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극

파우스트-230412, LG아트센터

walrus 2023. 4. 22. 00:23

로테이션없이 장기간 진행하는 공연이라 휴식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박해수의 에너지는 엄청났다. 등장하자마자 몰입할 수 밖에 없고 첫대사가 나오고 1분안에 공연장을 장악했다. 젠틀한 이미지와 다르게 더하지도 덜하지도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지만 개성적인 악마 그 자체. 파우스트가 아니라 메피스토로 해도 좋을 정도로 박해수는 엄청났다. 모든 장면에서 돋보였고 심지어 박해수에게 포커싱되지 않는 장면에서도 박해수에게 눈이 갈 정도로 쉬지 않고 메피스토 그 자체를 발산했다. 리듬감과 호흡으로 전해지는 에너지는 그 자체로 곡예였고 재미였고 그걸 3시간 동안 밀어부쳤다. 심지어 커튼콜까지도.
그렇다고 다른 배우가 비는 구석이 있었나면 그것도 아니다. 70을 훌쩍 넘긴 유인촌은 미노년의 정의와 같이 잘생겼고 움직임 속에는 연극 속 믹재거처럼 나이를 느낄 수 없었고 당연히 발성은 교과서였다. 조연 역할들이 돌아가면서 재미를 줬는데, 특히 악마들의 공간으로 갈수록 퀴어적인 무질서함의 재미가 있었다.
원진아가 2부 초반에 나왔을 때, 그냥 순수하고 귀여운 조연으로 생각했지만, 시련을 관통하며 광기를 발산하는 결말부의 에너지는 박해수의 그것과 스파크를 일으키고 있었다.
무대 장치 자체는 단촐했지만 스크린으로 배경은 물론, 무대 뒤의 또다른 무대를 보일 때의 인터액티브한 구성도 인상적이었다. 여러모로 3시간이 알찬 무대였지만, 그래도 박해수의 장악력은 절대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