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환상'이라는 마법과 실제의 '마법'이 공존한다. 사실 이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그 두개의 '마법'모두 힘을 잃게 된 시기가 20세기였다는 냉정한 '사실'이 있다. 20세기는 또한 '이성'이라는 하지만 그게 왜 '이성'인지 모르는 폭력 또는 '바이러스'가 '마법'과 '로맨스'를 믿었던 이들을 병들어 사라지게 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집시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의 모습은 사실 자본주의가 침투하기 전의 우리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잊어버렸고 그들 역시 변하고 있지만. 산업화, 근대화, 진화 등 서구사회에서 '화'자를 붙여 만드었던 것들이 우리를 얼마나 병들게 했고 그것에 동조하지 않거나 못했던 이들이 받아야했던 잊혀진 상처들. 지금의 무슨 '화'는 동아시아가 선도하고 있는 시점에서 그런 '화'에 의해 정당화되는 상처에 대해서 돌이켜보는 것 역시 '작가'의 일이다. 영화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유머와 따뜻한 온기가 함께 한다. 이런 밸런스는 또한 거장의 손길이 영화라는 매체를 거쳐 보여줄 수 있는 또 하나의 '마법'이기 때문이다.
집시의 시간(Dom Za Vesanje, 유고슬라비아, 1989, 140min)
감독: 에밀 쿠스트리차
출연: 데버 더모빅-페르한, 루비카 아조빅, 허스니자 하시모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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