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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기타등등

빌프리셀 공연 리뷰(2003.10.26,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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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방이 돋보인 실험적 명연 ★★★★

공연전에 앞서 관심사는 빌프리셀이 트리오 편성에서 에너지와 다이내믹함이라는 부분을 어떻게 채워줄 것인가하는 점이었다. 속주를 안하고 적어도 우리나라 입장에선 그다지 대중적인 플레이스타일을 지닌 기타리스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앞에서 두번째 자리에 앉았다. 지금 생각난건데 그 자리는 R석이 아닌 S석이었다. 보기 다소 불편한 면이 적지 않게 있지만 어느 자리보다 연주를 자세히 볼 수 있는 자리였다. 공연전 일찍 들어와서 관찰해보니 어쿠스틱 베이스, 8개의 단촐한 드럼세팅에 여러가지 스틱들, 그리고 어쿠스틱 기타1, 일렉트릭기타1(기타는 잘 모르겠다)가 있었다. 일렉트릭베이스가 없는걸로 봤을 때 다소 차분한 공연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곡이 흐르는 순간 오히려 당혹스러웠다. 드러머는 상당히 산만하게 심볼을 처대고 프리셀은 기타 좀씩 치다말고 의자에 올려놓은 이펙터 같은거 두개하고 바닥에 페달하고 뭐 그런 것들을 정신없이 만져되는 것이었다. 아마 의자에 있는 두개의 스위치 세트 중 하나는 이펙터고 하나는 트리오 편성의 사운드의 단순함을 벗어나기 위해 프로그램된 사운드를 내기 위한 샘플러인 것 같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첨엔 사운드체크를 참 부산하게 하는구나 싶었는데...예상 밖에 첫곡을 상당히 아방한 쪽으로 택했다. 워낙 정신없이 움직이다 보니 스틱을 바꾸는 과정에서 스틱을 놓치는 장면도 여러번 있었고 베이스 쪽에서는 앰프쪽에 잘못연결된 듯 수차례 확인하는 장면도 연출되곤 했다.

공연에서 느낀 빌프리셀 밴드의 사운드는 크게
샘플러를 다량 사용하면서 아방하게 가는 부분,
전자기타를 치지만 다소 목가적이고 섬세하게 가는 부분,
록적으로 힘있게 뻗어나가는 부분,
그리고 어쿠스틱한 컨추리 사운드
등으로 구성된 것 같았다.

이런 사운드적 특성의 출발점은 드러밍이었던 것 같다. 드러머는 대체로 오른손은 엄지와 검지사이로 잡고 왼손은 중지와 약지 사이로 잡았다. 서너개 다른 종류의 스틱을 썼는데 빗자루같이 생긴 것(나중에 빨간 것도 본 것 같았다), 솜털 같이 생긴 브러시, 그리고 일반 스틱이었다. 연주하는 파트의 사운드에 따라 다소 컨추리적이고 섬세하난 부분은 빗자루 브러시를 썼고 긴장감을 고조할 땐 솜털 브러시, 그리고 힘차게 밀고 나갈 때는 스틱으로 *겼다. 빗자루 브러시를 상대적으로 많이 쓴 것 같은데-개인적으로 그런 빗자루 별로 안좋아한다 빗자루 몽댕이가 생각나서리-, 빗자루 브러시도 심볼을 긁으면서 분위기를 고조시키기도 하고 두들기면서 독특한 느낌을 내기도 한 것 같다. 전체적으로 심볼을 특히 재밌게 쓰는 드러머인 것 같았고 나중에 보면 드럼 위에 스틱 하나를 올리고 그 가운데를 스틱으로 두들기는 독특한 주법?을 선보이기도 했다.

베이스 주자는 백인 치고 키가 작았던 것 같은데 자기가 든 베이스보다 머리하나가 작았던 것 같다. 멤버 전원이 체격이 그다지 큰편이 아니었는데 전부다 동네 아저씨, 형 분위기였다. 초반에 베이스의 솔로 타임이 있었고 트리오의 특성상 베이스 음도 뚜렷하게 잡혔다. 드러머는 멤버 중 유일하게 안경을 안쓴 멤버였고 상당히 표정이 풍분한 멤버였다. 빌프리셀도 마찬가지였는데 연주에 집중하면서도 멤버들과 마주칠 때 가벼운 미소가 그치지 않았고 목가적이고 밝은 이미지가 늘 있는 빌프리셀의 음악은 이런 성격적인 면에 기인하지 않을까 싶다.

