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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만담

[펌] [영화][빡통진리교]의 최진성 감독의 영화이야기, "나는 아저씨..

*지난 월드컵 기간 중에 벼리는 [다음]에다가 카페를 하나 개설했었다. 이름은 [안티월드컵], 효순이 미선이가 죽어나가고, 비정규노동자들이 연일 시위하던 그 와중에 남한 사회의 모든 시선은 월드컵이라는 하나의 스펙타클에 사로잡혀 정말, 제정신들이 아니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은 허탈감에서, 또 반은 우스개로 만든 카페가 [안티월드컵]이었다. 그런데, 웬걸. 회원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더니만, 급기야, "주인장님 힘내세요"에서 부터 "야 이 개XX야, 너 같은 XX가 우리나라 축구 .... 어쩌고" 또는 "너 이 쉑 어디 살아? 내가 너 오늘 죽인다. 아이피 추적해서 가서 죽인다. 기다려"라는 등의 메일까지 받는 지경에 이르렀었다. 메일을 보내준 사람 중에 이 감독(최진성)도 있었다. 지금 자기가 '안티월드컵'에 관한 독립영화를 만드는 중인데, [안티월드컵] 회원들과 함께 인터뷰라도 하는 게 어떠냐는 것이었다. 인터뷰를 했으면 좋았겠지만, 거리상의 이유(벼리는 당시 지방에 있었다)로 무산되었었다. 그 뒤 최진성 감독의 영화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신통한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꼰대 아저씨들의 꼴통스런 폭력에 맞서기 위해 '유머'라는 방식을 선택했다"라는 이 감독의 말도 그렇고, 영화라는 '예술'(?)을 능청스럽게 정치블랙코메디화하는 태도도 그렇고 말이다. 하긴 어떤 예술이든지 '장난'과 '유머'가 빠지면, 어딘가 헛도는 것이긴 하다. 그런데, 이 '장난'과 '유머'가 무기가 되는 지평이 바로 정치라는 것도 분명하다. - NomadIa

 

 

“나는 아저씨가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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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로 보는 한국-최진성 감독 편

 

월간말editor@digitalmal.com

 

『뻑큐멘터리-박통진리교』,『그들만의 월드컵』,『캐치 미 이프 유 캔』,『누구를 위하여 총을 울리나』

가끔 누군가 내게 “너는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게 뭐니”라는 뜬금없는 질문을 하면, 내가 주저 없이 답한다. “나는 아저씨가 싫어요”
내가 여기서 반공소년 이승복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하는 절규처럼 “아저씨가 싫어요!”라고 단호하게 외치는 것은 어떤 아저씨한테 꿔드린 돈을 돌려받지 못한 상처가 있거나 해서 그러는 게 결코 아니다. (아, 물론 몇 번 있기는 하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아저씨’는 생물학적 나이 혹은 성별로 구별하는 ‘아저씨’가 아니라, 정신건강상태에 따라 상태가 굉장히 불량한, 성별을 초월한 ‘아저씨’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요즘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정신건강상태가 서둘러 조로해서 ‘애아저씨’가 되어버린 친구들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지 않은가?

자, 좀 더 솔직한 언어로 부르자.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아저씨는 속칭, ‘꼰대’다. 우리 사회에는 이 건강하지 못한 정신상태의 ‘꼰대 아저씨’들로 인해, 주변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예가 너무 많이 널려 있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내가 만든 다큐멘터리의 주제 혹은 목적의식은 하나의 깔때기로 모아진다. “나는 아저씨가 싫어요!”라는...

독립영화 감독 최진성thefre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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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저씨’가 싫다. 정신건강상태가 불량한 그런 ‘아저씨들’이 너무 싫다. 이런 상태불량 ‘아저씨’들은 일련의 공통점이 있는데, 일반화의 오류를 살짝 무릅쓰고 한 번 ‘질러보면’, 대표적인 것이 지하철에서 옆 사람 생각 안하고 다리를 ‘좌아악’ 벌리고 앉는 것이다. 이게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내 꼴리는 대로 주의’는 타인의 자율성과 행복권을 상당히 침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자, 한 발 짝 더 나아가보자. 지하철 안을 벗어나서, 망원렌즈를 이용해 원경을 좀 당겨서 보기도 하고, 광각렌즈를 이용해 사이드에 가려진 몇 센티를 좀 더 벌려 구경해 보기도 하자.

