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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최신작

캐롤



좋은 투수가 좋은 공을 던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은 직구의 구위다. 갈고 닦아서 구속, 구질, 로케이션 등의 수준히 상당히 높을 때 그 공은 알고도 못치는 돌직구가 되고 투수의 기본 수준이 된다. 그리고 이것은 힘만으로 되는 작업이 아니라 실제로 섬세하고 수준높은 작업이다. 어쩌면 영화에서 감정을 다루는 것도 비슷하다. 변화구를 던지고 반전이나 트릭을 쓸 수도 있겠지만 영화를 통해 원하고자하는 감정을 정확하고 강력하게 구축할 수 있다면 그 이상 좋은 것이 없다. 캐롤이 그렇다. 영화의 초반만 하더라도 캐롤과 테레즈의 관계는 바로 읽히고 영화의 러닝타임 내내 별다른 잔꾀없이 감정을 쌓아가지만 이것의 섬세함이 결국 강력한 감정을 끌고 온다. 사랑은 어쩌면 일년에 한번 캐롤처럼 사람의 행복을 끌어내는 단순한 선율 아닐지. 토드 헤인즈 이전에 데이빗 린이 그랬다. 

이 영화에서 모든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선하다. 두 여성 캐릭터에 방해가 되는 남성 캐릭터 마저도 각자의 동기에서는 충분한 선함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캐롤의 마지막 선택이 막장드라마가 되지 않고 우아한 결말이 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물건너 영국에서 전쟁영웅을 무참히 자살시켰던 것과 달리 과연 50년대 미국이 그랬을까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만. 레즈 간의 사랑인데도 두 배우는 특히 케이트 블란쳇은 헤테로 남성관객에게도 아마 여성관객에게도 신과 같이 매력적이다. 어깨를 만지는 터치만으로도 사랑의 다른 깊이를 전하는 장면과 시선이 쌓아가는 감정은 영화의 끝에 모든 냉소의 장벽을 거둬내고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진심으로 바라게 되는 마법과 같다. 사라 폴리의 걸작 이후 만나는 멜로드라마의 걸작.


캐롤(Carol, US, 2015, 118min)

감독: 토드 헤인즈

출연: 케이트 블란쳇, 루니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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