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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잡담

왜 한국의 대중음악인들은 비정치적인가?

  총선 직전 박찬욱, 봉준호, 문소리 등 영화인들의 민주노동당 지지는 민주노동당의 선전에 큰 힘이 되었다. 최근 파병 관계된 이슈에서도 영화인들은 자기 목소리를 뚜렷이 내고 있다. 실제로 이 영화인들은 대중적인 영화를 만드는 대중 영화인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은 왜 대중음악인들 중에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이는 없는가이다. 왜 그럴까?

  다른 나라는 그럴까? 음악은 영화처럼 주제의식을 표출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덜 정치적인 것일까? 절대 아니다. 대중음악을 짧고 소리로만 전달하지만-뮤직비디오가 있으니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훨씬 더 선동적이고 직설적이다. 대중들에게 더 쉽게 통한다는 얘기다. 또, 음악적인 이슈는 종교만큼이나 신념에 관계되고 계층과 지역에 따라 소속감을 느끼게 한다. 악마주의 로커 운운하는 웃긴 종교인들이나 비틀즈와 롤링스톤즈로 쌈박질하는 이들, 동부 힙합이나 서부 힙합이니 하며 총질하는 애들을 보면 그렇다. 그리고 대중음악이 성장하는데에 있어서 반전과 히피즘일라는 정치 사회적인 이슈는 절대적이었다. 직설적이건 시적이건, 영미권의 대중 음악인들은 영화인들보다 최소한 더 정치적이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의 대중음악인들은 선거와 파병이라는 큰 정치적 이슈가 있는 동안 잠잠한 것일까? 일부 진보적인 음악인들을 제외하자면 그나마 자기 목소리를 내는 척이라도 하는 대중음악인은 신해철, 신성우 정도가 아닌가? 그 정도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도 고맙게 생각해야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들의 의식은 사실 보수적이다. 대충 이들이 말하는 뉘앙스를 보자면 파병에 관해서는 반대를 해줘야될 것 같은데 대통령에 대해서는 까대기 싫은 이중적인 뇌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신성우가 파병 반대를 하면서 노무현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는 이유로 '자기가 이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고 노무현이 진심으로 파병을 지지하지는 않는다'라고 답했다.

  왜 그럴까? 여기에 첫째 단서가 있을 것 같다. 사실, 딱 10년 전만 해도 세상에서 제일 착한 뮤지션 마이클 잭슨 내한공연이 되니 안되니 하는 엉뚱한 얘기가 신문에 실리곤 했다. 또, 얼마전까지만해도 클럽에서 음악을 연주하는게 불법이니 가지고 시비를 하곤 했다. 사실 웃긴 일일 뿐이다. 대중 예술인에게 주어진 자유 측면에서는 상당히 많이 낳아진 편이다. 실제로 김대중 정권에서 발전된 면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당연히 주어져야할 자유임에도. 현재의 사소한 잘못으로 과거의 업적을 무시할 수 없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바로 지금의 지금 정권의 무비판적 지지층 들이 주로 하는 소리다. 

개인주의/자유주의/신자유주의
   핸폰 서비스 광고할 때도 밴드하는 놈이 '자유가 좋아...자유'한다. 대충 대중음악의 기본적인 바탕인 자유의 정서...이건 지가 무슨 신선 노름이나 된다고 사회적 이슈에 대해 골아프게 생각하는 걸 피하려는 정서를 지닌다. 대충 록이라는 음악이 반전하다가 나왔다니 전쟁은 대충 반대한다 쳐주고 그 이상 생각 안하려고 한다. 어떤 면에서 핸폰 광고 할 때 옆에서 '난 밥이 좋아'하는 놈이 사실을 얘기하는 것인지도. 어떤 면에서 실제 창작하는 대중음악인들은 경제적 자유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그럴 여유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다면 먹고 살만한 사람들만 자기 의견을 표출해야하나?

 

  상당수 우리나라의 음악인들은 도교 사상에 심취한 듯 하다. 말이 좋아서 도교사상이지 사회도피적인 행각일 뿐이다. 그게 자유주의와 맞물리면서 ...

진정한 자유주의는 자신의 목소리를 분명히 내는데에 있다. 세계화 속에 신자유주의에 의한 인권탄압을 정당화하고 지구 반대편의 다른 인류를 학살하는데 적극 공헌하는 것은 자유주의

 

  영화인들은 어떤가? 과연 박찬욱 감독처럼 성공한 커리어의 영화인만 정치적인가? 최진성 감독처럼 인디씬에 있으면서 아주 씨니컬한 주제를 독설적으로 쏟아내는 이는 먹고 살만해서 그짓 하는가? 오히려 상업적 성공은 자신을 자본의 중심에 서게 하고 오히려 생각을 경직되게 할 수 있다. 지금 먹고 살만한 사람이나 애기해야지 생각하는 분들은 상업적 대성공을 거두면 오히려 자신의 정치적 소신 때문에 자신의 음반을 사지 않을 사람을 걱정할 것이다. 상업적으로 성공하면서도 소신을 뚜렷이 밝히는 것은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개인주의/자유주의/신자유주의, 도교 사상/신선 놀음


