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토로 만화라는 것을 사작하자마자 바로 알려주지만 실제로 토토로는 1/3이 지난 다음 처음 나오고 본격적으로는 러닝 타임의 절반을 훌쩍 넘어 나온다. 어린이의 꿈속에 잡힐 듯한 크지만 무해하게 귀여운 캐릭터의 등장을 슬금슬금 미루면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오히려 뜻밖의 영화적 텐션을 만든다. 또, 러닝타임을 통틀어 토토로가 나오는 시간은 얼마되지 않는다.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안락한 시골 풍경 속에서도 아이들의 삶마저도 완전히 평온하지는 않을 때, 토토로는 등장해서 아무말 없이 포근한 위로의 환타지를 만든다.
물론, 위로의 환타지는 성장할수록 찾아오는 빈도가 줄어든다. 그렇기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는 잃어버린 환타지를 선물하며 이것은 결국 영화란 미디어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미야자키 하야오에서 기계가 빠진걸까 생각되다가 오히려 정반대로 나온다. 기계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를 대신해서 고양이 버스라는 생명체의 기계화를 본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거의 모든 작품에서 인간 중심에서 벗어나 자연과 기계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를 얘기한다. 자연을 위해서 꿈을 위해서 기계는 거부의 대상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고양이 버스의 눈 헤드라이트는 마치 꿈의 실현도구인 영사기처럼 보인다.
이웃집 토토로(My Neighbor Totoro, Japan, 1988, 86min)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