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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최신작

파이트 클럽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지만 영화에 있어 시작은 상당히 중요하다. 이 영화의 시작은 내게는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쿵쿵거리는 테크노 비트와 함께 체세포들의 움직임이 역동적으로 묘사되면서 점점 확대 되어간다. 땀샘과 체모가 보이며 그게 콧등임을 알게되는 순간 점점 밑으로 내려오고 입속 깊숙히 박혀있는 권총의 총신을 보게된다.

상황에 대한 간단한 묘사가 있은 후, 총을 물고 있는 에드워드 노튼의 독백-이 순간에도 나는 총에 박테리아가 우글거리고 있다-은 정작 중요한 것을 모르는 소시민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첫 장면의 짜릿함에 즐거워하고 있을 때 장면은 순식간에 바뀌어 한 뚱보의 가슴 속에 묻혀있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매력은 비트에 있다. 작가 척팔리닉의 파격적인 상상력은 뮤직 비디오 감독 출신의 데이비드 핀처에 의해 비트를 얻게 된다. 그리고 두 주연 배우, 에드워드 노튼과 브래드 피트는 최상의 조합이라 할 수 있다. 에드워드 노튼이 소심한 백인 소시민의 모습 속에서도 어딘가 숨어있을 광기를 표현해내기에 가장 적합한 배우이다. 그는 이러한 모습을 프라이멀 피어와 어메리칸 히스토리 X를 통해 정확히 증명했다. 브래드 피트, 그는 노력하는 배우다. 브래드 피트는 꾸준하게 이성보다 어두운 잠재의식에 의해 지배되는 역할을 해왔다.

이 영화는 이 두 배우의 탁월한 캐릭터에 의해 지배된다. 에드워드 노튼은 전형적인 중산층 백인 소시민의 모습이다. 너무나 똑 같은 자본주의 부속품으로 살아가는 그는 이로 인해 불면증에 시달리게되고 이러한 욕구를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형태인 과잉소비, 그리고 자기개발이라고 포장된 체제에의 안주를 통해 해결하려 한다. 이러한 소비는 이제 그에 소비를 위한 소비로 자본주의가 원하는 형태로 발전하게 되며 이는 하나의 집착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소비에도 해결되지 않는 그의 불면증. 이를 위해 그는 작은 일탈을 시도한다. 울음을 통해 불만을 풀어내는 소극적인 일탈과 공동체를 통한 대화. 이는 기본적으로 기존의 구도를 파괴시킬 새로운 단서를 제시하는 것이나 너무나 소극적인 방식이다.

여기서…

브래드 피트의 등장은 새로운 변화를 예고한다. 쌈박질이라는 새로운 일탈의 방식. 여기서 쌈박질이란 단순한 폭력 행위가 아니라 자본주의에 의해 구축된 자기만의 패러다임을 깨기 위한 일탈의 방식이다. 그리고 브래드 피트에 의해 저질러진 방화는 기존의 무의미한 소비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는 방식을 제시한다. 대형 자본주의의 틀을 깨기에 앞서 개개인의 내적인 패러다임을 쇄신하는 것이다.

여기서 에드워드 노튼은 끌려다니는 자신이 불안하면서도 새로운 쾌감을 느낀다. 그리고 쌈박질을 통한 일탈은 점점 조직화되며 커지게 된다. 기존의 자본주의라는 틀에 본격적인 선전포고를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끝장면에서 브래드 피트가 에드워드 노튼의 입속에 총을 집어놓고 협박하는 장면이 나오며 결국 에드워드 노튼=브래드 피트라는 반전을 가져온다.

사실, 이는 충분히 예견할 수 있던 결과였다. 에드워드 노튼이 자아 속에서 기존의 틀에 안주하려는 측면이라면 브래드 피트는 이러한 틀을 깨고 나올 것을 강요하는 또 하나의 자아인 것이다.

이 영화는 결코 폭력에 관한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기존의 틀을 깨고 나올 것을 요구하는 모습은 무엇보다도 폭력적이며 영화 전편에 흐르는 비트는 폭력을 통한 비트의 짜릿함과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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