중간에 프리셀과 베이스주자가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드러머가 퍼쿠션을 치면서 컨추리적인 곡을 연주했는데,,,베이스 주자는 약지에 슬라이드바를 썼다. 걍 컨추리곡이라 싶었다. 굳이 어쿠스틱한 파트 뿐만 아니라 일렉으로 연주할 때도 상당히 소박한 접근 방식을 적지않게 사용했다. 프리셀의 연주는 비주얼하기 보다는 완전히 자기가 원하는 음의 공간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수시로 샘플러에 손을 되는 모습은 다소 어눌하기까지 보였다. 어떤면에선 예전의 에릭클랩튼을 연상시킬 정도로. 프리셀의 기타는 기타리스트 위주의 트리오 편성에서 예상보다 볼륨이 작은 편이었다. 다른 파트의 솔로 시에는 오히려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소리에 집착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프리셀은 앨범에서 듣던데로 속주를 드물게 안하는 편이었다. 가끔 소박한 곡조를 연주할 때는 평범해보이기까지하는. 아방한 쪽이야 사실 뭐 생각나는데로 치겠지 싶고. 그런데 가끔 드러머가 스틱을 들고 힘있는 비트를 진행할 땐 엄청난 에너지를 토하기도 했다.

빌프리셀의 기타는 컨추리에서 마돈나까지의 다양한 미국적인 전통에 소리의 강약, 사운드의 질감등으로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 핵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면에서 앵콜 전에 마지막 은 공연의 백미였다. 공연 중간에도 다소 만만치 않은 에너지를 느끼게 해주었지만 이 곡은 정말 백미라 할만하다. 컨추리적으로 차분하게 지나가다가 정신사납게 아방가르드쪽으로 빠지는 것 같다가 끝에 가면서 록적이고 시원한 기타 리프를 토해냈다. 중간에 다소 난삽하게 갔던 부분이 오히려 대비가 되면서 곡의 마지막 부분의 에너지가 더욱 부각되게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 김세황이 스티브 바이한테 배운점이 정말 아름다운 소리를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듣기 싫은 노이즈를 들려줄 필요가 있다는 걸 배웠다는 그런 말이 생각이 나는 장면이었다.

앵콜곡은 어쿠스틱기타로 마무리 지었다. 베이스 주자는 다른곡을 생각한 듯 했지만 빌 프리셀은 차분하게 마무리 짓는 쪽을 택했다. 끝나고 팬 사인회가 있었는디...당스 줄서서 사인 받고 악수까지도 했다. 프리셀에게 사인 받을 때는 존스코필드한테 전에 사인 받았고 당신한테까지 받았으니 두명의 greatest한 기타리스트한테 사인을 받은셈이라고 대략 얘기했더니...한참뒤에 듣고 웃더라. 정말 맘씨 좋고 후덕한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옆에 서있는 드러머 케니 울센에게도 사인을 받았는데 그 역시 톰웨이츠, 존스코필드, 션레논의 세션을 한 만만치않은 경력이 뮤지션이었음에도 전혀 거리감 없이 사인을 해주었다.

빌프리셀이란 뮤지션은 재즈라는 쪽에 국한시키기 힘들고 여러가지 스타일을 자기만의 음공간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확실히 팻매스니와 비교할만한 점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팻매스니가 최상의 사운드만을 골라 공간을 뿌듯하게 채우는 쪽이라면 빌프리셀은 여백과 여유의 미를 강조하는 쪽이 아닌가 싶다. 빌프리셀이 전달하는 인간적으로 소박한 이미지와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은데, 역시 대가급 연주인이 되면 그 연주안에 자기의 모습이 투영될 수 밖에 없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p.s 만원에 만화로 보는 재즈역사 백년이란 책을 팔던데 샀다. 꽤 괜찮은 책이란 생각이 든다. 특유의 장난기 있는 문체로 재밌게 뮤지션들 간의 에피소드에 몰두했지만 이 에피소드를 통해 재즈를 이룬 거인들이 추구했던 스타일과 음악적인 개념들을 자연스럽게 도출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