그들의 ‘삽질’은 계속된다, 『뻑큐멘터리-박통진리교』

나는 2001년도에 『뻑큐멘터리-박통진리교』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나는 이 작품을 찍으면서, 우리 사회의 상태 안 좋은 아저씨, 즉 ‘꼰대’ 여럿을 만나 촬영했다. 이 아저씨들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20년도 훨씬 전에 이미 저세상으로 간 ‘박정희 아저씨’를 무덤에서 끄집어내 좀비로 부활시켜 앞세우고, 바로 그 뒤를 졸졸 쫓아다닌다는 것이다.

아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군사독재에 개발독재 등 삽질이란 삽질은 줄 창 다 해 먹은 ‘박정희’라는 시체를 다시 부활시키나? 이는 확실히 시체애호증, 네크로필리아임에 분명했고, 이렇듯 이들의 정신상태는 상당히 중증이었다.

『뻑큐멘터리-박통진리교』는, IMF 이후 침울했던 한국사회에서 박정희의 망령 뒤에 숨어 자신들의 권력을 확장시키는 언론권력과 우익아저씨들을 향한 펑키한 레퀴엠이다. 이 작품을 만든 지 어언 3년이 지났지만, 요즘은 ‘뉴라이트’니 어쩌니 하는 새로운 정신불량 아저씨들이 선배들의 삽을 이어받아 열심히 ‘삽질’을 해대는 등, 슬프게도 한국 사회에서 ‘꼰대들의 삽질’은 끝나지 않고 있다.

월드컵 4강. 그 때 ‘모든’ 대한민국은 한 달 내내 웃었다! 과연?

2002년에 만들었던 『그들만의 월드컵』의 카피가 대충 이러했다. ‘이천이년 유월, 사천 칠백 만 온 국민의 월드컵, 그러나 그 사천 칠백 만에 속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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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2002년 6월 한 달간은 대한민국 사람들 대부분은 ‘붕’ 뜬 기분이었을 게다. 나도 그 분위기에 그냥그냥 묻어갔더라면 편했을 법도 한데, 우연히 나이키 공장의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이 벌인 안티 월드컵 캠페인을 보게 됐고, 이를 계기로 월드컵이 열린 한 달 간, 경기장이 아닌 전혀 언론의 카메라가 닿지 않은 곳들만 찾아 헤매고 다니게 됐다.

그 때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월드컵을 뒤에서 ‘팍팍’ 밀어주는 나이키 등의 초국적기업에서 부당하고 열악한 근로조건으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한국 원정투쟁, 월드컵에 사용되는 축구공을 만들다가 눈이 먼 인도의 소녀, 월드컵 기간 중 억울하게 죽은 ‘효순이와 미선이’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서러운 임금투쟁과 단식투쟁, 장애인들의 월드컵 구장으로 가기 위한 이동권 투쟁 등이었다.

이들은 당시 월드컵이라는 스펙타클한 이미지에 가려져 붉은 악마를 자처하는 절대 다수 국민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었다. 언론과 기업은 계속해서 월드컵의 흥분과 배타성을 ‘광고’와 ‘자본’으로 유도했고, 정치인들은 월드컵과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애국자임을 앞 다투어 과시하고 다녔다.

‘붉은 악마’는 월드컵의 스펙타클함을 만드는데 ‘자발적’이라는 이름으로 ‘동원’되었고, 결과적으로 현실의 억압과 모순에 일조하는 데에는 ‘비자발적’으로 철저하게 이용당했다. 망원렌즈를 통해 좀 더 가까이 본 대한민국, 광각렌즈를 통해 바라본 좀 더 구석의 대한민국은 더 이상 붉은 물결에 취해서 마냥 ‘자랑스런 대한민국’이 아니었다.

월드컵에 스폰 하는 초국적기업의 노동자 착취는 못 본 척 하고, 그들의 억울한 외침에 전혀 기울이지 않으며, 억울하게 죽어간 두 소녀의 죽음을 외면하고, 장애인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더욱 철저하게 눌러버리고 외면한 ‘부끄러운 대한민국’일 뿐이었다. 월드컵 기간, 내가 뼈저리게 느꼈던 것은 그런 부끄러운 대한민국이 보여주는, ‘보이지 않는 폭력’이었다.

글쎄, 아까 서문에 말한 전철안의 다리를 좌아악ㅡ 벌리고 앉는 아저씨 이야기로 다시 돌아 가보자. 실은 그 아저씨는 알고 보면, 가장 평범한 옆집 아저씨이자, 바로 우리 아버지이고, 어쩌면 내 자신이다. 이렇게 평범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남에게 피해를 준다.

