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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잡담

성숙한 페스티발 문화의 정착을 위해

지난 9월 초에 열린 자라섬 페스티발은 여러모로 준비가 많이 된 재즈 페스티발이었다. 단순히 여러 아티스트를 엮어 놓은 재즈 공연이 아니라 재즈 페스티발이 가질 수 있는 자유분방함을 추구한 행사였다. 실제 네임밸류보다 실력을 우선시한 아티스트 선정이 돋보였고 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를 오가는 다양한 국내 아티스트에 대한 배려도 충분했다. 더욱이 오프닝을 가평 유스밴드로 한 것은 지역사회의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상당히 괜찮은 시도로 보였다. Jazz stage와 Party stage로 나누고 그 사이에 악기 체험관, 뗏목 체험 등 다양한 볼꺼리를 제공한 것도 참신한 생각이었다. 또, 잔디밭위에 깔아놓은 비닐 위에 앉아서 여유롭게 즐기게 한 발상도 좋아보였다. 무엇보다도 좋은 점은 1일차 공연에 1만원, 3일 동안 2만5천원이라는 싼 가격의 행사였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가평 지역 관광 사업등의 특수를 고려한 면이 적지 않으나 어쨌던 고가로 치솟고 있는 재즈를 비롯한 이른바 고급문화의 티켓가격을 고려하자면 좋은 취지의 페스티발이었다고 본다.

그런데, 문제는 삼일간의 일정 중 둘째날이 우천으로 취소되었다는 점이다. 내가 보기로 불가항력이었다. 끝없이 쏟아지는 비에 장비는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더욱이 감전사나 돌풍에 의한 사고 등도 충분히 가능했다. 억지로 강행했을 때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3일차 공연을 실내체육관으로 옮겨서 진행한 것도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아예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오히려 적절한 시점에 공연을 취소시키고 곧바로 전액 환불한 것은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본다. 오히려 질질 끌다가 마이크 스턴 같은 뮤지션 한두개하고 얼버무리는 것보다야 훨씬 낳지 않은가? 국내에서 무슨 페스티발을 할 때마다 비가 내리는 징크스가 있는 듯 하다. 처음으로 추진된 대형 록페스티발인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발도 비 때문에 엉망이 되었다.

이런 일이 있으면 관련 게시판은 떡이 된다. 그런데, 무슨 대안을 가지고 얘기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최근 게시판 문화의 맹점이라고 할 수 있다. 소통은 아주 자유로워지지만 그것이 불러올 결과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얘기를 하지 않는다. 특히 다수의 탈을 쓰게 되면 아주 무서워질 수도 있다. 물론, 비판은 해야한다. 안하고 무관심한 것은 더 나쁠 수 있다. 하지만, 대안이 없는 비판은 비난일 뿐이다. 사실, 어떤 면에서 콤플레인의 여지는 충분히 있다. 서울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가평이라는 지역적 특성 상, 교통비 및 체제비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한 보상까지 요구할 수는 없지 않은가? 실제로 그 부분을 사과하는 의미로 주최측은 작은 선물을 보내겠다고 한다. 그런 부분에 대한 단순한 콤플레인 차원이라면 게시판이란 매체는 적합하지 않다. 기타와 앰프가 피드백을 일으키듯 감정의 골이 증폭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최측이나 생산자 측의 입장에서 문제를 보면 아주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그런 식으로 서로간의 입장의 차이를 인정하면 안될까?

처음으로 돌아가서 페스티발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페스티발의 의미는 한데 어울림에 있다. 기존의 공연 문화가 단순히 생산자가 제공하는 상품을 소비하는 형태라면 이상적인 페스티발의 의미는 이를 극복하고 함께 어울리는 방향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우드스탁 페스티발이 전설이 된 계기도 울타리가 무너지면서 본의아니게 무료공연이 된 해프닝이 일조한 것도 사실이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싼가격에 즐길 수 있는 페스티발의 경우, 그만큼 관객도 수동적인 소비자를 떠나 참여하고 이해하는 하나의 주체로서의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물론, 참여와 관심의 수위는 다양할 수 있다. 가볍게 같이 즐기는 쪽에서부터  페스티발의 원활한 진행에 적극 협조하며 운영에 까지 관심을 가지는 경우까지. 아무튼 중요한 것은 수위의 문제라기 보다는 애정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적대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페스티발의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실, 재즈 쪽 행사-상업적 공연이건 페스티발이건-의 경우, 그래도 낳다. 상류층 고급문화에 대한 무조건적 추종이라는 비판의 여지는 충분히 있지만, 그래도 재즈 쪽 행사는 돈이 될 수도 있다. 지금 불만이 있더라도 발전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록을 비롯한 대중문화의 경우, 인프라가 너무나 작다. 무료나 저가라면 성공적인 행사가 가능하지만 가격선이 올라가면 십중팔구 실패다. 록이란 음악을 돈을 주고 즐기겠다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은게 냉정하게 본 지금의 현실이다. 뭔가 대중문화 관련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행사, 예를 들자면 지방에서의 행사, 저가의 행사, 새로운 개념의 행사 등을 주최하는 경우에 대중음악과 대중문화에 많은 애정을 가지기에 리스크를 안고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관련한 노하우가 당연히 부족하고 성공해도 그게 큰 상업적 성공으로는 이어지지 않을 경우가 많다. 지자체가 활성화되면서 다양한 지역행사로서의 대중음악관련 행사가 활발히 추진되고 있지만 그게 기존의 영화제만큼 특성화되고 성공적인 페스티발로 자리잡은 경우는 아직 많지 않다. 이를 단순히 주최측의 무능함으로만 해석해야할까?

록을 비롯한 대중음악을 사랑하고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발전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무엇보다도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절실하다. 상대방과 상대방이 지니는 차이를 이해하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관용, 그게 바로 똘레랑스가 아닐까? 진정한 의미에서 똘레랑스는 대중음악에 있어서도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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