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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최신작

원닷제로-Being Digital의 성과와 한계

1. Analog-Discrete-Digital ?

우리가 analog로 기억하는 20세기의 영화는 사실, discrete에 가깝다. 우리는 연속적인 time-frame으로 여기지만 실제로는 초당 30프레임이라는 일정한 주기로 떨어져서 전송되는 데이터의 연속인 것이다. 하지만, 사람 눈의 정보처리 능력 한계로 우리는 analog 정보로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digital의 기술은 특정 주파수 이상의 것을 Garbage로 여기고 과감히 쓰레기통으로 향하게 한다. Digital Audio는 20kHz이하의 가청 주파수에 샘플링 Theorem을 고려한 그 이상이 주파수 이상은 사람들이 인식못한다고 간주하고 쓰레기통으로 버리며 비디오는 pixel이라는 화면의 분할과 휘도와 색상을 특정비트로 분류해서 저장하고 그 이외의 factor는 버린다. 그리고 '압축이 가능하다'는 디지털의 특성으로 오면서 물체의 진행 방향이나 큰 소리에 묻힌 작은 소리등은 정말 과격하게 인위적으로 판단해버리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정말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떻게 물체의 자유의지를 인위적으로 판단하는 것과 큰 소리에 묻힌 작은 목소리를 무시하는 것의 폭력성은 생각해보면 끔찍하기도 하다.

 

Motion Graphics는 단지 테크놀리지 이상으로 디지털 지향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우선 15프레임 이하도 과감하게 도입하기 때문에 보는 이는 discrete한 측면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또, 작가는 자기가 원하는 정보를 지닌 Image들만 간추려서 전달되게 되기에 의도되지 않은 Garbage나 Noise가 가입될 여지가 없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볼 부분은 우리가 감성적 동요의 상당부분은 실제적인 상황의 진행과 관련없는 주변 상황에 동기를 가지면서 일어난다. 여자 친구와 헤어지는 순간 기어가는 벌레라든지 등등 다양하면서 작은 부분들이 우리의 감성적 동요를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우리의 뇌속 메모리 셀에 일일이 저장하지는 못하지만 감정적 느낌이 어떠했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저장하게 된다.

 

2. 기호화 과정

작가가 일단 모티브를 잡으면 해당 모티브에 관련된 경험을 수집한다.(이는 실제로 뒤바뀔 수도 있다). 모션그래픽스의 소재도 모든 것들이(적어도 상당한 대다수가) 우리의 경험에 기반하는 형상과 기억, 이미지들에서 온 것들이다. 작가는 최대한 비슷하게 작업을 하기도 하고 서로 다른 경험들을 붙여서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식의 연상작용을 불러일으키거나 약간은 이질적인 상황을 덪붙혀 심리적 동요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편집행위는 기존의 경험을 이미지 기호화하기에 가능하다. 작가는 이러한 기호들을 한 화면에 묶고 진행해 나가므로써 자신의 모티브를 펼칠 수 있다. 이러한 '기호'라는 분자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유기체를 만들어나간다는 것 역시 '최소 단위의 배수로 나타낸다'의 디지털의 Basic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물론, 그 이전의 예술도 '기호'들의 결합이 아니냐고 물어볼 수 있다. 하지만, 바이올린과 전자기타의 음색은 다채로운 배음과 여러가지 그 외의 요소로 독창성을 만들었고 한번의 작품은 복제되기 쉽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디지털 작업의 기호화는 모델링과 이에 따른 단순화에 기반한다. Sample & hold와 저주파 필터에 의해 고주파를 제거하는 A/D Conversion처럼.

 

하지만, 디지털 시대의 기호는 쉽게 복제되기에 많은 대중들이 공유할 수 있다. 앤디워홀식 체게바라 이미지가 그려진 티셔츠를 누구나 입고 다닐 수 있다. 작가는 이런 대중들이 공유할 수 있는 코드 또는 기호를 결합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기호화 과정 그리고 대중화 과정에서 '이미지'만 남고 실제 그 이미지가 담고 있는 '텍스트'는 분실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건 작가의 작업에서부터 그럴 수도 있고 관객에 전달하는 과정이나 관객의 태도에서 분실될 수도 있다. 대량 복제된 체게바라의 이미지에서 과연 쿠바 밀림 속에서 천식과 끈적거리는 악취를 이겨낸 체게바라의 의지를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는가? 또, 기호에 대한 관객의 상상은 MPEG의 방향성처럼 강압적이다. 대중 사회 대중의 의지는 결코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특정 기호에 대해서 느끼는 상상력의 방향은 정해져있다.

