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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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즈 루어만이 엘비스 프레슬리를 영화로 만들었을 때 예상할 수 있는 결과와 다르지 않다. 로큰롤의 황제의 글리터한 무대를 말그대로 눈의 휘둥그래지는 비주얼사운드 환타지로 재현하고 이어지는 고뇌의 시간이 지리하게 이어진다.
이 경우, 통상적인 영화의 평점은 3점짜리이겠지만 '음악'영화로 엘비스에겐 훨씬 좋은 평가가 가능하다. 우드스탁처럼 70년대 유행인 화면분할로 연출한 공연 장면이 레트로적이면서도 현대적이고 참 적절하게 영화적이고 음악적 운동성도 보여준다. 황제의 천재성이 발견될 때나, 세계를 지배할 때, 재기할 때, 라스베가스의 늙은 사자가 되었을 때도 여지없이 표출된다. 음악이, 로큰롤이 주는 흥분을 음악적으로 로큰롤적으로 극대화하는 음악영화로 큰 장점이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쾌락의 그늘에서도 캐릭터를 딘순화하는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엘비스를 바보같은 지능과 천재적인 본능을 지닌 동물로 표현하고 싶겠지만 여기서는 엄마에게 캐딜락을 사주고싶은 선한 청년이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하는 영민한 천재로 나온다. 파커 대령의 족쇄에 걸리는 것 역시 그가 멍청해서가 아니라 50,60년대 로큰롤의 천재들이 산업의 예상치 못한 성장에 모두 걸렸던 덫이었고 딱히 대안도 없었다. 월드 투어의 체력적 심리적 압박이 레지던시의 답답함보다 엘비스의 건강에 좋았을까? 그런면에서 파커 대령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 그의 금적전 문제에 엘비스를 악용했지만 그가 정말 엘비스에게 나쁘기만한 인물일까? 선에서 RCA 이적은 도약의 계기였고 정부의 간섭이 위협이 될 때 접점을 제시한 것 역시 사실이다. 브리트니처럼 무능하고 이기적인 아빠가 했다면 더 문제가 되었을지도.
그리고 이런 설득력은 엘비스 프레슬리란 소재가 바즈 루어만의 지향점과 맞아서이기도 하지만 두 배우의 역량에기대는 바가 적지않다. 가장 미국적인 미국 남자배우 톰행크스는 여기서 또 하나의 미국 그 자체를 보여준다. 엘비스와 전혀 닮지 않은 오스틴 버틀러는 실시간 성형이 가능한 음악의 마법을 극대화해서 엘비스로 빙의에 성공하며 광기와 허무함 사이에 영민함을 담아낸다. 군입대 전 50년대 세계를 지배하는 엘비스의 성장보다도 정점을 지난 엘비스의 천재성과 매혹을 담는건 많은 부분 오스틴 버틀러의 역량이다.
이 모든 과정을 지나서 낸 결론은 아주 괜찮다. 우리는 평상 시 서있지도 못하는 늙은 퇴물 뮤지션이 무대만 서면 모두의 영웅이 되는 초능력이 있음을 익히 알고 있다. 음악의, 로큰롤의 마법이다. 어쩌면 지금 케이팝 팬덤에 가까운 팬덤도 흥미로운 고찰. 안티도 무관심보다 나은걸 알기에 I hate elvis' 배지를 팔지만 그건 아티스트에겐 큰 짐이다. 공연장의 열기와 팬들의 사랑을 사랑하는 죽기 전 걷기도 힘든 뚱뚱하고 못생겨진 실제 록스타 엘비스의 눈물나게 감동적인 'unchained melody'와 사라져가는 스타의 별빛이라는 끝내주는 결말을 난 거부할 수 없다. 요절한 록스타를 단순한 불행서사가 아닌 무대에서 찰라의 불꽃이 반짝이며 죽기 직전까지 아니 죽은 후까지 행복을 교감하는 이로 정의하기 때문이다. 이점이 개츠비와 달리 엘비스를 지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엘비스(Elvis, US/Australia, 2022, 159min)
감독: 바즈 루어만
출연: 오스틴 버틀러, 톰 행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