월드컵, 4700만 온 국민의 축제인 줄 알고 떠들고 놀았던 그 시간에, 그 열기 때문에 더욱 소외 받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들을 우리는 애써 외면하고, 굳이 외면하려고 하지 않아도 언론과 자본은 알아서 우리가 그들을 외면하게끔 만들어간다. 그렇게 그들만의 월드컵과 함께 한 나의 한 달은 우울한 풍경과 함께 지나갔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도 아니었고, 세계최강 혹은 월드컵 4강은 더욱 달갑지 않았다. 좌, 우 할 것 없이 국민통합이 되고, 애국심에 불타올랐던 한 달이었지만, 글쎄, 그 최면에 의한 순간적 화해와 통합은 월드컵 직후 모든 것이 기만이었음이 바로 드러났다.

월드컵의 공적을 자신들의 업적으로 끌어오려던 아저씨들의 추한 모습에 나는 그만 토할 것 같았다. 『뻑큐멘터리-박통진리교』가 꼰대 아저씨들이 행하는 ‘눈에 보이는 폭력’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그들만의 월드컵』은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행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우리의 둔감함에 좀 더 민감해 질 필요가 있다. 그 실천은 멀리서 부터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지하철에서부터 시작한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당신들,『누구를 위하여 총을 울리나』

2003년 3월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했다. 엄연한 ‘침략전쟁’에 대한민국 정부는 미국눈치에 쩔쩔매며 동조했고, 결국 침략전쟁에 파병까지 하며, 대한민국은 침략전쟁을 거부한다는 헌법을 위반하기에 이른다. 단체로 헌법을 위반한 범법자들이 대한민국의 정치를 여전히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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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에 만들었던 『누구를 위하여 총을 울리나』라는 반전 힙합 뮤직비디오는 이런 나의 분노를 담은 뮤직비디오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대한민국의 정치인들, 이게 바로 꼰대 아저씨의 전형이다.

그들은 언제나 자기가 가장 편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기 때문에, 강자에겐 굽실대고, 뒤돌아서서는 자기보다 약하거나 어린 사람을 가르치려 든다. 그들이 미국에게 굽실대며, 이라크 침략전쟁에 찬성하며 파병하는 동안, 그들이 진짜 보호해야할 노동자들은 분신하고, 농민들은 음독하고, 서민들은 투신하고, 아이들은 아사하고, 이라크에선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이다.

허나, 대한민국의 아저씨들은 이런 걸 잘 모르나보다. 자기 배만 부르면 되고, 자신의 당파적 이익을 위해 올인 하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민중의 아픔은 철저히 외면한다. 그들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부끄러워야할 상황에서 오히려 떳떳이 잘하고 있다고 착각한다면, 이 또한 확실히 치료 대상이라 할 수 있다.

시간이 흘러 흘러 벌써 잊혀진 듯하지만, 우리는 김선일 씨의 죽음과 오무 전기 노동자들의 죽음을 잊으면 안 된다. 이들의 억울한 피 값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고, 한국군을 끝까지 철수시키지 않은 노무현 정권과 파병에 찬성한모든 정치인들이 책임져야 할 일인 것이다. 그들은 다시 연말의 혼란을 틈타 이라크 파병 연장안을 슬그머니 국회 본회의에 올려놓았다. 얼마나 더 많은 피를 봐야지 정신을 차릴 것인가. 그들은 진정 부끄러움을 모른다.

내가 여기서 국보법을 어기니, 잡아 볼 테면 잡아봐라!

2004년 말, 국가보안법이 논란이었다. 수 십 년 간 ‘쌩사람’ 여럿 잡아 온, 희대의 악법, 국가보안법이 드디어 전면적으로 폐지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였다. 허나, 개정이니, 전면철폐니 어쩌니 하며 거대 여당과 야당이 눈에 보이는 당파적 정략 싸움을 하더니만, 결국 맥없이 물 건너갔다.

민주노동당은 엄하게 힘 다 빼고, 속상할 뿐이고, 여야는 그렇게 국가보안법에 대해 한바탕 호들갑을 떨면서, 한편으론 슬그머니 서로간의 합의를 통해 이라크파병연장동의안을 통과시키려하고 있다.

