공격루트는 프리미어 특유의 시원스러움을 보여주면서도 간결하고 정교했다. 사실, 공격진에서 위협적인 장면을 연출했던 종패스만큼이나 중원에서 종패스 역시 정확했는데 패스 시 마다 적절한 회전으로 좌우 날개의 기동력을 충분히 살려줬다. 이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스에서 기본기에 대한 교육이 튼실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앤디 콜은 좋은 첫 볼터치 후 박아넣는 슈팅 만큼이나 주위 선수를 활용하며 공격 시 볼의 흐름을 부드럽게 만드는 역할도 했다. 킨은 이날도 역시 옐로 카드를 수집했는데 비슷하게 혈기 왕성했던 당시에는 긴 머리 휘날리던 긱스와 스콜스 역시도 카드 수집에 동참했다. 스탐은 자서전에서 오웬의 첫번째 볼터치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듯이 오웬이 가속을 붙이기 전에 저지하는데 주력했고 역시 당시 최고 수비수다운 역량을 보여줬다.

 

반면 리버풀은 프리미어의 특징에 보다 충실했다. 오웬의 절대적인 스피드는 충분히 혼자만으로 위력적이었는데 거기에 조그만 틈새를 놓치지 않는 로비 파울러가 있었으니 속공 시 보여주는 위력은 결코 뒤지지 않았다. 전형적인 장면이 오웬의 스피드에 두명의 수비수가 주춤거릴 때 로비 파울러로 투입되었고 로비 파울러는 바로 니어 포스트로 끊어먹는 슈팅을 날렸으나 골포스트를 살짝 빛나갔다. 첫골은 리버풀. 우측 돌파 후 크로스를 오웬이 깔끔하게 헤딩으로 마무리했다.

 

여기서 퍼거슨의 승부사 기질이 발휘되었다. 폴 스콜스의 투입. 폴 스콜스는 경기에 활약을 넣는데 충실했고 몇차례 결정적인 장면이 있었다. 특히 골포스트를 강타한 로이 킨의 슈팅은 땅을 칠 장면이었다. 리버풀에게도 몇차례 점수 차를 벌릴 기회가 있었으나 속공 시 오웬의 볼 컨트롤 미스로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솔샤의 투입. 종료 직전, 애매한 거리에서 약간의 논란 거리가 일만한 프리킥을 얻었는데 긱스의 슈팅 또는 베컴의 크로스가 유력한 상황이었다. 베컴의 크로스. 앤디콜은 헤딩 슛 대신 중앙으로 찔러주는 것을 선택했고 드와이트 요크의 민첩한 마무리. 경기는 막판에 원점으로 갔다. 루즈 타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또 한번의 찬스. 중앙에 투입된 공, 스콜스가 슈팅을 노릴 때 솔샤는 약간의 틈을 놓치지 않고 슈팅. 지금과 마찬가지로 제임스는 결정적인 상황에서 파포스트로 몸을 날리며 결승골 허용. 경기 내에 엄청난 소음을 양산했던 영국 남자들은 미쳐갔다.  피버 피치에서 묘사되었듯이 어떤 이는 너무나 이성적으로 발광을 했고 어떤 이들은 정신적 공황상태를 경험해야 했다.

 

이 역시 명불허전의 명승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