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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땅밑에서

이승환 클럽공연(DGBD. 200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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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본 콘서트가 91년도 겨울 쯤에 부산에서 있었던 이승환 콘서트였다. 그리고 처음 내 손에 들어온 음반이 90년 쯤 이승환 1집으로 기억한다. 내겐 확실히 추억이 있는 뮤지션. 이승환의 음악적 정점은 Human인 것 같다. 그 이전 앨범은 사운드가 좀 부족한 면이 있었고 이후 앨범은 멜로디가 덜 감기는 듯 하다. 하지만, 이승환의 콘서트는 제일 볼 만한 그런 콘서트로 꼽힌다. 또, 이승환의 콘서트 실황 DVD는 몇안되는 우리나라 실황 DVD중에서 레퍼런스 급으로 꼽힌다. 그래서 이승환의 공연은 항상 성황이다. 그런 그가 갑자기 결코 크지 않은-하지만 대표적인 클럽 중 하나인-DGBD에 떴다. 충분히 예상되던 바지만, 공연 티켓은 순간 매진되었다. 공연장을 찾은 이들은 대충 20대 중반이후였던 것 같다. 아마 학창시절을 이승환 초창기 음반을 들으면서 같이 나이가 들어가는 세대들. 어린 소녀소년이었던 그들 중 상당수는 화장을 했고 상당수는 직장에서 온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들의 애정은 그대로다.

오프닝은 시떼리끄...밴드의 프런트맨도 얘길했지만 라디오헤드와 너바나의 중간쯤 사운드...이승환의 드림팩토리 소속의 뮤지션인데 주류 가요의 사운드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이승환의 공헌 중에 하나가 자신의 독립적인 자본을 통해 자기가 원하는 음악과 후배뮤지션을 위해 투자를 한다는 점이다. 단지 자본에 너무나 종속적인 다른 뮤지션과 비교해봤을 때 꽤 괜찮은 모델을 제공하고 있는 셈.

이승환 팬들은 대체로 매너가 상당히 좋았다. 매니저의 경우, 카메라로 많이 찍는다고 투덜거렸지만 사실, 그 정도면 충분히 절제해준 편이라는 생각이다. 이승환과 음악적 성격이 꽤 다른 오프닝 밴드도 즐길 줄 아는 매너를 지녔다. 또, 이승환과 밴드가 등장할 때는 적절히 자리를 터주는 나이만큼의 성숙함도 보였다. 이승환은 클럽 공연을 의식해서인지자연스러운 회색계열의 면티에 청바지를 입고 나왔다. 상당히 마르고 작은 체구였다.

 

첫곡은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예상대로 들끌었다. 세가지 소원,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붉은 낙타등의 기존의 히트곡과 더불어 8집이자 새 앨범이 될 Karma에서 3곡 이상이 선곡되었다. '심장병'이란 제목의 이승환 특유의 록발라드, 적당히 나른한 록 사운드를 주는 곡, 약간 쎈 사운드의 Quiz Show 등. 앨범 발매도 전에 3곡씩 보여주는 확실한 팬서비스를 해줬다.

신곡 심장병을 제외하자면 록적이고 달리는 그런 편곡으로 들려주었다. DGBD의 좁은 무대 속에서도 기타2, 베이스1, 드럼1, 키보드1, 혼성 코러스3+보컬...이승환 밴드의 편성이 그대로 다 왔다. 사운드는 특별한 흠잡을 때 없이 깔끔했다. 이승환의 보컬은 아주 큰 성량은 아니지만 자신의 곡을 자신감있게 표현했고 액션은 절제되어있지만 특유의 힘이 있었고 더욱이 전체적인 공연의 완급으로 분위기를 끌어갔다.

사운드에 있어서 아쉬운 점이라면 깔끔하고 충분히 록적이긴 했지만 여전히 가요적인 느낌의 그런-언젠가 이 가요적인 느낌에 대해 언급하겠지만-뭔가 허전함이 남는 그런 쪽이었다. 그런 사운드가 이승환의 팝적인 멜로디를 뒷받침해주기에는 적합할 수 있겠지만.