그리고 여기서도 영화인들과의 차이가 나온다. 영화인들은 스크린 쿼터라는 단합할만한 이슈가 있다. 더더욱이 이는 세계화라는 지금의 이슈와 맞서 싸울 명분도 되고 있다. 반면, 음반이나 공연 시장은 좀 다르다. 실제 외국음반의 점유율은 높지 않다. 비록 자본의 침투는 이루어지고 있으나. 외국 공연도 마찬가지. 있는 척하는 이들에 의해 점유되고 있는 재즈나 클래식 쪽을 제외하자면 국내 음악이 오히려 돈된다. 사실, 음반시장 자체가 워낙 위축되어있는게 문제지. 아무튼 대중음악인들이 칼을 내미는 쪽은 MP3듣는 네티즌 들이지 외국 자본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영미권의 뮤지션들과 차이가 있다. 영미권의 뮤지션들 사이에서 MP3분쟁에서는 찬반이 팽팽하게 갈리는 편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중음악인들은 음반사의 목소리나 똑같다. 왜 그럴까? 걔네들은 레이블에 의해 자기네들의 착취당하고 있다는 의식이 강하다. 그런데, 아이러니는 그런 착취구조가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훨씬 더 심각하다는 점이다. 디지털 음악 수익의 50%를 이동통신업체가 가져가고 19%는 컬러링 업체에 돌아간다. 나머지 31%를 작사·작곡가, 가수, 제작자가 나눠갖는 구조다. 이건 오프라인 시장은 더 심할 것이다. 실제 뮤지션과의 계약관계가 사실상 노예계약인 예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왜 국내 대중음악인들은 착취당한다는 생각을 안할까?

  상당수는 뮤지션 자신들이 안만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곡이 아닌 음반사의 작곡가가 짜낸 그런 곡을 쓰며, 자신들이 연주하지 않고 뮤지션들이 쓴 세션을 쓰며 더욱이 자신들이 프로듀싱하지 않는다. 단지 얼굴마담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MP3관련해서도 얼굴마담으로 나서야될 수 밖에. 둘째, 음반 자체로 사서 들을 음악이 아니기 때문. 자기 음악을 하려는 뮤지션들은 많이 있다. 하지만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고 평균적인 Quality는 처질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음악 자체가 어떠냐보다 상품으로 어떻게 포장되어 나오냐에 따라 결정된다.  블럭버스터가 나오는 영화계와 달리 대중음악인 중 자본의 병폐에 중지를 들어낼만한 뮤지션은 우리나라에는 없다. 자본에 종속적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정치적인 소신을 가져서 남주나?

  베토벤이 위대한 것은 그가 남긴 훌륭한 곡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의 소신으로 음악인들의 지위가 높아진 것도 결코 적은 부분이 아니다. 초등학교 위인전에도 나오는 괴테와 있었던 귀족에 대한 태도의 얘기를 잘 알것이다. 베토벤의 음악사적 역할은 고전주의의 끝자락을 잡고 낭만주의로 나아갔다는 점인데, 낭만주의에서 음악인의 사회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의 강화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 베토벤은 혁명이 들끌었던 시대 정신에 충실한 인물이었다. 그런 시대정신에 대한 고민없이 베토벤의 걸작이 나왔을까? 나는 회의적이다.

  음악, 과연 개인적인가? 팝역사상 최고 명반에 손꼽히는 존레논의 Plastic Ono Band와 Imagine은 사실 가장 자기 중심적인 음반이다. 그러면서도 사회적 참여에 대한 의지를 보인 작품이기도 하다. 자기 중심적인 것과 사회적 참여는 따로 노는게 아니다. 자기 중심이 강할 수록 권력에서 원하는 방향에서 보다 자유로울 수 있고 보다 강한 어조로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다.

 

좋은 음악의 시작은 음악적 역량의 연마에서 시작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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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피터 가브리엘의 입장과 비교해보면 재밌다. 피터 가브리엘의 경우, 비판을 하는 것은 오히려 레이블이다. 다수의 대중을 상대로 쌈박질을 하는 것은 전술적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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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박찬욱 감독과 몇명의 영화인이 의기 투합해서 영화사를 설립한다고 했다. 문화 컨텐츠는 기본적으로 문화 컨텐츠를 모르는 자본의 압박이 심할 때는 제대로 된게 안나오게 되어있다. 이런 측면에서 좋은 방향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면에서 자본의 간섭에서 그나마 자유로운 인디 컬처는 상당히 좋은 대안이 된다. 그게 정치적이건 아니건 간에. 대중음악에 있어서도 이게 답일 것 같다. 자본으로부터의 거리를 통해 양적인 팽창과 아티스트의 의식도 함께 성숙하는 질적인 성장.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도 팔루자에서는 4000명의 민간인이 죽어나갔다. 그건 우리가 인정하고 지원해주는 사건이다. 눈가리고 방아쇄 당겨서 당신의 친구의 머리통이 박살난 것을 지금 당신은 당신네 이익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했다고 말한다.

  전후를 주도했던 문화와 사상의 다수는 전쟁과 홀로코스트에 대한 실존적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기타들고 노래부르면 그런거 안해도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