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연/땅밑에서

윤상-2008/1/10, 경희대

윤상은 한국 대중음악에서 사운드의 차원을 높였다. 트로트나 록의 비트와 편성에 의존하던 기존의 발라드와 달리 리듬감이 살아있는 발라드를 만들었고 심플한 리듬일지라도 사운드의 입자가 주는 질감으로 리듬의 풍성함을 살려내는 시간이 지나도 촌티가 나지 않는 사운드를 만드는 한국의 정말 몇안되는 뮤지션이기도 하며 그 속에 대중적인 흡입력이 있는 곡을 쓸 수 있는 능력을 지니기도 했다. 여성적이면서 섬세한 성격 속에서도 철저한 완벽주의자로 곡작업을 했기에 가능한 결과물이었다. 대중적인 흡입력을 바탕으로 소녀적인 취향과도 한편 닿아있기에 그는 스타 가수가 될 수도 있었으며 어쩌면 소녀들에게는 팻메스니와 류이치 사카모토로 가는 숙녀?적 취향의 통로가 될 수도 있었다. 반면, 그런 완벽주의자적이면서 내성적인 성격 그리고 가수 보다 뮤지션이라는 정체성을 지니는 그에게는 스튜디어 뮤지션이라는 딱지를 붙여주기에도 좋았다. 사실, 윤상이 왕성한 음악을 하던 시절은 공연 시장이 크지 않았으며 음반시장의 활성화로 스튜디오적인 재능이 발휘될 여지가 많았다. 그런 윤상의 음악적 결과물의 가장 큰 수혜자들이 어쩌면 이번 공연의 게스트로 나온 김동률, 롤러코스터, W, Toy다. 고급스러운 사운드와 리듬감의 중요성, 그리고 스튜디오에서의 엄격함 등. 그런데, 윤상이 6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온 지금은 세상이 바뀌었다. 음반시장은 죽었고 반면 공연을 통해 같이 듣고 즐기는 문화는 발달한 상황에서 윤상에게 공연은 그와 같이 성장한 (이제는 애기를 대리고 나온) 아줌마가 된 그 때 소녀팬들과 더불어 할 수 있다. 마치 이승환처럼.

사실, 이번에 발매된 Songbook을 들으면서 느낀 점은 딱 한가지. 원곡이 듣고 싶다는 점. 참여한 뮤지션들이 실력있고 노래를 잘 부르는 뮤지션이 많기에 더 재밌으리라 생각할 수 있지만 결과물은 그래도 원곡이 더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산고의 고통을 겪으면서 나올 때 바로 그 시점의 곡의 감정 그리고 짙은 화장을 하지않은 그렇지만 최대한의 매력적으로 가꾼 그 원곡의 맛은 노래를 잘부르고 못부르고와는 아무런 관계없는 가치를 가진다. 이번 공연에서 무엇보다도 윤상의 목소리로 그리고 윤상이 만든 밴드의 사운드로 앨범의 곡을 듣고 싶었다. 작년 OneWorld와 GMF때와는 또 달리 긴장을 했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윤상의 울렁증으로 공연은 삽질의 연속이었다. 객관적인 가창의 기술에서 못부른다고 알려진 밥딜런과는 다른 측면에서 윤상은 확실히 노래를 못했다. 기술적인 면과 관계없이 자신의 곡을 자신감있게 부르면 나름 장인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데, 윤상은 사실 그런 쪽에 큰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음악을 한다면 '가수'라고 부르는 한국에서 윤상의 애티튜드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런데, 공연에서 들려준 사운드 역시 기대치와는 다소 간의 차이가 있었다. 음반에서 느껴진 신쓰 사운드의 입자를 드러밍으로 대신할 때 나오는 거침은 또 하나의 재미일 수도 있지만 섬세함은 음반에 미치지 못했다. 윤상에 있어서 공연의 완벽함은 음반의 사운드에 가까워짐을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공연의 귀신들이 보여주는 공연 사운드의 완벽함은 음반 사운드의 완벽함과 또 다른 세계다. 음반과 다르지만 완벽한 공간감과 색체감으로 새로운 세상을 선사하는 팻메스니를 생각한다면. 섬세하고 절제도 되어야지만 음반처럼 낼 수 없는 부분을 포기하고 공연사운드의 또 다른 맛으로 포만감을 주는 호방함같은 것도 필요하다. 실제로 많은 뮤지션들이 공연 중 제일 좋은 느낌을 주는 사운드는 바로 최근의 작업인 최근 앨범의 연주를 할 때이다-그래서일까 실제로 가장 마음에 들던 사운드는 TV다큐, 누들 누드의 작업인 누들 익스프레스였다. 많은 게스트를 볼 수 있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그렇기에 전체적으로 산만하고 공연의 기승전결로 전달되는 기가 끊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 작년에 한 OneWorld와 GMF 그리고 이번 공연 중, OneWorld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WorldMusic적인 면을 강조한 사운드와 편성, 레파토리도 좋았지만 많은 문제 속에서도 공연에 몰입할 수 있는 전체적인 흐름이 좋기도 했다. 어쩌면 윤상이 공연을 통해 완벽한 무언가를 보여주겠다는 생각을 버릴 때 오히려 가장 좋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윤상은 어쩔 수 없는 귀공자 스타일이다. 섬세하고 조심스럽고 완벽해야하고. 그런데, 완벽해지려면 완벽해질 수 있는 바운더리 안에서 자신을 절제해야한며 그리고 그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보다 많은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보다 과감하고 막나가는 윤상이 줄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싶다. 마치 69년 폴매카트니가 작은 창고에서의 공연을 제안했던 것처럼.