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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

walrus 2012. 9. 9. 19:34



김기덕 영화는 사실 대체로 재밌었다. 심지어 지나친 자의식 과잉으로 상당한 비판을 받았던 아리랑 마저도 지루하지 않았다. 이점은 홍상수 마저도 마찬가지. 키득키득거리다 보면 특별히 지루할 틈이 없다. 한국의 고다르라는 생각을 했지만 영화사 이후 이해하기 어렵게 나른한 고다르 영화와 달리 김기덕은 재밌었다. 대신, 영화제의 성공과 피해의식 사이에서 불안한 김기덕의 자아가 영화에 투영되는 것은 사실 불편했다. 이전까지 김기덕 영화가 주는 불편함은 우리의 내면을 그대로 까발리고 느끼게 하는 것이었지만 개인의 자아가 과잉되면서 그냥 투덜거림으로 느껴졌다. 그 투덜거림마저도 창의적이었기에 인상적이었지만.


피에타는 그점에서 다소 거리를 둔 것처럼 보인다. 제어되지 못한 투덜거림 대신 자기가 하고자하는 얘기를 적절히 제어하면서 풀어가고 있다는 점이 충분히 좋다. 영화는 시각적으로 김기덕의 장기가 충분히 표출된다. 청계천과 세운상가의 노동자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날 것으로 풀어가는 방식은 독보적이다. 언제 손가락이 날아갈지 모르는 기계와 기름 냄새나는 공간에서 사채로 삶을 위협받는 생태계를 표현한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는 충분하다. 쌩으로 담아냈지만 그럼에도 극히 회화적이다. 근대회화적이다. 미술을 잘안다면 보다 좋은 예를 찾을 수 있겠지만 난 고야의 '두 마술사'나 '죽음이 올 때까지', 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이 연상되었다. 한편으로는 핀처의 세븐과 같은 시각적 쾌감이 있다. 유럽의 영화적 전통과 때깔나는 화면빨은 딱 영화제가 좋아할만 했다. 그리고 (조금 쎈 영화에 거부감이 없다면) 대중과도 한발 더 나아간 영화로 보인다. 김기덕의 영화는 늘 마지막에 후려치는 맛이 있었지만 이번엔 훨씬 극적이다.


피에타(Pieta, Korea, 2012, 104min)

감독: 김기덕

출연: 조민수, 이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