 

이승환은 영리한 뮤지션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약하다는 말도 괜찮을 듯 하지만 그의 캐릭터와는 안맞는 것 같다. 그는 MP3와 음반시장 불황을 이승환식 유머로 계속 얘기를 했다. 그는 비록 농반진반으로 얘기했지만 새 앨범의 판매량에 대한 압박감이 결코 작지 않은 듯 했다. 사실, 영화같은 걸 보더라도 대박은 미디어를 활용하는 것보다 입소문이 더 무섭다. 작은 클럽 공연을 통해 신곡을 노출시키는 것은 음반 판매량을 위해서도 꽤 괜찮은 전술일 수 있다. 오늘 클럽 공연은 대부분이 이승환의 골수 팬들. 이승환 자신도 DVD에서 봤던 얼굴들 여기서 다보는 것 같다고 했다. 공연장을 완전히 채웠고 언젠나 그의 음악에 지지를 표해주는 팬들에 대해 이승환 식 농담으로 감사를 표시했다. 어떤 면에서 이 부분에 아쉬움이 남는다. 그는 결국 기존의 팬이 떠나가는데에 대해 늘 부담을 가지는 것이다. 이승환의 경우, 워낙 영리한 뮤지션이라 실험을 하더라도 결코 특정 선을 넘지 않는다. 이번 8집의 경우, 록적인 사운드를 강조하고 공을 많이 들인 앨범인 듯 하지만... 그런 실험이 가져올 리스크를 충분히 알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한다. 비치보이스가 최고의 걸작 Pet Sounds를 내고 대중적 인기는 급강하했던 것처럼.

 

내일 쌈지에 나오고 이달 중순에 다시 클럽에 다시 온다고 했다. 유명한 주류 뮤지션이 작은 클럽을 찾는 것은 충분히 박수를 쳐줄만한 일이다. 자신도 새로운 활기를 얻을 수 있고 자신의 팬들도 나중에 클럽을 찾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전자 쪽에 대해서는 조금은 회의적이다. 자신의 팬들과 부담스러울만큼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신나게 공연을 했지만, 어짜피 기존의 팬들과의 거리감없는 자리일 뿐이지 작은 무대와 새로운 팬들을 통해 새로운 활력을 찾는 자리는 아닌 셈이다. 사실, 비밀스럽게 추진해서 보통 클럽에 드나드는 인디록 팬들을 상대로 무대를 가졌으면 또 어떨까하는 생각도 든다.

음악이 사망선고를 내릴 때-다시 말해 폴매카트니가 비틀즈를 탈퇴하기 직전-폴매카트니의 최후의 제안은 작은 클럽에 제한된 관중 속에서 공연을 하자는 것이었다. 레논의 거절로 실패했지만, 폴매카트니의 의도는 함부르크의 험악한 분위기에서 관심을 끌기 위해서 발악을 하던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그런 의도와 비교했을 때 이승환의 오늘 클럽 공연은 약간의 아쉬움도 있고 약간의 만족도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정이 드는 앨범은 1집이다. 누구든 첫번째 앨범은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다. 결코 잘 다듬어진 사운드는 아니지만 그가 직접 쓴 '좋은 날'이나 '크리스마스에는'은 확실한 그만의 독특함이 있었다. 설익었지만 화장하지 않은 듯한 느낌. 그런 느낌을 다시는 보기 힘들 듯 하다. '주류'라는 것은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그런 곳인 듯 하다.

 

하지만, 나에게도 소중한 자리였다. 거기 있었던 200명 가까운 이들처럼 이승환이란 뮤지션은 세대와 같이 늙어가는 현재형 뮤지션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20년전 딥퍼플을 좋아하던 팬들이 딥퍼플을 찾고 딥퍼플은 새 앨범을 들고 다시 찾아오듯이. 15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정력적인 활동을 지속하면서 그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새로운 창작활동과 창작환경으로 그와 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팬들을 만나는 뮤지션의 존재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운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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