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반/고전

크리스 바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얼마전 여진 라이브 때, 드러머가 눈에 익었다. 전에도 두어번은 본 것 같은 느낌. 한번은 레이니 썬이었던 것 같고 한번은 재즈 공연. 이전에 홍대입구역에서도 본 것 같고, 여진 공연 후 집 앞에서도 가방 들고 어슬렁거리는 것을 본 것 같다. EBS 스페이스 공감을 보니 이 아저씨 비브라폰도 잘 치는 것 같다. 한국에 살면서 결코 쉽지 않은 토양 내에서 록과 재즈에서 장르 안가리고 한국 문화를 풍성하게 해주고 있으니 유전적 한국 사람들보다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훨씬 큰 셈이다. 더욱이 드럼이라는 포지션이 기본적으로 리드악기들이 한바탕 놀 수 있도록 돋자리를 깔아주는 자리 아니겠는가? 고마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사를 찾아보니, 한국 음악의 얇은 선수층에 대해 공손하게 지적한 부분이 눈에 띈다. 100% 옳은 말이다. 축구든 음악이든 선수층을 넓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열심히 하는 선수들에 확실히 당근을 주는 것이다. 더 많은 관심을, walrus에게는 더 많은 연봉을. 아무튼, 장가를 한국 여자에 오게 되어서 쭈~욱 살게 될 느낌이다. 축구 K리그에서 취약 포지션 선수들 귀화시키듯이 박가로 한국 이름 하나 줘도 좋을 것 같다. 박구리, 너무 구린가?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42&article_id=0000000543&section_id=103&menu_id=103

 

[재즈 프레소] 드러머 크리스 바가의 한국 사랑
[주간한국 2003-09-19 19:09]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생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전혀 고생이라고 못 느꼈어요.”한국 생활 5년 동안 드러머 크리스 바가(36)는 많은 것을 얻었다.무섭게 발전하고 있는 한국 재즈의 힘, 젊은 재즈 뮤지션들, 다양한 음악적 경험, 게다가 한국인 아내까지. 한국어 솜씨도 이제 상당하다. 한국서의 바쁜 활동 덕택이다. 추석 연휴 직전인 9월 초 역시 그러했다.

5~6일 부산에서 ‘시와 음악의 만남’이란 이름으로 재즈 콘서트를 가졌고7일은 대구의 클럽 ‘That’의 오픈 기념 콘서트에 초청 받아 입추의 여지도 없는 가운데 연주를 했다. 영락없는 재즈 뮤지션이다. 그럼에도 그는굳이 재즈 라기보다는 자신의 음악을 추구해 나가는 과정으로 현재를 설명한다. 그의 편력을 알고 나면 수긍이 간다.

네브라스카주 링컨시에 있는 주립대에서 클래식 타악 전공, 시카고 데파울대 대학원에서의 재즈 전공이 그의 최종 정규 학력이다. 그러나 그것만이다가 아니었다. 중학 이후, 취미로 해 온 재즈 밴드와 록 밴드에서 그는진정한 자유를 느꼈다. “뮤지컬과 가스펠 활동도 했는데, 음악이 깊어지다 보니 자연히 재즈쪽으로 관심이 가더군요.”재즈로 가게 된 데는 블루스에 심취해 있던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특히고교 이후, 그의 아버지는 원시 블루스(archaic blues) 음악을 테이프에녹음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클래식 피아니스트인 모친과의 갈등이 깊어져이혼하고 말았다.

이후 함께 살게 된 새 아버지는 한술 더 뜨는 음악 애호가이자 음반사의주인이었다. 덕분에 비밥 등 보다 깊은 재즈의 세계를 접하게 된 그에게는미국 특유의 교육 시스템도 큰 힘이 됐다. 고등학교부터는 특별 재즈 프로그램을 둬 관심 있는 학생은 재즈를 더욱 깊이 탐색하도록 하는 과정이다. 그 같은 음악적 자유 덕분에 그는 시카고대 음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난뒤 오케스트라와 재즈 클럽 활동을 병행해 갈 수 있었다.

“한국 여자 친구를 사귀고 있던 재즈 베이시스트 친구를 따라 한국에 오게 됐죠.” 막연히 외국 생활 경험을 쌓으려 한국땅을 처음 밟은 것이 1997년. 동네 PC방 아가씨, 연세대 어학당 등지에서 익힌 한국어도 제법 틀이 잡혀 갔다. 그와 동시에 서울의 재즈 카페에 출연하며 그럭저럭 이국땅에서의 생활이 1년째로 접어 들고 있던 그에게 들이닥친 것이 IMF 외채 환란이었다.그러나 그에게는 믿을만한 한국 친구들이 있었다. 클럽에서 알게 된 또래의 한국 재즈 뮤지션, 정말로와 전성식이었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클럽일자리 같은 것은 힘들었겠죠.”당시 친구의 소개로 싱가포르의 호텔 등지에서 일한 적도 있다.

다시 한국으로 온 것이 결혼 때문이었다. “동료 재즈맨이 세살 연하의 클래식 피아니스트 원경아를 소개시켜 주었죠.”2000년 4월 동네 교회에서가졌던 결혼식에서는 한국의 재즈맨들은 물론 미국서 모친이 건너 와 축하해 주었다.

오랜 한국 생활덕에 바가는 사실 한국인이나 다름 없다. 한국말 실력도 그러니와, 음악도 상당히 한국화 됐다. ‘결혼은 미친 짓’, ‘중독’ 등 영화 OST, 정말로의 ‘벚꽃지다’와 김용우의 ‘질꽃냉이’ 등 한국의 토속미가 물씬 풍기는 재즈 음반, 캐나다의 대표적 재즈 기타리스트인 울프 바케니우스와 전성식 등과 협연한 음반 ‘Twilight’등 최근 한국의 재즈가일궈낸 성과 곳곳에서 그의 타악 실력이 확인된다.

동덕여대 실용음악과와 강남의 대중 음악 학원 SMS에서 드럼 전공 레슨과앙상블 등을 강의하는 “교수님”이기도 하다. 3살이 된 딸은 원애린, 에린 바가(Erin Varga)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다.

한국 재즈의 허와 실을 제법 꿰뚫어 보고 있을 그에게 총평을 부탁해 본다. “늘 보던 사람하고만 음악을 하니 발전이 없어요. 그러나 친한 사람들과 계속 작업을 한다는 것은 좋은 점이죠.” 오십보백보 같은 말로도, 뭔가 의미심장한 말로도 들린다. “결국, 새로운 사람과 다양한 음악적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해요.”유창한 한국말로 한국 재즈의 딜레마를 잡아낸다.

앞으로 사물놀이 등 한국의 전통 음악적 자산을 본격적으로 연구, 새로운월드 뮤직을 창조하자는 꿈을 갖고 있다.

'음반 > 고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King Crimson - Power to Believe  (0) 2006.09.02
Steely Dan - Peg  (0) 2006.08.28
Wish you were here  (0) 2006.08.02
Where were you?  (0) 2006.07.21
Corazon Espinado, Santana  (0) 2006.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