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적인 실험이 일반화되어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 영화임을 알고 봄에도 다큐적인 영상에 이처럼 격한 감정이입이 되는 작품은 이전에 본 적이 없다. 레슬러와 쇼걸이라는 생활 자체가 쇼이며 허풍을 보여야하지만 정작 하류인생을 사는 그들의 삶을 회를 뜬 것처럼 리얼하게 그려낸다. 대부분의 작품에서는 허구를 과장된 비주얼로 포장하거나 실제로 우리와 다른 타락하고 역겨운 인생으로 그려내곤 했지만 이 작품은 그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면서도 우리와 전혀 다를 바 없는 힘겨운 인생을 살고 있는 이웃임을 느끼게 한다. 또한, 영화의 몇몇 장면, 특히 슈퍼의 입구를 향해가는 장면과 예측 가능하지만 격렬한 감정의 동료를 일으키는 영화의 결말 그리고 죽여주는 엔딩송은 쉽게 잊기 힘든 명장면이다. 여기서 미키 루크의 연기는 그냥 연기를 위해 망가지는 그런 연기와 차원이 다르다. 사전 정보가 없이는 다큐로 착각하기에 충분한, 배우가 아니라 실제같지만 정말 탁월한 배우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그런 경지의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미키 루크는 없고 랜디 램 아니 랜디로 불리고 싶은 로빈만 가득차게 보인다. 물론, 극장의 엔딩 크레딧이 끝나면 미키 루크의 이름은 깊이 각인된다. 쇼가 끝난 2008년의 미국의 가장 적나라한 자화상이며 진정 명배우의 탄생을 알리는 작품이라할 수 있다.
더 레슬러(The Wrestler, US, 2008, 109min)
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
출연: 미키 루크, 마리사 토메이, 에반 레이첼 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