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고전

더티 해리

walrus 2009. 8. 19. 23:17
삼십몇년 그리고 4개월 몇주몇일 뒤에나 재현될 그 어둠의 칙칙함 속에서 펼쳐지는 초간지하며, 이게 십자가인지 아니면 공사판 세멘 바닥인지 구분이 안되는 그 무지막지한 십자가씬의 담대함, 먹이를 찾는 매의 눈처럼 빌딩 속 지붕을 점프하며 바라보는 카메라까지. 그 얍실함의 극치를 달려주는 그 죽어도 마땅할 나쁜 놈, 마초아드레날린의 무한분출로 남자의 가슴을 적시는 형님의 간지.

슬램덩크의 강백호 슈팅 녹화 컷처럼, 아무튼 자기들은 멋있는 줄 안다. 자기방어적이었던 영감쟁이들에게는 책임감없고 게으른 젊은 것들에게 일침을 놓고 싶었을 것이다. 물론, 약자를 지키고 자신의 사리사욕보다 약자를 지키는데 힘쓰는 보수라면 나쁠 이유 하나 없다만, 보수주의자가 자신을 긍정적으로 투영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논리 속에는 남들이 거부하는 것을 자신이 책임지고 총을 빼는 더티해리의 모습이 있다. 한편, 게으르고 날로 먹고 환락적이며 방탕하며 편의적이며 그러다가 도둑질을 하는 악한의 모습 속에는 60년대 히피의 모습과 그다지 다를 바 없다. 그게 옳고 그르고를 떠나 당시 영감쟁이들의 시선이 녹아있다는 얘기다. 본투비와일드로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이지라이더가 히피들이 자신을 간지나게 투영하였다면 더티 해리는 그 반대 편에 있다.

형님이 매그넘 속의 총알이 있니 없니로 장난치는 것보다는 아예 안 넣는 것이 현명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데는 정확히 38년이 걸렸지만.


더티 해리(Dirty Harry, US, 1971, 102min)
감독: 돈 시겔
출연: 클린트 이스트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