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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기타등등

크라프트베르크-2013047, 잠실









보통 자연스러운 악기의 음색이라는 것이 기본주파수의 체배로 형성된 고조파의 합에 의해 얻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고 그게 필터링되면 인위적인 느낌을 준다고 했다. 어떻게보면 소리의 단순화. 크라프트베르크는 복잡한 전자적 장치를 통해 단순화하는 뮤지션으로 생각되었다. 단순하기에 20-30년전 오락기 사운드 틀어놓고 오락기 화면 보여주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농반진반의 말이 공연전에 돌곤 했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크라프트베르크 뿐만 아니라 많은 Djing 공연이 그렇게 느껴지기도 한다.

'잠실'이라는 말에 주눅이 들었고 매진이라는 말에 얼마나 북적거릴까 두려웠지만 공연장에 들어갔을 때 '아담한' 사이즈의 공연장을 주차장 위에 만들어졌음을 발견. 독일인들 답게 1분도 지연되지 않은 정확한 9시에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첫 사운드가 들리는 순간, 소리 자체가 주는 쾌감이 상당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람의 모델링이 3D로 다가올 때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화면만 3D일 뿐만 아니라 소리 자체도 3D였다. 각 파트는 고조파를 필터링한 단순한 기계음일지는 모르겠지만 4파트가 정교하게 결합할 때의 청각적 쾌감은 상당했다. 크라프트베르크 같은 음악은 누구나 만들 수 있다는 누군가의 주장은 공연을 보지 않고 떠드는 게으른 말임이 순식간에 증명되었다.

크라프트베르크가 '단순'하게 느껴졌던 것은 그들이 '기호화'하는데 큰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만든 소리 자체도 하나의 '기호'로서 기능하고 각각의 곡에 따른 영상은 복잡하게만 보였고 그만큼 무의미했던 세상, 사물, 음악을 기호화하면서 하나의 사유를 제공하는 기능을 했다. 각각의 기호는 아주 다양한 시선에서 각각의 의미를 지녔다. 공학적으로 보자면 인간에서 시작해서 우주, 우주선에서 바라보는 지구, 지구 안의 도시, 도시 속의 컴퓨터, 컴퓨터 속의 반도체-마치 반도체 다이처럼 보였다-로 점점 파고드는 기호화의 과정. 그리고 각각의 기호는 음악적 쾌감을 동반했다. 심지어 그들의 쫄쫄이에 줄그려진 의상은 마치 애니메이션 제작과정에서 인간의 움직임을 기호화하기 위해 센서가 부착된 의상처럼 보였다. 그들의 '기호'는 소통의 방식이기도 했다. 별다른 인사말 없는 공연이었지만 음악 속 기호를 통해 소통했다. 우주선이 바라보는 한반도, Radioactivity에 나온 한글 메시지 '이제 그만 방사능' 그리고 마지막의 한국말 인사를 곡에 담아내는 것까지. 

인위적인 기계음이라 생각되지만 그들의 라이브는 말 그대로 라이브였고 실제로 유일한 원년 멤버 Ralf Hütter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리고 그들이 주는 사운드적 개성은 다소 딱딱하지만 그 속에 유머가 숨어있는 독일인의 독특한 악센트에 상당 부분 나오는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공연 보기 전의 예상과 상당히 큰 공연이었다. MOMA와 크라프트베르크가 만든 혁신은 그들 이후에 나온 전자음악 뮤지션들이 귀엽게 보이게 했다. 폴 매카트니와 비틀즈 카피 밴드, 우래옥 냉면과 분식집 냉면 정도의 차이. 어떤 것을 새롭게 창조한다는 것의 저력은 결코 작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