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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만담

Nick Hornby의 저주

어떤 이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을지라도, 어떤 이에게는 정말 내 얘기같은 이야기들이 있다. 사실, 내가 다른 지역 사람이었다면 곽경택의 '친구'가 미남 배우들이 어색하게 따라하는 부산 사투리만 기억에 남는 정말 쓰레기 영화같이 느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부산에서의 '친구'라 말하는 것 마저도 쪽팔리게 생각하는, 다른 지역 사람들은 모르는 부산 남자들의 그런 설명하기 힘든 마음을 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실제로 자기가 경험하고 뼈속 깊이 체득된 그런 감수성을 섬세한 디테일로 뽑아낼 때 우리는 거부감을 거둬내고 감성적 동기가 맞추어짐을 느낄 수 있다. 많은 이들이 비슷한 감성을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이 뽑아내어서 가공하고 하나의 맛있는 요리로 느끼는 것은 바로 예술가의 몫이다. 캐릭터나 디테일에 있어서 현실보다 더 리얼하게 살아있는 그런 쫄깃쫄깃한 속살을 씹는 맛을 뽑아낼 때 우리는 적당한 미소와 함께 편안한 뿌듯함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브리짓 존스의 이야기'가 너무 속보이는 속편까지 만들며 미혼녀들의 반응을 불러 일으킨 것은 다 그런 점들 때문일 것이다. 미혼녀가 아니라면 사실, 글쎄올시다 정도이고 나 역시 그랬다. 그렇다면 30대 미혼남에게는? 닉 혼비가 있다. 닉 혼비의 소설 속에 살아있는 섬세한 디테일은 너무나 맛깔나기 때문에 꼬박꼬박 영화화되었고 Fever Pitch의 경우, 미국으로 건너가 현지화된 상품으로 재탄생되기도 하였다. 아무튼, 재료 자체가 신선하기에 나오는 영화마다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다.

 

오늘 Fever Pitch-이건 책도 샀다-와 About a Boy를 봤다. 쩝, 보는 이야기마다 내 얘기 아닌 것 없으니-사실, 난 늘 '인간은 섬이다'라고 생각했고 크리스마스 때 내가 한 짓을 더듬어 보면 딱 지금 현재 내 모습이다. 강백호가 슬램덩크에서 자신의 슛 자세를 상상하듯이 난 내 이미지를 몽상가들의 매튜와 맺어 볼려고 발악을 했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닉 혼비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조합해놓은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 나오는 캐릭터를 조합하면 절대 장가갈 수 없는 그런 캐릭터가 나온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어바웃 어 보이의 휴~그랜트(휴에 바람 소리를 넣는데 포인트가 있다), 피버 피치의 콜린 퍼스, 날 미치게 하는 남자의 지미 펄론,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의 존 쿠삭까지 나쁜 편은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철이 덜 들어서 그럴 수도 있다. 이건 하나의 저주다. 이걸 보고 짜식 꼴깝하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나보다 시집장가 늦게 갈 것이오.

 

p.s.1 닉 혼비의 외모는 사실, 존 쿠삭이나 휴 그랜트와 같이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을 연상했었다. 하지만, 실제 모습은 80년대 TV액션물에 나오는 싸움 잘하는 조연 같이 생겼다.

 

p.s.2 최근 들어 연애하라고 부추기는 인간들이 늘고 있다. 그러면서 미팅/소개팅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를 하지 않는 것은 연애불능자맞춤형작업이론이 대한민국에서 먼저 나오는 것에 부담을 느낀 미국이 배후에 있는 음모임에 틀림없다. 세계 초일류 기술을 보유한 대한민국 국민을 감싸주지는 못할 망정,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p.s.3 미혼남의 똘스러움을 자극하는 기사를 발견했다. 1년 동안 극장에서 가장 많이 영화를 본 사람의 기록이 불과 177회 밖에 안된다는 것이며 37년간 2445편 밖에 안봤다는 것이다. 단편 치면 내 기록이 더블 스코어인데. 작년 walrus의 마지막 4달 동안 페이스를 고려한다면 쉽게 경신될 기록이다. 이 기록 깨고 역사에 남고 싶은 맘이 한 구석에서 동하는 건 역시 철이 덜 들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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