 

Garbage로 불릴만한 factor들이 제거되었기에 작품 하나 하나에 대해 전달되는 이미지 정보는 상당히 많은 편이다. DVD에서 트릭 플레이처럼 작가는 자기가 원하는 텍스트를 전달할 수만 있다면 프레임의 생략과 반복, 타임프레임의 인위적 변화를 통해 과감하게 정보를 압축해서 전달할 수 있다. 그러기에 재밌고 참신한 상상력의 홍수 속에서도 80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짧은 시간에 너무나 많은 정보를 소화해내야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단편의 연속은 나는 Garbage Collection에 한계를 드러내야 했고 틈틈히 메모리를 리셋시켜야만 했다. 이 역시 디지털 시대의 딜레마인 것 같다. 텍스트의 절대적 휘발성. 이는 바로 자본주의가 원하는 바다. 시대정신이라는 것을 쓰레기통에 처밖아 버리고 망각에 의해 양계장 닭처럼 생산하고 소비하기를 바라는 것.

 

3. 시대의 딜레마

작품 속에서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람이 모인 사회의 모습은 더욱 찾아보기 힘들었다. 물론, 해당 이미지에 감정적 투여를 하는 행위에서 사람이 있을 수 있으며 그 상황에서 소통을 찾아볼 수는 있다. 사회와 소통하기보다 자의식에 함몰된 자아를 얘기한다면, 그리고 이런 모습이 지금 시대의 딜레마를 반영한다면 지나친 확대 해석일까?

작가는 관객이 작품을 보면서 행동하고 변화하기 보다는 이미지의 파편에 의해 쿨하다는 감탄사를 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잘하다' 내지 '기발하다'는 감탄사 대신 뒤통수를 후려치는 후련함이나 가슴속 한곳을 불편하게 만드는 감성적 동요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까?

 

4. 모바일 시대, 간편함과 짧은 러닝 타임에 대한 수요를 생각한다면 모션 그래픽스와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등의 컨텐츠가 보다 중요한 위치로 오를 것은 하나의 대세일 수 있다. 피할 수 없다면 이용하라. 그런데, 어떻게?

 

P.S 모션 그래픽스 위주의 와우 플러터 보다는 뮤직비디오 모음인 웨이브 렝스가 조금 더 보기 편했다. 영상에 맞추어진 음악의 동기성이 지니는 폭력성 때문 아닐까?

 

 

와우 플러터

와우! 짜릿하고 신선한 비주얼 혁명.
원닷제로를 대표하는 독창적인 애니메이션과 모션그래픽의 종합 패키지.
 

와우 플러터는 원닷제로의 상징적인 프로그램으로 원닷제로가 추구하는 독창성과 실험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섹션이다. 동서양 아티스트들의 애니메이션, 모션그래픽, 실험프로젝트들이 망라된 이 섹션에서는 80분간의 짜릿하면서도 통쾌한 시각적인 충격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상영작 중에는 원닷제로를 위해 만들어지고 원닷제로를 통해 세계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품들도 많다. 대표작: 에두아르드 살리에르 ‘엠파이어’, 길레르메 마르콘데스 ‘인투 피스’, 스튜디오 아카 ‘헬스 키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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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브랭스 wavelength

파격적인 뮤직비디오만을 한데 모았다.
전세계에서 시각적으로 가장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뮤직비디오들의 총집합.
 

웨이브랭스(파장)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섹션은 음악을 소재로 한 영상들을 소개하는 섹션이다. 이 섹션에서는 뮤지션, 음악, 영상 모두에서 기존의 장르개념을 뛰어넘으려는 수많은 시도들을 관찰할 수 있다. 린폭스의 비욕, 인트로의 프로디지, 샤이놀라의 벡, 요나스 오델의 엘 프레지던트 등 뮤지션이나 감독의 이름만 들어도 파격이 예상되는 작품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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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웹사이트:http://www.onedotzer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