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나이트 라이즈
월가를 배경으로 했을 때, 흔히들 혁명가 베인과 자본가 배트맨이 대결구도에 따라 선악의 구도가 모호해지는 것을 예상했고 이러한 기대에 따라 미리 열광했다. 하지만 놀란의 신작이 주는 선악의 구도가 모호해지는 것도 애매모호하게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베인이 맨하튼을 초토화시키는 장면은 월가 시위 이상으로 911과 관계되며 어떻게 해석하든 실패한 혁명 또는 폭력 사태에 대한 짙은 냉소가 느껴진다. 두 종류의 죄수가 갇혀있는 공간 중 적어도 하나는 제3세계를 연상시키며 베인의 편에 서는 죄수는 하층계급임과 동시에 타인종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영화의 주요 캐릭터는 비교적 백인에 집중하며 단정짓는 것에 거리를 두지만. 영화에 마냥 열광하기 힘든 부분은 911은 물론, 월가 시위를 또라이 선동가의 추종처럼 묘사하는 부분이 불편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 영화는 WASP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공포와 방어 심리를 적절히 드러낸다. 이전이 흑인 노예와 인디언이라면 이번엔 자신의 돈을 내놓으라 소리칠 블루칼라 또는 백인보다 더 많은 숫자의 혼혈, 하이브리드이다. 이전에 WASP의 기득권이 빼앗길 수 있다는 공포가 순전히 폭력이었다면 지금의 블루칼라와 하이브리드는 보다 지능적으로 백인의 기득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한편으로는 반성하지만 그 반성이 결코 자신의 몫을 내놓는 방향은 되지 않을 것임을 그들 역시도 안다. WASP. 그들을 떠받쳤던 세계의 파수꾼인 미군과 그들의 새로운 정치적 우상은 똑같이 몰락해갔지만 월가와 맨하튼은 존속할 것이며 그들의 신화를 떠받칠 영웅이라는 허구도 여전할 것이다. 그들의 가치는 겉으로는 자유주의를 표방하지만 사실 속살은 마키아벨리즘과 리카도의 그것과 다르지 않으며 그것을 형상화했던 장르가 바로 존 포드의 웨스턴이였다. 존 포드의 역마차에 존 웨인이 등장하던 1939년, 브루스 웨인이 등장했고 놀란은 배트맨과 존 포드라는 20세기 산물을 21세기적 사고로 변주하기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반면, 성실한 백인 남자들에 비하자면 오히려 두명의 주연급 여성 캐릭터가 매력적이다. 훌륭해서 매력적인게 아니라 계급 상승을 추구하는 노동 계급 여성의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지만 흔히들 발견할 수 있는 선택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이 역시 21세기적 변주다. 정신없을 정도로 섹시한 캣우먼 앤 해서웨이를 조금 더 봤으면 하는게 제일 큰 아쉬움이지만.
다크 나이트 라이즈(Dark Knight Rises, US, 2012, 164min)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크리스찬 베일, 톰 하디, 조셉 고든 레빗, 게리 올드만, 앤 해서웨이, 마리옹 꼬띠아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