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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고전

Mouch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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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제어력을 잃은 인간의 끝없는 나약함. 누구나 한번 쯤 겪을 수 있는 너무나 고된 하루는 시지프스의 굴레처럼 결코 행복하지 않은 인생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이하 영화 100편 영화 100년에서

 

<무셰트>는 조르주 베르나노스가 1936년 발표한 소설 <무셰트의 새로운

이야기>를 로베르 브 레송이 각색하고 연출했다. 브레송은 '파편화'와 '벗김'의

개념, 몽타주에 의한 영상과 소리를 결 합한 독특한 문체를 구상한

영화작가다. 이 영화에서 브레송은 영화의 시각적 기능을 넘어서 해 독적

기능을 채용하여 시각적 이미지의 또다른 차원을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무셰트는 아주 가난한 마을에 사는 14살 소녀다. 그는 가슴을 앓고

있는 어머니,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와 오빠, 그리고 6개월 된 남동생을

돌보아야만 한다. 어느날 무셰트는 학교가 파한 후, 숲속을 방황하다가 비를

만나 길을 잃게 된다. 어둠 속에서 비를 피하다가 밤사냥을 마 치고 통나무

집으로 돌아가던 밀렵꾼 아르젠느를 만나게 된다.

그는 "술김에 삼림감시원 마티유를 죽였다"고 고백하고 무셰트는

"알리바이를 해주겠다"고 제 의한다. 그날밤 간질발작에서 깨어난

아르젠느에게 무셰트는 강간당한다. 그후 아르젠느로부터 도망쳐 집으로

돌아온 그는 엄마에게 그날밤 겪은 고통을 이야기하려 했지만 엄마는 숨을

거둔 다. 다음날 아침, 식품가게 주인 여자에게 지난밤의 일이 발각되고

아르젠느가 죽였다는 삼림감 시원을 그의 집에서 맞닥뜨리게 되자

아르젠느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무셰트는 엄마의

염을 맡은 노파에게서 엄마의 시신에 입힐 모슬린을 받아 걸친 채 마을

어귀의 작은 연못에 자신의 몸을 던져 자살한다.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연출은 동양화의 여백 같은 여운을 주는 침묵의

사용이다. 엄마의 죽음 으로 인한 침묵, 자살을 향한 길 위로 마치 다른

세계에서인 듯 들려오던 사냥꾼들의 총소리와 성당의 먼 종소리가 멎은 후의

침묵, 무셰트가 물에 빠질 때 둔탁한 음향 뒤에 오는 침묵 등이 그것이다.

가벼운 부감촬영은 브레송의 거의 모든 쇼트에 순환적으로 나타난다.

<무셰트>에서도 그렇다.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이러한 카메라는 관객들에게

이 영화 속에 항상 존재하는 억압상태를 느 끼게 한다. 그가 수업을 마친 후

교실에서 나와 항상 적대감을 느껴온 급우들에게 진흙덩이를 던 지기 위해

낮은 웅덩이 비탈에 숨는 장면에서 특히 그렇다. 그러나 아르젠느가 그에게

죄를 고백 하는 대목에서 우리는 그를 앙각으로 우러러 보게 된다. 그는 이

순간에 연약한 소녀가 아니다. 고백을 듣는다는 사실이 그에게 어떤

힘(모성애)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짧은 앙각촬영에 이 어 카메라의 위치가

다시 높아지면 그의 사회문화적 핸디캡(연약한 소녀)도 다시 나타난다.

브레송은 이 영화에서 소음을 음악으로 만들었다. 예를 들면, 무셰트가

식료품 가게에 들르는 장면에서 들어가기 전 트럭에서 내는 소음이

트레블링된다. 안으로 들어갈 때 문에서 들리는 작 은 종소리, 커피잔에

설탕을 넣을 때 나는 소리가 클로즈업되고 이어서 다른 손님이 들어올 때

작은 종소리가 들리며 커피마시는 소리가 클로즈업된다. 길가에서 들려오는

트럭소리가 줌인되 면서 무셰트가 떨어뜨린 커피잔 깨지는 소리가

클로즈업된다. 무셰트가 나갈 때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가 어우러져 훌륭한

음악을 만든다.

브레송은 직업 배우를 거부하고 모델이나 아마추어 배우를 선택한다. 그의

배우는 초상화가의 모델과 같다. 그는 이 모델에 등장인물이 투사되거나

외형화하는 것을 막는다. 그래서 그의 '모 델'들의 감정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지만, 무셰트는 두번 웃는다. 하나는 무셰트가 절대 그렇게 될 수

없는 여인의 웃음이고 하나는 어머니 같은 웃음이다.

자살하기 전, 무셰트는 연못가에 난 길로 트랙터를 몰고 가는 농부에게 의미

모를 손짓을 한 다. 죽기 전까지 그는 새로운 어떤 것의 계시를 기다린다. 그의

자살은 끝이 나지 않는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다. 마지막 부분의 클로드

몽테베르디의 '성모마리아의 찬가'는 그가 구원되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믿게

해준다. <필자: 지명혁/공륜새매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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