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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은 고민이 많이 되는 시간이었다. 집시 캐러반, 마리자, 조스트러머, 로버트 알트만... 결국, 유앤미블루를 보겠다는 생각으로 집시 캐러반. 마리자는 월요일 볼 수 있지만 조 스트러머는 많이 아쉬웠다. 하지만, 에밀 쿠스트리차 형님과 고란 브레고비치의 공연 이후 줄기차게 입에서 멤돌았던 '합!합!합!을 생각한다면 집시 캐러반 역시 놓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 영화는 집시판 부에나비스타소셜 클럽이었다. 빔벤더스의 작품이 기본적으로 잔잔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라면 이 작품은 훨씬 활달하게 관객과 얘기를 주고 받는 작품이다. 감독의 성향과 더불어 집시에 대한 편견을 깨갰다는 제작진의 강한 의지 때문이 아닐까? 영화 중 한 집시는 Duente라는 감정에 대해 얘기한다. 울다가도 웃고 웃다가도 울고 그러다가 오싹해지는 느낌. 집시는 소유에 대한 개념이 조금은 달라 보이며 그로 인해 편견들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한번의 전쟁도 일으킨 적 없고 코소보 난민을 가족처럼 대하는 이들이지만, 서구 사회는 이들이 자기의 것을 빼앗지 않을까하는 공포심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의 완소남, walrus를 닮은 조니뎁은 이들과 같이 지내며 헐리우드 영화로 인한 편견을 얘기한다.
소유에 대한 집착보다는 일상의 희노애락을 중요시하고 떠돌이 생활을 즐기는 그들은 서구의 많은 음악에 대한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그들의 음악에 대한 원천은 다양하다. 거위 울음소리같은 혼소리, 말발굽과 같은 발로 하는 연주, 세상에서 제일 빠르고 줄을 당기는 등의 파격적인 바이올린 연주등. 그들의 음악은 생활이고 볼거리를 제공하여 생계를 유지하여하기 때문에 춤 역시 빠질 수가 없다-무릎으로 바닥을 흝어주는 여장남자의 무릎춤. 랩을 연상시키는 인도의 음악, 관능적인 플라멩고, 한숨을 노래하는 파두(영화에는 언급안되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발칸의 음악 등등. 그런 볼꺼리들이 있지만 탄압받아야 했던 그들의 일상 속에는 고통이 남아있다. 공연활동 그리고 신앙활동을 통해 평온을 찾은 지금도 목소리에는 고통이 남아있다. 작년 LG아트센터에서 했던 고란브레고비치의 집시음악은 집시 음악 본연의 정체성을 보존한 채 대중에게 얘기를 건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제작년에도 그랬지만 그들은 관객석 뒤에서 브라스를 불며 입장하고 웃으면서 슬픔을 얘기하고 저 세상을 얘기한다-역시, Great Bregovic!
영화의 끝자락에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자 니콜라이는 행복하게 저 세상으로 갔다. 집시들은 그가 죽은 창밖에서 울면서 연주를 하고 그의 시신에 입을 맞추며 연주를 한다. 모든 집시들은 니콜라이가 저 세상에서도 최고의 연주를 할 것으로 믿고 있다. 영화를 보는 우리도 마음은 집시가 된다.
집시 캐러반(When the Road Bends, US, 2006, 110min)
감독: 자스민 델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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