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른다'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답답함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가슴 한구석이 멍해지는 것같은 답답함이 느껴지지만 그것이 또 하나의 안식처럼 느껴지는, 그렇다고 쉽게 다시 보게 되는 영화는 아니었다. 환상의 빛을 보면서 다시 보고 아무도 모른다가 다시 보고 싶어지는 이유는 빛을 어떻게 다루는지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제목처럼 작가는 빛의 마법을 보여주고 있다-나른한 대낮의 환한 방안에서 보는 것은 이 영화를 느끼는 최악의 방법이었지만. 오즈 야스지로처럼 정적인 프레임웍 위에서 은밀하게 비치는 빛의 매혹은 세상을 인지하고 '앎'을 얻게 되는 수단이며 권태로움 속의 자극이며 절망 속의 희망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빛은 삶의 상처를 인지하고 고통이 깊어지게도 한다. 세상의 많은 작가들은 예술을 통한 치유를 꿈꾸어왔다. 정적과 어둠을 통해 상처를 잊는 것이 최상의 치유일 수도 있고 너무나 아파 그 이후의 안식을 얻는 것이 최상의 치유일 수도 있고 아무튼, 상처를 대하는 방식에 따라 치유의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적어도 영화를 보며 다소간의 치유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사람들은 누구나 상처가 있다는 것을 거듭 느끼기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환상의 빛(幻の光/Maborosi, Japan, 1995, 110min)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에스미 마키코, 나이토 타카시, 아사노 타다노부, 카시야마 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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