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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고전

만사형통 - Tout va b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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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진보의 구현을 위해서는 개인적인 의식의 진보가 필요하며 소통관계에 있어서의 진보도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 있어서 진보 역시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고착화된 소통의 방식으로는 기존의 틀을 깨기 힘들기 때문이다. 예술적 진보, 개인적 진보, 사회적 진보, 형식적 진보 등이 서로를 구속할 정도로 강한 Relation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교집합에서 강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고는 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두 진보적 작가의 만남은 흥미로우며 이 영화는 그런 면에서 역사에 남을 영화라고 한다. 늘 느끼는 바지만 프랑스 사회에서 얘기하는 합리성은 우리 사회에서의 합리성과는 크나큰 차이가 있다.

 

기대를 걸게 했던 장 피에르 고랭과의 만남은 결국 실패. 건강상의 문제고 내일 일정을 기약하자고 했다. 쩝. 우짠다...보고 싶어 죽겠구만. 더 문제는 이 영화를 1/3도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 각자의 계급에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설명하는 이 영화에서 자막처리가 잘못되는 대형 참사가 있었고 이어서 영화가 중단되었다. 장 피에르 고랭이 집에 간 것은 어쩌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여기서 자원 봉사로 일하시는 분들의 수고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런 실수는 있어서는 안된다. 열정이 빛나려면 그만큼의 치밀함을 필요로 한다.

 

p.s 듣던 바로 장 피에르 고랭은 대단한 정력가라고 한다. 나이도 있으시니 그날 좀 무리하신 모양.

우리 사회의 계급성을 노골적으로 까면서 쿨한 영화는 나올 수 없을까?

이번 세네프는 나하고 인연이 없는 듯. 예약해놓은 건 시간이 안맞고 본 영화는 무리한 일정으로 졸거나 아니면 이런 대형 참사.

 

ㆍ장 뤽 고다르, 장 피에르 고랭
ㆍ이탈리아/프랑스 | 1972 | 95min | Color | Beta SP

파리에 살고 있는 미국인 기자 제인 폰다와 상업적 방향으로 돌아선 영화감독 이브 몽탕이 파업 와중에 있는 소시지 공장에서 만난다. 노동자들은 마오이스트의 슬로건을 외치고 정치적 연설문을 읽는다. 고랭과 고다르가 공동작업한 작품 중 가장 상업적인 영화라 할 수 있으며 좌파 성향의 두 스타를 끌어들임으로써 스타시스템을 역이용한 반자본주의적 개념의 영화로서 완성된다.

 

장 뤽 고다르, 장 피에르 고랭
장 피에르 고랭은 1943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급진적 좌파인 부모 밑에서 자란 그는 1960년 소르본느에서 철학학위를 받는다. 65년에서 68년 사이 그는 〈르 몽드〉의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68년 5월 변혁을 이끌어낼 정치적이고 미학적인 토론장에 주어질 많은 논설들을 썼다. 67년 〈남성, 여성〉을 만들던 고다르를 처음 만났던 그는 고다르의 마오이즘 시대의 영화 〈중국인 여성 La Chinoise〉과 〈아는 즐거움 Le Gai Savoir〉을 만드는 데 조언을 준다. 68년 5월 혁명 직후 고다르와 함께 '정치적 영화를 정치적으로 만들기 위해' 지가 베르토프 그룹을 결성하게 되고 그들의 작업은 75년 〈여기 그리고 다른 곳 Ici et Ailleurs〉까지 이어진다. 고랭의 첫 솔로 작품은 72년에 만든 〈바로 거기 L'Ailleurs Immédiat〉이지만 아쉽게도 이 작품은 남아 있지 않다. 75년 그는 이후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될 매니 파버 Manny Farber의 초청을 받아 캘리포니아 샌디애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 시작한다. 현재까지 그는 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남부캘리포니아 삼부작과 〈피터에게 보내는 편지〉를 완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