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연/땅밑에서

텔레비전/장기하와 얼굴들-20130512, 블루스퀘어



결국, 록은 기타놀이라는 걸 다시 증명하는 공연. 텔레비전이 보컬이 중요하지 않은 밴드일 경우 더 그렇다. 사실, 기타가 오히려 더 보컬 같은 공연이었다. 프런트맨인 톰 벌레인이 다소 재지하다 싶을 정도로 실험적이었다면 또 다른 기타리스트 지미 립은 록킹한 리프의 선명하고 에지있는 사운드가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이었다. 사실, 실험이고 뭐고 일단 리프 자체가 귀에 들어와야 안질리는데 지미 립이 그 역할이었고 그는 프로듀서의 경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믹 재거와 제리 리 루이스의 2006년 앨범에 작업한 바 있다. 로큰롤의 단단한 사운드를 만드는데 특화된 아티스트이고 마퀴 문 같은 원래 멤버는 아니었다는 얘기. 지미 립이 있었기에 팀 벌레인의 실험이나 드럼으로 다른 시도를 하는 것이 가능햇다. 뉴욕의 실험성을 생각하지만 그 이전에 록의 기본에 충실해야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레스터 뱅스의 말대로 텔레비전은 '프리재즈 펑크 록'이었다.
한가지 딴지를 걸자면, 훌륭하긴 했지만 아주 재밌진 않은 감상용 공연이었다는 것. 텔레비전은 매 곡마다 튜닝을 맞추며 참 진지하게 공연했고 실험적이고 훌륭한 사운드를 보였지만 놀 수 있는 공연은 아니었다.

이번 공연을 통해서 다시 한번 느낀 것이지만 장기하와 얼굴들은 학구적인 밴드다. 산울림 이후의 한국 그룹 사운드를 기반으로 하지만 다양한 60,70년대 영미권 록의 전통도 제대로 학습하고 있는 밴드다. 하세가와 요헤이의 정식 가입 이후 그것은 가속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6인조 편성의 밴드는 싸이키델릭이나 스페이스록도 제대로 소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장르적으로 사운드적으로 그 어떤 밴드보다도 확실히 넓어지고 있다. 특히 멱살한번 잡읍시다의 사운드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이런 점 때문에 오래 갈 밴드이고 지금 이사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다르게 보자면 넓어진만큼 정말 장점이 뭔가도 생각하게 된다. 사운드적인 쾌감이 좋아진만큼 장기하 특유의 한국어의 리듬감을 만드는 맛이 록킹한 곡에서는 다소 묻히기도 했다. 학습하고 확장되는만큼 현재 가지고 있는 확실한 강점도 갈고 닦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