내 또 다른 영화『캐치 미 이프 유 캔』은 작년 말에 독립영화인들이 국가보안법전면철폐의 염원을 담아 만든 국가보안법철폐프로젝트의 한 에피소드이다. 작년 10월 초 시청광장에서 펼쳐진, 우익들의 국가보안법사수궐기대회에서 나는 빨간 텔레토비'뽀'와 함께 인공기를 흔들고, 적기가를 부르고 다니는 장난을 치면서, 그들 앞에서 국가보안법을 유쾌하게 어기는 퍼포먼스를 ‘하려고 했다’(과거완료형인 것에 유의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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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고의로 국가보안법을 어기면서, 국가보안법이 얼마나 말도 안 되게 우스운 법인지 한 번 놀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당신들의 국가보안법을 어겨 볼 테니, 한 번 잡아갈 수 있으면 잡아가봐라’ 이거였다. 나는 이 ‘장난’을 통해 우리 사회의 '유머지수'를 측정해 보리라는 생각으로 자신감 있게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랬다. 원래는 이렇게 국가보안법을 어기는 과정을 찍는 것이 이 영화의 원래 계획이었던 것이다.

허나, 현장에 도착한 나와 우리 스탭들은 점점 모여드는 군인아저씨들과 수 만 명이 운집한 그 국보법사수의 열기에 눌려, 여기서 인공기를 흔들거나 적기가를 불렀다가는 정말 크게 다칠지 모르는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그러니까, 경찰에 잡혀가는 것은 겁이 안 나는데, 이 아저씨들의 물리적 폭력이 너무나 두려웠던 것이다.

나는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그 자리에서 '국보법위반퍼포먼스ꡑ\'를 벌이는 것을 슬그머니 포기하고, ‘꼬꼬마 텔레토비’와 함께 이리저리 광장을 돌아다니면서, 아저씨들한테 왜 여기서 애들 장난을 치냐는 꾸지람도 듣고, 일장 설교를 듣는 등 이래저래 피곤한 상황에 부딪히게 됐다. 결국 난 아무도 없는 광장 구석에서 ‘소심하게’ 인공기를 흔들고, 적기가를 부르는 소심하기 그지없는 '국보법위반 퍼포먼스'로 영화를 마쳤다.

이런 일련의 우스꽝스런 과정을 그린 영화가 바로 『캐치 미 이프 유 캔』이다. 이 퍼포먼스를 통해 나는 우리 사회가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와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라는 것, 어떤 ‘아저씨’들 앞에선 인공기를 흔들거나, 적기가 따위의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 무시무시한 폭력의 위협을 느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그 때 난, 진짜 ‘아저씨’들이, 엄밀히 말하면 아저씨들의 ‘주먹’이 살 떨리게 무서웠다.

국가보안법은 따로 혼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국보법과 더불어, 청소년 보호법, 테러 방지법, 집시법 등등 우리사회의 개인의 자율성, 양심과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이 모든 법들은 씨실과 날실로 촘촘히 얽혀져 있고, 그 정점에 서 있는 것이 국가보안법이다.

우리 사회는 이런 면에서 보면 그다지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 자유롭게 놀고 싶은 사람을 아주 피곤하게 만드는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이게 다, 지네들 편의대로 모든 걸 처리하고, 자신들의 폭력적인 생각만을 강요만 하려 드는 무시무시한 꼰대아저씨들 때문이다. 난, 정말 이 아저씨들이 너무 싫다.

난 ‘아저씨’들의 ‘꼴통스런’ 폭력에 맞서기 위해 ‘유머’라는 방식을 선택했다. 정공법으로 대들어주면 안된다. 그렇게 정면으로 맞짱 떠주면, 상태 안 좋은 아저씨들 버르장머리만 더 나빠진다. 상태 안 좋은, 정신 치료가 필요한 이 아저씨들에게 필요한 것은 유머를 통한 치료다. 이들에게 유머로써 승부하기, 메롱 하면서 도망치기, 움베르토 에코의 책 제목처럼 ꡐ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ꡑ으로 다가가기, 이것이 나의 다큐멘터리 만들기 방식이다. 앞으로도 ‘난 아저씨가 싫어요’에 대한 나의 ‘유희적 퍼포먼스 다큐멘터리’는 띄엄띄엄 계속될 것이다.

p.s. 참, 전철에서 다리 좀 좌아악ㅡ 벌리고 앉지 맙시다! 옆 사람도 생각 좀 하고 살자구요.

 

월간말 2005년 2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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