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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록클래식

제임스 브라운 - 잠실 실내체육관 2006년 2월 24일

제임스 브라운은 블루스, 빅밴드, 스윙, 밥 등 기존의 흑인 음악의 전통에 사이키델릭과 록앤롤의 백인적인 전통을 수용하여 이후 대중음악의 역사를 정의한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없으면 프린스도 레니 크래비츠도 레드핫 칠레페퍼스도 에미넴도 자미로콰이도 심지어 일본에서 잘하는 씨끌벅적한 브라스 밴드도 있을 수 없다. 특히 최근 10여년 이상 흑인적인 정서의 음악이 철저하게 음악판을 지배하는 지금의 상황에 제임스 브라운의 거대함은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이 전의 물줄기들이 큰 물줄기로 통합되어 거대한 물줄기의 시발점이 되는 이가 바로 제임스 브라운이다. 그런데, 그렇게 숱한 뮤지션들의 영향을 주고 받은 뮤지션이지만 그 어느 누구의 음악과도 닮지 않은 독창성이 있다. 한국에서 공연을 가진 대중음악사 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는데에 철저하게 공감한다. 어느 정도 예상하였던 바지만 위에서 언급한 뮤지션들의 음악은 제임스 브라운의 일부분만 빌려서 보여줄 뿐임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커다란 힘이 느껴지는 공연이었다.

며칠전 방문한 오아시스의 노엘 겔러거는 록앤롤은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며 그 이상을 힘주어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제임스 브라운의 공연은 철저하게 엔터테인먼트를 추구한다. 또, 흑인 대중음악의 전통은 생존을 위한 돈벌이와 멀 수가 없었고 그러기에 음악을 만드는 이들 사이에 철저한 위계질서가 보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단지 엔터테인먼트의 공연이 오아시스 공연보다 훨씬 더 진실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아시스의 록앤롤이 Beatles, Rolling Stones, Who, Kinks라는 교과서를 통해 배운 것이라면 제임스 브라운은 교과서를 직접 집필한 사람이다. 진짜와 원전이 가지는 힘은 독창성의 차원이 다르다.

개인적으로 음악에 관해서는 '인종'과 '민족'이라는 미신을 믿는다. 흑인이 낼 수 있는 음악은 백인이 죽어도 따라갈 수 없다. 제임스 브라운이 확고하게 다진 집요할 정도로 비트를 반복해나가는 음악을 백인이 따라하면 그냥 메트로놈처럼 비트를 반복하게될 뿐이다. 하지만, 흑인이 내는 반복적인 비트는 알고보면 비트 하나하나가 모두 다른 독창적인 힘을 가지는 새로움이 있다. 또한, 10인조가 넘는 대형 밴드-드럼&퍼커션이 셋, 브라스가 셋, 베이스2, 기타2, 코러스 4-는 기관차와 같은 힘을 지니면서도 각 파트는 단순히 밴드의 사운드에 기여하는 이상의 개성을 지니며 새로움을 끊임없이 창출했다. 모두들 한가닥하는 테크니션-특히 흑인적인 의미의-이지만 제임스 브라운은 전체 사운드를 끊임없이 조율하며 정갈하게 뽑아내도록 제어했다. 사실, 제임스 브라운은 대중 음악에 있어서 몇안되는 진짜 천재다. 어쩌면 멜로디의 섬세함은 클래식이나 포크에 기반한 이들보다 못할 수는 있지만 프르트뱅글러와 같은 지휘자의 역량을 발휘하며 전체적인 사운드의 균형을 잡고 독창성을 찾아내는 능력은 그 이상의 천재를 찾기 힘들다. 그의 다이내믹한 액션과 춤은 사실 밴드를 조율하는 지휘자와 같은 암호로 구성되어 있다.

철저하게 예상되었던 바지만 그날의 잠실 실내 체육관이 박살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오아시스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 부를 노래도 없었고 순전히 사운드의 힘으로 뒤흔들어버렸다. 물론, 철저하게 농익은 스테이지에서의 쇼도 충분히 흥미진진했지만. 60인 롤링스톤즈의 스테이지도 충분히 놀랍지만 정작 우리나이로 74살인 제임스 브라운의 스테이지도 불가사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정작 그가 무대에 처음 등작했을 때는 너무나 왜소한 체구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가 보여주는 스테이지는 엔터테인먼트로의 록앤롤이 진지하지 않기에 더욱 거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정확한 프로토 타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